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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Dec 17. 2023

오해해서 미안해요

개피곤과 된장술밥

10여 년 전 일이다.

친구가 소개팅남과 썸을 타고 있을 때였다.


"소개팅남이 어제 개피곤해서 일찍 잔다고 톡을 보냈는데..."

"개피곤? 편한 사이도 아닌데 개피곤은 좀 그렇다."


신조어인 줄 모르고 그때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만 단어 앞에 '개'를 붙여 썼기에 그의 위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개피곤처럼 나도 소개팅남을 오해한 적이 있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와 막 사귀기 시작할 때였다.

친구들은 남편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 최근 연애를 시작한 나의 남친(읽기 편하게 남자친구를 남친으로 줄여서 쓸게요)이 보고 싶다며 함께 오라고 했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약속을 잡았다.

남친은 고맙게도 불편한 만남을 흔쾌히 응해 주었고 파주에서 강남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와주었다.

친구의 남편과 남친은 거나하게 취했다.

2차로 갔던 곱창집에서 술이 취한 남친은 먹고 남은 밥을 불판 옆에 있던 된장찌개에 넣어서 수저로 휘휘 저었다.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를 말렸다.


"남자들은 술 마실 때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서 이렇게 떠먹어요."


그가 취해서 한 행동을 무마하기 위해 둘러 됐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리는 막차 핑계를 대며 곱창집에서 서둘러 나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된장찌개에 밥을 넣어서 끓여 먹는 된장술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를 오해했다는 사실에 너무 부끄러워 낯 뜨거웠다.


지금은 '개피곤'과 '된장술밥'을 오해했던 우리를 생각하면 피식 싱겁게 웃는다.

반전은 개피곤남과 된장술밥남은 그들의 구 여친이자 현 아내들이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1도 모른다.

부끄러운 과거이기에 이 사실은 앞으로도 계속 쭈욱 그들에게 비밀이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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