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쾌한씨 Jan 02. 2024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잖아요


오늘의 영감어 : 약속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잖아요."

이 말을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들을 줄이야.




공부방을 오픈하기 전에 먼저 과외를 하려고 홍보지를 붙였다. 운 좋게 홍보지를 붙인 날 문의 전화가 왔다. 상담 날짜를 정하고 집으로 방문드리기로 했다.


며칠 후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방문을 드렸다. 거실에서 상담을 시작했다.


"연준(가명)이가 학원을 거부해서 쉬고 있어요. 과외는 선생님이 집으로 오시니까 연락드렸어요."


지친 표정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럼 저의 역할이 크겠군요."


상담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우리 연준이는 A학원에 보내고 싶어요. 그 학원은 입학 테스트를 합격해야 하니까 테스트 준비를 해주세요."

"네? 연준이는 학원을 거부하고 있잖아요?"

"테스트는 본대요. 테스트 준비 부탁드려요."

"네... 제가 생각을 조금 더 해보고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나의 교육 방향성과 어머님이 지향하시는 바가 다른데 어쩌지?'


그 순간 연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입학 테스트는 나중 문제고 우선 연준이가 수학을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연준이는 게임만 하려고 했고 그 외에 모든 일에는 귀차니즘에 빠져있었다. 숙제량을 연준이와 상의해서 내주었지만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숙제를 내주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님이 테스트 볼 때까지 교재 두 권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마음이 급했다.


"연준아 숙제를 그냥 숙제로만 보는 것보다 선생님과의 약속이라고 생각을 하면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까?"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잖아요."

"...학원 테스트 보고 싶어?"

"엄마가 테스트를 합격하면 컴퓨터 바꿔준대요."

"아 그래서 테스트를 보려고 했구나? 테스트를 합격하려면 이 문제집을 다 풀어야 해. 숙제량은 네가 정해. 대신 이번에는 꼭 해야 해!"


다행히 연준이는 숙제를 했고 그때부터 함께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선생님 다음 달에 학원 테스트를 보려고요."


어머님은 전화로 재촉을 하셨다.


"네?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당황스럽네요. 연준이가 이제 마음의 문을 열었는데요."

"다음 달 테스트 보기 전까지 문제집을 다 풀어주세요. 숙제를 많이 내주시면 되잖아요."

"...저와 어머님의 교육관이 다른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하지만 다른 선생님을 알아보세요."

“······.”

"연준이와는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을까요?"

“연준이에게 물어볼게요."


다음 날 문자가 도착했다.


"연준이가 마음이 불편하대요. 교재는 우편함에 넣어주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교재와 함께 연준이가 좋아한다고 했던 핫초코 미떼와 쪽지를 동봉해서 우편함에 넣었다.


"연준아 선생님이 많이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그의 신비한 능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