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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Dec 14. 2022

밤의 경전 - 김영래 詩

내가 사랑하는 시들 中 오늘 이 詩 한 편...

밤의 경전

- 사순절 7

                        김영래(1963년~ )



그 어떤 발도 기억하지 못하는

길의 밤 속에

문맹의 책이 펼쳐져 있다.

흔적이 끊기며 사라지는 것들의 친구인

밤. 잃어버린 언어의,

망각된 종족의 책 위에 별의 입김이 스치고

문자들은 태고의 침묵보다 더 아득하다.

숨결이 끊긴 악보,

모든 문장이 행간으로만 이루어진 서책.

암흑으로 꽉 채워진 여백의 친구인

밤. 노래와 낭송의 떨림은

이슬이 맺힌 비늘을 반짝이며

녹청색 파충류처럼 꼬리를 감추고

그 짐승에 대한 기억은

어떤 행성에도 기록된 바가 없다.

망각의 밀도에 묻힌,

백치들의 가시덤불이 우거진

길의 밤.

별과 별 사이의 공간으로 성운이 흐르고

삼각점 밖 공허의 궤도에서 소멸하는

혜성의 붉은 꼬리.

여기,

화석보다 더 외롭게, 더 어둡게 살다 간

멸족된 마지막 후예가 남긴

자서전이 있다. 북극의 언어로

오로라의 정적만을 가득 새겨 넣은 책.

모래알이 되는 닿소리들과

모래알들로 지은 모음의 동혈(穴)

가다가 돌아 나온 뒤 다시는 찾아들지 못하는

청춘의 폐사지()처럼

길들은 씨가 마른 언어의 가계(家) 속으로 헝클어지고

이 허황한 무()의 길 위에서

실족하는 자들조차 없구나.

망각에 대한, 망각보다 더 오래된

망각의 친구인 밤.


- 김영래 시집 『사순절』 中







2022년 12월 14일 수요일 새벽 130분...


마음이 편치 않을 때 나는 필사를 한다.

좋아하는 시인의 좋아하는 詩를 읽고, 또 읽고...

필사하고, 그러면 어느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밤을 좋아하는 내가 오늘은 아니 실은 어제 낮에 필이 꽂혔던 김영래 선배님의 2013년 발간한 오래전 시집 『사순절』 中 <밤의 경전>을 방금 필사했다.


2022년 12월 14일 오늘 나의 필사


지금은 글을 쓰시러 멀리 전라남담양의 <세설원>에 가 계신다.

시간을 아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고, 이제는 내년(癸卯年) 토끼해에 만나자고 카톡을 보내오셨다.


선배님은 종종 이곳을 떠나 지방의 문학촌에 몇 개월씩 입실 작가로 다녀오시기도 한다. 그곳에서 지난번에는 장편소설을 반쯤 완성해 오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에서 떠나서 그렇게 훌훌 다녀오시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참 부럽기도 하고, 늘 글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멋져 보이기에 그런 끈기와 성품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아직 가정을 지켜야 하고, 살림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여러모로 요즘 나의 삶이 순탄치가 않아서 많이 피곤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야만 할 것 같다.

너무 방만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밤이기도 하다.


밤을 사랑하는 내가, 밤이 아까워 잠을 자는 것도 미루었던 이유로 결국 숙면의 시간이 매우 짧아서 건강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는 밤을 조금 덜 사랑하는 쪽으로 생활의 패턴을 바꿔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추신.

어제(2022년 12월 13일) 오후에 한국디지털 문인협회에서 '장석주 시인'송년특강이 있었다.

특강을 들으며 찍은 사진과 돌아오던 밤하늘 사진을 덤으로...

유익한 시간에 감사하며...


추신 2.


추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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