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일기, 그리고 詩 그.리.움.

만 스물두 살, 1996년 나의 기록...

by 이은희 시인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조금은 푸념같이 느껴질 것 같아서 그렇긴 하지만...

재작년쯤 예전 다이어리들을 정리하다가 종이 다이어리에 펜으로 쓴 글들을 워드로 옮기는 작업을 했었다.

2026년 올리는 첫 글은 어떤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그것 중에 1996년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 나의 만 스물두 살의 기록을 브런치에 남겨본다.

참 풋풋하고, 신선한 청춘의 기록들...



독백 1

- 96년의 어느 날?

어젯밤 꿈에 무지개를 보았다. 밤이 늦도록, 새벽까지 끊임없이 내리는 비 소리를 자장가 삼고 잠든 탓이었을까? 일곱 빛깔 무지개가 유난히도 맑은 하늘에 또렷이 그려져 있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힘겨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사는 느낌이 좋다.

아마 삶에서 무지개를 보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느낌을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독백 2

-96년 7월 16일 火

가장 자유스러운 나만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는 나 홀로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녹색 분재들이 하늘을 향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하늘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지붕 마냥 나를 지켜주고 있다. 거기엔 하늘색의 바람과 조용함이 함께 있다.



독백 3

-96년 7월 17일 水

커피를 마셨다. 오늘 내내 멍하니 있는 대로 모든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속을 달래려고 방금 커피를 마셨다. 가슴이 답답할 만큼 먹었다. 그리고 덥디 더운 한낮에는 책을 읽다가 자연스레 잠이 들었다. 오늘 하루 내내 잠을 자고, 먹고, 책을 읽고.... 그 외에 한 것이 없는 듯하다. 몸무게가 갑자기 2kg 정도는 늘어난 것 같다. (그래봐야 45kg이 넘을 정도일 테지만...) 신경숙의 『깊은 슬픔』의 막바지를 읽고 있다. 그렇게도 ‘은서’를 사랑하던 ‘세’가 왜 그렇게 그녀를 떠나버린 것인지? ‘은서’와 ‘완’이 함께 잠자리를 했다는 이유가 그렇게도 그를 힘겹게 아니, 아예 돌아서버리게 한 것인가? 그렇게 남자들에게는 여자의 육체가 중요한 것인지? 글쎄다. 지나버린 과거의 사랑이 그렇게도 사랑하던 여인을 아예 마음에서 몰아내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인가? ‘세’가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랑이란 그렇게 엇갈리는 것이어야 아름다운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사랑을 파탄 내는 질투와 의심은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서글픈 마음으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 리. 움.

이은희



숲이 다가오는 시간

물큰 나무들 체액에

어린 날,

어느 지점에서 가파른 기억들

헐떡이는 숨을 만들 때


어떤 이 영원히 지워져 버려도

그 어떤 이,

영원히 나를 기억한다면

그 또한 괜찮지 아니한가


별을 보고 그린이

호수에 내린 별들이

그린 내

그. 리. 움.





추신.

2026년의 첫 태양을 드립니다.


추신 2.

이은희 시인의 연재 브런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