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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Apr 19. 2022

주저 없이 사랑의 길을 선택한 영원한 사랑꾼의 속삭임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읽고...

주저 없이 사랑의 길을 선택한 영원한 사랑꾼의 속삭임

-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를 읽고...

                                                                                                                                                                            

이은희


 브런치 작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들러본 이창훈 시인의 브런치 속에서 ‘동주’라는 이름만으로 한 순간 깊은 공감대를 이뤘던 것은, 우리가 윤동주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인연의 끈이었으리라.


언젠가 나는 오래전 나의 詩 <함께 웃을 수 있을 윤동주를 만날 때까지>를 쓸 때 그런 상상을 했더랬다.

윤동주 시인이 살던 그 시절에 내가 살아서 그를 한 번쯤 만나볼 수 있었다면 하고, 그런데 이창훈 시인은 그의 詩 <동주를 상상함>에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살아 나왔다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우리 둘 모두 ‘윤동주’를 만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을 테지만 나의 그리움이 과거로의 것이었다면 이창훈 시인의 그리움은 ‘윤동주 시인’이 살아있었을 미래의 것이었으리라.




 이창훈 시인이 브런치에 이벤트를 걸어둔 것은 작년 21년 10월이었지만 내가 그의 브런치 속에서 이벤트를 확인한 것은 올해 3월의 끝자락이었고 나는 염치 불고하고 그 이벤트에 참여가 가능한지를 물었고 흔쾌히 그의 귀한 시집을 받을 수 있었다.


우체국에 가서 등기를 부치면서 이문재 시인의 <푸른곰팡이>를 떠올렸고 발효의 시간을 거쳐서 시집이 당도하기를 바랐다는 이창훈 시인은 내가 그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읽기도 전부터 천생 ‘詩人’이며 또한 아이들에게 제법 멋진 ‘문학 선생님’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의 시집을 작년 가을이 아닌 지금 이렇게 봄이 한창인 날에 선물로 받게 된 것은 어쩌면 내게 오히려 행운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펼치며 ‘부디 사랑이 당신을 부르면 주저 없이 따라가시기를’로 마무리되는 ‘시인의 말’에서부터 나는 그의 사랑꾼적 기질에 바로 매료됐던 것 같다.

'시인의 말' 전문 사진


그의 시 <조화造花>에서도 그런 시인의 모습은 쉽게 확인이 된다.


꽃이 되고 싶었다

꽃으로 피고 싶었다


너만의 꽃이 되어

네 눈 속에

네 가슴 한복판

너만의 꽃으로 피어나고 싶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햇살 한 줄기 내려오지 않아도

뿌리내릴 뿌리 하나 없어도


밝고 화사한 얼굴을 들어

태어난 빛깔 그대로

그냥 말없이 너를 보고 싶었다


너 없는 봄날

너에게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 <조화造花> 전문


 사랑을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물도 햇살도 주지 않아도 그저 무엇 하나 바라지 않고 시인은 자신의 빛깔 그대로 말없이 사랑하는 너를 보고 싶었고, 영원한 너의 꽃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사랑꾼의 모습인가? 시인은 馬 유치환 시인의 <행복>에서처럼 사랑하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진리를 이미 알고 실천하고자 한다.    


너를 위해서라는 진부한 말은 쓰지 않으리


눈부시게 맑은 가을

하늘


헤어지기 위해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어둠 밝히며

밤새워 새긴 손편지는 건네지 않으리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리

다시 언젠가 라는 말도 하지 않으리


웃지는 못해도

울음없는 무음無音으로


힘차게 손 흔들며


안. 녕.


- <작별作別> 전문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시인에게 사랑하는 너를 보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쩌면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통사정을 해서 붙잡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는 ‘밤새워 새긴 손편지’를 건네지 않는다. 굳이 마지막이라는 말도, 언제 다시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힘차게 손을 흔들며 가는 너의 발걸음마저 가볍게 보내줬던 것이리라.


별은 너무 멀리 있지만

이별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별은 저렇게 멀리서 빛나지만

이별은 이렇듯 가까이서 캄캄히 어두워진다


별은 슬프도록 아름답지만 저 멀리 있고

이별은 슬프지만 이렇듯 가까이 다가온다


모두가 잠든 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자여

바라보며 눈물 떨구는 사람아


별의 뿌리는 어둠이지만

이별의 뿌리는 언제나 절망이다


한 사람의 감옥을 만들지 말고

가슴에

한 사람의 무덤을 만들어야 한다


- <이별> 전문


 사실 이창훈 시인의 詩 <이별>은 윤동주 시인의 詩 <별 헤는 밤>과 살며시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오버랩의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듯이 <별 헤는 밤>과 같은 시어가 여러 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이나 주제까지 일치하는 것은 아닐 게다. ‘별’은 너무 ‘멀리’ 있기에 그러나 또한 그렇기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이며, ‘이별’이란 단어는 ‘별’과 같이 두 개의 음절 중에 끝의 음절은 *별, 이렇게 같은 소리가 난다.

하지만 그 의미는 분명 전혀 다르다.

어쩌면 시인은 이 시에서 ‘별’과 ‘이별’을 함께 씀으로 언어의 유희를 드러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오묘하게도 모두가 잠든 밤, 별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는 이별한 자들에게 사랑꾼인 시인은 또한 조언한다.

 ‘한 사람의 감옥을 만들지 말고/ 가슴에/ 한 사람의 무덤을 만들어야 한다’ 고 그렇다면 한 사람의 무덤은 무엇일까?

자유가 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괴로움을 상징하는 ‘감옥’ 과는 대비되는 ‘무덤’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를 죽는 날까지 가슴속에 깊게 묻어 간직하라는 진정한 그리움이 아닐는지...


만날 때는

언제나 첫 만남이라 믿으며


너로 인해 모든 것들이

새롭게 피어나는 봄

길 위에 흐드러진 환한 얼굴로

눈부신 너에게 갔다


헤어질 땐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해 저무는 길

어두워지는 밤의 얼굴로

총총 빛나는 너에게서 돌아왔다


- <연애> 전문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해보았을 것이다. 처음은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상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랑은 점점 퇴색되기도 하고 익숙해지면서 상대에 대한 마음에 배려와 기쁨이 사라지기도 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 <연애> 속에서 시인은 그렇지 않다.

만날 때는 늘 첫 만남인 것처럼, 헤어질 땐 언제나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애틋하게 너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어쩌면 조금은 식을 수도 있을 사랑이 늘 처음과 마지막인 것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킴으로 너를 여전히 똑같이 사랑하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나의 서평이 너무 길어져버려서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하다.

어쩌면 이제껏 긴 설을 풀었던 이유가 말해주듯이 그의 시들을 읽으면서 내가 그만큼 많이 공감했다는 것이고 아마도 그가 나와 동시대를 살아왔기에 나의 여고시절 감수성을 끄집어내 준 부분 역시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창훈 시인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에는 제목이 말해주듯 너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꼭 연애감정만을 나타내는 사랑만은 아닐 것이다.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5부에는 지금 시인이 문학교사로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의 자칭 ‘어린 벗’들과 함께 해온 추억들도 <교실 일지>라는 이름으로 담겨있다. 사실 5부의 시들도 소개하고픈 시들이 많았지만 지면 관계상 마지막으로 그래도 꼭 소개하고픈 시 한 편을 추가하며 이 서평을 마무리한다.


   <분필>

      이창훈


생生이라는 칠판


불태운 적은 없어도

궤도를 벗어난 적 없지만

나의 길을 가고 또 갔다


슬픔을 아는 시를 사랑했고

먼저 간 슬픔의 시인의 시를 몰래 읽고는 했다

부끄러움을 알았고

그 부끄러움이 부끄러워 밤새워 시를 쓰기도 했다


이제 막 피어나는 봄날의 아이들에게

의자 하나씩 나누어 주며

함께 문학을 이야기했고


여전히 모르는 사랑에 대해

사랑의 시를 써서 들려주기도 했다

보여주기도 했다


한 땀 한 땀 새긴 삶의 문장들과

한 발 한 발 디딘 길의 발자욱들은

깨끗하게 지워진 칠판처럼 내일이면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닳고 닳아

서서히 작아져만 가는

온 몸으로 열심히 살았다


오늘도 나는 교탁에 선다





추신.


이창훈 시인이 써준 나의 시집 『아이러니 너』의 서평도 공유한다. (2022.12.31일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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