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파괴력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서구 기독교인들의 오해

신약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인 N.T. Wright이란 분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계와 복음주의 진영에서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다작의 저술가로 알려져 있지요. 그는 복잡한 신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전통적 관점 (예: 의롭다 함)에 도전하며, 대중 매체 (BBC, 콜버트 리포트)에 출연함으로써 전 세계 수많은 성경 독자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답니다. 훌륭한 분이기는 하나, 제게 있어서는 영등포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몇십년간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과 별 다를 바가 없긴 합니다.


어쨌거나 이 분은 많은 서구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오해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구원을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모든 피조물의 갱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는 대신, 신자들은 종종 믿음의 목적이 단순히 죽은 후 영혼이 천국으로 탈출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고 이 분은 말하지요.


Wright에 따르면, 이러한 오해는 내세에 대한 관점뿐만 아니라 종말론과 영적 전쟁에 대한 해석까지 왜곡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신약성경이 인간이 세상을 떠나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거하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하고, 인간들도 그렇게 관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분은 이러한 오류를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는 것을 강조한 Greek Platonism (그리스 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돌립니다. 그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현대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지요.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이것이 중요합니다.



산상수훈 중 가장 중요한 구절

마태복음 5장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 처음으로 말씀을 전했을 당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산상수훈이고 영어로는 The Sermon on the Mount 라고 하지요. 한국에서는 복, 복, 복을 따지기에 이 chapter를 팔복 (8가지의 복)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서방세계도 이 부분은 8 blessings 라고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복'이고, 서방권에서는 동양에서의 '복'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잘 읽어보면 현대 기독교인들은 이런 복을 바랄지 의문이 듭니다.


Sermon on the Mount 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4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5 Blessed are the meek,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6.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7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10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11 “Blessed are you when people insult you, persecute you and falsely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because of me. 12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in the same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ho were before you.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당)하였느니라.


이 10개의 구절 중 가장 중요한 구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보는 경우로는 9절, 즉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한국어로는 9절이 "아들"로 되어 있지만, 영문으로 그리고 본문으로도 "자녀들"로 되어 있음을 우선 지적하고 가겠습니다.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천사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이들을 아들이라 지칭하신 기록이 많습니다. 구약성경, 특히 창세기 6장과 욥기에서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들”(히브리어: bene ha-elohim)로 언급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궁정에서 하늘의 존재로서 신성한 지위를 지녔음을 의미하며, 인간과는 구별되었지요. 다만 해석은 다양하여, 창세기 6장의 경우 강력한 통치자나 의로운 혈통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천사들은 하나님이 아들이라 칭하실 정도로 특별한 존재들이었고, 미가엘 (영어로는 Michael) 의 경우는 군대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이를 두고 왕자 (prince) 라고도 하셨을 정도니까요.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택하신 자녀들"이라 한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chosen people (선택박은 민족)의 의미로 보는 편이 가까우며, 천사들을 지칭하신 것보다 인류 전체를 두고 가까운 존재로 지칭하신 기록은 찾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신약성서, 그것도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인지요? 단, 화평케 하는 자는, 즉, peacemaker 여야 합니다.


산상수훈 중 9절이 그렇기에 가장 중요하다는 제 생각입니다.



주기도문 = 산상수훈?

놀라운 사실은 위 산상수훈의 그것, 즉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구절의 context 가 주기도문에도 있다는 것이지요.


주기도문, 일명 “Our Father” 라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독교의 핵심 기도문으로, 마태복음 6:9-13과 누가복음 11:2-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그분의 나라가 임하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매일의 양식을, 용서를, 그리고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킹제임스판(KJV)에서는 “빚/빚진 자들”로, 현대판 성경에서는 “죄/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로 번역되는 등 다양한 번역이 존재합니다.

아래는 영문 주기도문입니다.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여기서 산상수훈의 그것, 즉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구절과 상통하는 단 하나의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구절일까요?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바로 위 구절이 산상수훈 9절의 의미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듯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바로 peacemaker,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셩경은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 사랑하는 자,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된다는 점.



주기도문에 담긴 파괴력

다시 서두에 언급한 N.T. Wright 를 언급하겠습니다. 이 분은 많은 서구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오해해 왔다고 주장하지요. 구원을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모든 피조물의 갱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는 대신, 신자들은 종종 믿음의 목적이 단순히 죽은 후 영혼이 천국으로 탈출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고 이 신학자는 말합니다.


주기도문의 첫 부분을 보겠습니다: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구원을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모든 피조물의 갱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주기도문 첫 부분에 담겨 있지요.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 뜻은 기독교인들의 struggle 은 천국에 가는 목표를 이루는 것도 있겠지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를 이루는 데 있겠지요. 그럼 우리의 (기독교인들의) struggle 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겠습니다: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운 세상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영적, 육적 싸움이겠지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기도들... 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 로 끝나는 나약한 기도가 아닌, 강력한 영적 군사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예수께서 알려주시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또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을 입게 된다는, 주기도문이란 정말이지 아주 강력한 기도임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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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nuary 0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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