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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30. 2021

"Welcome to My World (3/4)"

관심이었을까 또는 일탈이었을까?

이렇게 '지아'라는, 그때까지도 아직 정체모를 여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주 후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이후 개인적으로 가까이 지낸 시간은 1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멀게 하지만 업무적으로는 꽤 가까이 지낸 시간은 작년까지 계속되었으니 약 23년간 지속되었지요. 나중에 지아씨가 알려주었지만 그날 밤의 행동은 '상대를 분석하는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방식'이었다는군요.  믿을 수 있는 자산관리인이 필요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Morgan Stanley 형에게 부탁을 했고, 그 형이 저를 소개한 것이더군요. 나중에 이 형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무례함과 황당함으로 기억되는 그날 밤 일은 이 형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고, '지아'라는 사람이 워낙 예측불허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그리고 워낙 영향력 있는 집안의 사람이라)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고 하더군요.


참 특이한 경험을 통해 정체모를 여자 '지아씨'는 제 고객이 되었습니다. 전화를 한지 약 1주 후 계좌를 개설한 다음 그 다음주에 적지 않은 금액이 송금으로 들어왔습니다. 거래방식도 wrap 방식이 아닌, per trade로 한, commission 이 매 거래마다 발생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지요.


계좌 개설 신청서를 쓸 때 '지아씨'의 가족과 그녀의 신상정보에 관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한국 뉴스나 사회소식에 밝았다면 그 magnitude 를 충분히 미리 파악할 수 있었던 가족과 그에 속한 사람이었지요. 약 1년 후 '지아씨'의 소개로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이 분 또한 저를 통해 계좌를 개설했으며, 같은 방식의 거래를 하기로 동의하였습니다. 지아씨의 경우보다 더 큰 액수의 송금이 들어왔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분의 경우 - 저는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뉴스를 구체적으로 접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이 분과 그 가족의 평판을 듣게 되었습니다만 - 평판과는 달리 아주 온화하고 생각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산관리인이라 저를 잘 대해준 것이 아닌, 아주 가까운 옆집 중년의 이웃처럼 다정하셨었지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중반까지 매년 수익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2001년, 2008년, 그리고 2012년 당시에는 큰 손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던 분이셨지요.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지만, 제겐 '고객'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큰아버지'같은 분으로 기억에 남게 된, 참 소중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미국에서 첫 거래를 시작한 후 몇 년이 지난 후 (한국에 20년 만에 들어가게 된 이후의 시점부터) 두 가지의 작은 고민이 생기더군요: "내가 이들의 한국 내 사회적 위치에 대해서 신경을 썼어야 하나? 지금부터라도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거래 초반부터 가진 나름대로의 기준은 "나는 이 사람들의 미국 내 자산 관리인일 뿐이지 내가 이 사람들의 한국에서의 위치나 영향력에 신경을 쓰거나, 이들의 '사회적 지위'에 맞게 내가 태도의 변화를 가져 올 필요는 없지"라는 생각이었고, 이런 태도는 제가 한국에서도 일을 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이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지켜왔만, 저의 이런 '건방진' 태도가 이 부녀 고객의 주변 사람들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던 경우가 꽤 자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기울어진 사고방식에 인한 잘못된 것이라고 치부해 버렸고, 그저 저는 제 high net client 가 당연히 받아야 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데만 신경을 썼습니다. 이런 태도 - 아마도 젊어서나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이가 더 든 이후부터는 하게 되더군요.


지아씨는 뉴욕에 오게 되면 꼭 연락을 했습니다. 계좌상태 등을 직접 확인하고자 함이었지요. 98년 가을, 지아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지역번호 212 번호로, 익숙한 전화번호였지요.


"Jay 씨. 계좌관련 의논드릴 일이 있는데, 시간이 되실까요?"

"그래요? 오후 4시 넘어서는 가능합니다. 어디에서 뵐까요?"

"53가 5th Avenue 쪽으로 오시면 고맙겠어요."

"네, 차가 밀리지 않으면 4시 30분까지는 가겠습니다."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장 마감 후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장소는 St. Thomas Church 와 MoMA 가 바로 옆에 위치하던 교차로였고, 지아씨가 속한 회사의 뉴욕본부가 근처에 위치해 있던 곳이었습니다. 매번 만날때마다 특이하고도 고급스런 옷차림을 했던 지아씨는 그 날도 여전히 화사하고 고급스런 정장차림이더군요. 오후 5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다림질 선이 아직도 살아있는 흰색 business pants 에 jacket 을 입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힐을 신고, two-button down 검정색 블라우스 - 바지와 재킷, 거기에 검정색 블라우스의 스타일이 마치 70년대 후반 Charlie's Angels 에 나와도 꽤 어울릴듯한 복고풍의 의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잘 어울려 보이더군요.


"사실, 계좌이야기는 지어낸거고, 오늘은 Jay씨가 저를 꼭 도와주셨으면 해서 오시라고 했어요."

"아, 다행입니다. 계좌문제가 뭔지 걱정했었는데. 그런데 어떤 일인가요?"

"제겐 아직도 영어가 어려워서, 제가 살 물건들이 몇 있는데 동행해주셨으면 해요."


계좌문제가 아닌 이상 저는 무엇을 해도 찬성이었습니다. 고객관리가 허술했나?하는 걱정에 대한 한도감 때문인지 제 기분이 반전되어 오히려 매우 upbeat 된 상태가 되었지요. 그녀와 저는 Saks Fifth Avenue 와 Tiffany's 에 들러 여러 accessories 를 샀습니다. 점원들이 조심스럽게 우리가 서 있는 showcase 쪽을 바라보는 것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아씨의 구매력은 대단했었습니다. 사실 지아씨의 영어실력도 대단해서 제가 도울 필요는 없더군요. 저를 왜 불러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제 일상에서 올 일이 없는 상점에 온 이상 그저 깊게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샤핑을 마친 후 우린 50가 쪽으로 걸어내려가기 시작했고, 저는 지아씨의 약간 뒤쪽에서 따라서 걷고 있었지요 - 샤핑백을 들어줄 입장도 아니었고, 친구도 아닌 우리, 그렇기에 나란히 걷자니 관계상 맞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지아씨가 갑자기 서서 뒤돌아보며 제게 물었습니다:


"Jay 씨. 왜 뒤에 있어요? 제 옆으로 와서 같이 걸어요."

"아, 네."


그래서 나란히 걷기 시작한 우리 둘, 조금 더 걷다가 그녀는 제게 또 물었습니다:


"백... 안 들어주실 거예요? 무거워요."

"아, 네."


백 두 개까지 들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 좀 가까이 걸어요, 우리."

"백때문에 가까이 가기가 불편할 듯 한데요?"

"두개라도 남자니까 안 무거울거여요. 오른손으로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서 또 그녀의 말대로 하고 가까이 그리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좋네요, 이렇게 처음 같이 걷는 거. 누가 보면 우리 연애한다고 그러겠어요, 호호"


저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그녀의 당돌하면서도 황당한 태도는.... 약간 불쾌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더군요. 그렇게 우린 그녀의 사무실 (뉴욕본사) 이 위치한 곳에서부터 두 블럭정도 떨어진 곳까지 걸어내려왔습니다.


- Co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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