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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01. 2021

"Welcome to My World (Final)"

관심이었을까 또는 일탈이었을까?

1998년 가을부터 그 다음해인 1999년 여름까지 지아씨가 뉴욕에 올 때마다 꼭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이었지요. 하지만 이날 이후에는 샤핑이 아닌, 뮤지컬, 음악공연, 미술관, 식당, 그리고 Soho 가 약속 장소였습니다. 계좌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녀는 잊지 않았습니다 - 아마도 그녀는 이런 나들이를 "자신의 자산과 관련된 회의와 그에 따른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으로 정의 또는 정당화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당시엔 지아씨도 저도 미혼이었으니 이런 만남이 사실 두 사람 모두에게 말하지 못할 어떤 특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녀는 행여나 이야깃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이런 짧은 여정들에 대해 매 조심스러워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SoHo 에 갔었을 때도 여러 gallery 들에 들어가고 나올 때도 주변에 한국사람이나 동양인들이 보이면 갑자기 고개를 숙이거나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미술관에서도 그랬고, 식당에서는 (한국식당이 아니라 그랬는지)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뮤지컬 공연과 음악공연 때는 어두운 조명 탓에 그녀의 아마도 가장 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상했던 첫날의 만남 이후 지아씨의 오만함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의 옷차림, 씀씀이의 정도, 가는 곳들, 그리고 말투 등은 제가 봤던 젊은 한국 여자들과는 아주 달랐지요. 저도 spending 이 (회사와 업종 덕) 폭과 정도가 남달랐지만, 지아는 이보다도 다른 dimension 에서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다녔었는데, 이 강아지도 달라 보이더군요.


우리 둘의 대화는 사적인 질문 없이 단순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에 대해 전해 듣는 이야기,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해서는 신문을 통해 접했지만, 지아씨는 제게 그 어떤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대화는, 예를 들어 식당에서는:


"정원 씨 lasagna 맛 어때요?"

"괜찮은데요?"
"내꺼는 lasagne 가 좀 덜 익은 듯해요. 질겨요."

"다시 손봐달라고 할까요?"

"아니에요. Sprite 하고 같이 넘기면 될 듯해요."

"네. "


미술관에서는:


"아까, 이 화가, 어떤 사람이라고 했지요?"

"아, Sargent 는 미국의 인상파 화가였고, Portrait of Madame X 가 아마도 대표작일 거여요."

"아, 그랬었지요. 또 잊었어요."

"기억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진 않아도, 기억력이 좋지 않나 봐요."


이런 대화도 그나마 10분 또는 15분마다 한 번씩이었으니, 대화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다닌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이런 류의 대화도 부담이 없어서 좋다는 생각도 꽤 많이 했었습니다. 사람 간에 말이 많아지면 그만큼 소모되고 피곤해지는 게 좋지 않다는 생각이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9년 가을 이후로는 우리의 이런 나들이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제 일이 갑자기 많고 바빠졌고, 이를 이해한 지아씨는 만남 없이 전화로만 계좌 관련 이야기를 저 또는 제 팀 비서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 이런 변화가 다행이었던 것이 2001년부터는 한국에 드나들기 시작한 때였던지라 바쁨의 차원이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제 고객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한국에서는 야간에, 그리고 뉴욕에서는 낮에 이 분들의 자산관리를 했습니다.


한국에 갈 일이 생기기 시작한 2001년부터는 비행기 여행이 매우 잦았습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한 달에 두 번 왕복을 했고, 2004년부터 2010년간은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세 달에 한 번 정도 비행기를 탔었지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나, 제 비행기 티켓은 예약을 한 후 12시간 정도 후에는 누군가에 의해 fully paid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와 항공사간의 어떤 계약으로 자동으로 지불되는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더군요. 제가 내야 할 비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의아했었는데, 지아가 제 비행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2001년 봄 한국에 한 번 다녀오고 난 후였습니다. 항공사에 걸어서 문의를 한 결과 알게 된 사실이었지요. 지아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입니다. 받아주세요."


라며 그 특유한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말투로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그 후 몇 차례 비행기 티켓을 제가 직접 내려고 해 봐도 '환불'을 통해 다시 돌아오는 일이 계속되어 할 수 없이 신세 아닌 신세를 지게 되었지요. 이런 성의는 계좌를 정리한 2018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998-1999년간의 그런 outing 은 그 이후로 없었습니다. 서로 모두 일이 바빠진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관계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이 어떤 흐름이나 패턴이 끊어지게 되면 (우리 경우엔 바쁘게 되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 그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더군요.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30세가 좀 넘어 지아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리고 가정생활과 일을 같이 하는 중년의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가족의 사업을 일부 관리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바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날들 (미국의 일반적인 공휴일 -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 그리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제 생일과 승진기념일 등엔 미리 무엇인가를 준비하여 꼭 인편으로 제게 선물을 전달했고, 저는 그 때마다 전화를 하여 감사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녀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입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지요. 1998-1999년의 일들, 그게 관심이었건 일탈이었건간에 간간히 생각이 날 때마다 돌아보면 웃음을 짓게 하더군요. 엉뚱하게도 "What if?" 라는 식의 질문을 제가 제 자신에게 던지며 그녀와의 관계가 발전했다면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녀가 그녀의 세상에 저를 먼저 초대한 것은 사실이고, 저는 그 공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 언제나 어느 정도의 거리가 느껴지는 말투와, 서로간에 사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대화로만 이어진 만남들이었지만,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이런 관계가 또한 매우 편하고 안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자산관리에 있어 저는 거의 모든 해 market outperform 을 해 왔지만 언제나 모든 것들에는 끝이 있지요; 그녀의 계좌가 정리된 후 2년이 지난 지금, 그 후로부터는 지아로부터의 연락은 끊어졌습니다. 물론 그 때 마지막 인사와 이에 맞는 저녁을 같이 하고 마무리하며 작별한 우리 - 당연히 업무적인 인사치레와 비슷한 '안녕'이었습니다. 남은 미련, 후회, 아니면 근거없는 미움(?)이랄까, 그런 감정은 없었습니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업무관계고 비중도 상당했기 때문에, 그 빈 공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영향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해도,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으로는 다가오지 않더군요. 이렇게도 우린, 어찌보면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마무리를 했습니다.


다시 말 할 기회가 있을까? 하며 가끔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가 먼저 제게 연락을 해 왔기에, 다시 연락이 온다 해도 아마도 그 방식일 듯 합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업무관계가 아닐 우리의 관계가 왠지 걱정이 됩니다 - 하지만 이런 걱정도 불필요함이, 20여년전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관계가 마무리된 2018년까지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평행선과 같은 일직선이었지, 어느 한 포인트에서도 가까와진 적이 없었기에, 이 두 선이 만나거나 가까와질 경우는 없을 듯 합니다.


이 사람을 생각할 때면 "Welcome to My World" 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이 노래는 70-80년대 대한항공의 광고노래로 유명했지요? 어렸을 때 뉴욕으로 이민을 가기 전 어느 날 TV 에서 광고와 같이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난 후 계속 기억속에 남는 곡입니다. 참 편안한 가사와 음율이지요. 20여년 전 그 때처럼,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모든 생각과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편하게 이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응하고 싶습니다 - 그 때처럼, 아무 일도 없듯이.


https://www.youtube.com/watch?v=lEzTxY233OU


Welcome to my world
Won't you come on in?
Miracles, I guess
Still happen now and then


Step into my heart
Leave your cares behind
Welcome to my world
Built with you in mind


Knock and the door will open
Seek and you will find
Ask and you'll be given
The key to this world of mine


I'll be waiting here
With my arms unfurled
Waiting just for you
Welcome to my world


Waiting just for you
Welcome to my world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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