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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pr 09. 2016

"31곳의 식당과 24곳의 커피샾 (final)"

한국에서 프랑스로

윤주가 한국을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서울의 어느 커피샾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와의 만남 후, 그녀는 저녁에 프랑스행 비행기로 바로 출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짐은 이미 부쳤다고 한 그녀는 그 날 오후 회사에서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저와 밖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정원씨, 혹시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와 줄 수 있어요? 사람들이 좀 많아요.”    


어떤 의미의 말인지 이해한 저는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이미 저를 기다리고 있던 윤주… 처음 보는 짙은 화장에 아주 멋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파스텔조의 색을 선호하는 그녀였습니다.    

차를 타고 건물을 빠져나왔습니다. 1층 바깥에는 윤주의 회사 직원들 몇 명이 보이더군요. 만약 윤주를 약속되었던 장소에서 만났다면 오해를 살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오늘은 정원씨 결정에 맡길게요.”    

“나랑 작별인사를 한 후, 공항버스를 타고 가나요, 공항엔?”    

“네, 오후 7시니까, 시간은 충분해요.”    

“그럼, 공항으로 갈까요?”    

“정말… 괜찮겠어요? 정원씨 바빠서 … ” 그녀는 놀란 듯 저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우리, 마지막 길인데, 일은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 말을 듣고 윤주는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본 그 미소,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렇게 우린 인천공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4시였지만 겨울이라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고, 저 멀리 인천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바람이 꽤 많이 불던 날이었지요.     


“다리 건너, 어디 잠깐 세울 수 있어요?”    

“추울 텐데, 왜요?”    

“마음속 깊이 겨울바람을 마셔보고 싶어요. 마지막이니까요”    

“공항에서 마셔도 되지 않을까요?”    

“아니어요. 꼭 넓게 트인 곳에서 겨울 공기를 마셔보고 싶어요.”    


다리를 건넌 후 바로 옆 길로 빠진 후 갈대밭 옆에 세웠습니다. 매섭고 코 끝이 시리던 바람을 맞고 윤주는 서서 한동안을 갈대밭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저는 차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바람에 날리는 윤주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참 전, 겨울날 남대문 앞에서 아이보리 색 코트를 입고 절 기다리던 윤주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참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던 5분간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녀의 옆에 서서 거의 넘어간 해의 자취를 보고, 그녀와 다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 2층엔가 있던 한식집에서 저녁을 했습니다. 다시 밝아진 그녀, 또다시 말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들은 그녀 자신의 것도 제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31번째 식당에서의 저녁 만남을 뒤로 하고, 그녀가 탑승 수속을 밟는 절차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이번에 가면 언제 와요?”    

“… 안 올 예정이어요, 가능만 하다면…”    


근처 Dunkin Donuts에서 우린 간단히 coffee를 사서 마셨습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때 그녀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같이 한 24번째 커피샾이네요, 이 곳이.”    


그 후 30분간의 작별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진 gate를 확인한 후 돌아오던 길은 그저 어느 겨울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는 편지… 그래도 이렇게 늦게나마 윤주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해 주어서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은 언제가 될지라도 다시 마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    




윤주 씨:    


여성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1990년 겨울과 2001년 3월 봄으로 기억됩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그때 당시 High School 에 같이 다니던 재미교포 2세 여자아이였지요. 나는 그때 18살이었고, 졸업을 6개월을 앞두고 있었지요. 영어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7년째 미국 생활이었지만, 그때 American Pop 가사 여럿들을 섞어가며 멋지게 써 내려간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번 (한 번이라고 하기엔 100여 통이 넘었지요)은 2001년 3월과 6월에 걸쳐 나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국민학교" 6학년 동창과의 편지들이었는데, 그때엔 한국어 편지들로,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이문열 씨의 문체를 이리저리 사용하였습니다. 결국엔 다시 나의 필체로 돌아왔고, 그 사람도 다시 그 사람의 길로 돌아갔지만, 결혼까지도 생각하였던 우리였지요. 그 사람은 한국에서 결혼한 후 지금 New York City에서 남편의 공부를 돕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윤주 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느 책에서도 인용하지 않은 내 글이지요 –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을 즐기기에, 원문인 German으로도 번역을 해 가며 읽은 책의 글 체를 좋아합니다. 이 글을 흉내 내려하였긴 했습니다. 나에게는 여성을 상대로 세 번째로 쓰는 편지가 되네요. 한 번도 윤주 씨와는 한국어를 쓴 기억이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나름대로는 한국어가 매우 섬세한 언어라고 생각하기에. 어제 모임을 생각해 보며 글을 씁니다. 아마도 어제의 "마지막"만남이 내심 나에게는 "충격"이었다고나 할까요, 식사 제안을 하였을 때부터, 그리고 바로 전날까지도 마음이 평안하였는데 어제 오전부터 다른 날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더 솔직하자면, 다시 사무실로 가는 길은 매우 피곤하였습니다. 이 "피곤함"이란 일상적인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이고, 게다가 오래간만에 찾아온 느낌이라, 그리고 다시는 느끼지 못할 종류의 피곤함이라 생각해왔던 피곤함이었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어제 오후와 저녁, 그리고 밤이었습니다.    


의도와는 달리 제대로 인사로 하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내가 마음에 깊이 두었던 당신이었기에, 사진 한 장을 부탁하여 찍고자 하였으나, 이 또한 잊어버리고 -아마도 이미 약혼을 한 윤주 씨이기에, 혹시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일종의 "조심"을 한 듯합니다. 식사 내내 또한 그랬지요 -어젯밤을 통해 지금까지 생각해 보니 - 예상과는 다른 나였기에, 놀랍습니다.     


추억이란 생을 이어주는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어느 한 사람의 생) 에너지라 생각합니다. 나의 경우, 감히 “마음에 깊이 두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은 매우 강합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주며, 힘을 주곤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깊었다는 자체가 힘이 됩니다. 예전 프랑스 영화 (매우 오래된) 중 하나가 기억이 나네요, 한국어로는 “창살 없는 감옥”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그 영화의 대사 중 하나가 “인간은 회상에 사는 겁니다”라고 한 부분이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추억이라 부르겠습니다. 오늘도 결국 내일에 가서는 추억이 되니까요. 하지만 추억은 현실이기도 하며, 역시 나에게는 소중하였던 사람에 대한 추억이 내가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누군가의 소개로 다른 만남을 가지고, 또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그 사람과의 추억이 이들보다 중요하고, 또한 내가 동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마음속에는 소중한 추억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추억 속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추억은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도 역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아무런 사람의 추억이 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참 기쁨의 중심에 이르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악기를 마치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노래 부르기를 거절하는 사람의 심정이 괴로운 것 같지만, 그러한 소중한 사랑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능히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윤주 씨는 나에게는 추억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과거의 어느 일부분이 아닌, 현실에도 존재하는 추억입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자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며, 또한 언제나 소중할 것입니다. 나에 대한 윤주 씨의 마음이 어떠하였는지는 아직도 몰라요, 하지만 내 마음은 수년전 청담동 Pani에서 같이 한 때와 나눈 대화의 기억, 그리고 은마아파트 단지 떡볶이를 같이 하던 그 모습 또한 언제나 나와 같이 합니다. 그때, 그리고 어제 같이 나와 자리를 하였다는 사실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프랑스라는 곳, 여기와 New York 만큼이나 먼 곳이네요, 그리고 어쩌면 실제 거리보다 더 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건강하길 바라며, 그리고 변치 않길 바랍니다. 간혹 우리의 우정과 함께한 만남들이 생각에 떠오르면 편지를 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날이 되겠네요.     


감사해요, 윤주씨.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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