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가을
눈이 많이 왔던 그 날의 기억은 1988년의 마지막 날이었고, 타임스퀘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그 날의 흥분에 뒤덮힌 이유였을까요? 눈과 함께 내리던 콘페티의 흩날림... 작별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콘페티들에 파묻혀 제 첫 키스의 기억도 89년이 되면서 기억속으로 가라앉은 듯 했지만,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며칠이 지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았던 사람이 제게 해준 키스 - 입맞춤은 아니었지만 - 그리고 명절에 흔히 나눌 수 있는 인사와 같은 제스쳐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입맞춤의 조심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주저함을 보였던 손길, 그리고 제게 던져준 그 눈빛을 생각하면, 아무리 제가 16살의 어린 소년이었을지라도 그 의미에 있어 가벼울 수 없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Holly 와의 그 일은 여느 10대 소년이 그러하겠듯이,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도 자랑할 거리가 충분히 되었지만, 마음 속에서만 깊이 간직한 채 지냈고, 그 후 3년간의 high school 생활속에서 제 친구들의 첫 키스의 경험등을 들을 때에도 별다른 '감흥'도 없이, 그저 듣기만 했던 저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가운데 Jeanhe 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에게 제 마음을 모두 할애했기에, 그렇게 Holly 와의 일은 지워져 가는 듯 했습니다. 그 때의 그 일... 그저 인사였어 - 하며 그 일은 제 삶 속의 다른 기억에 밀려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큰아버지와 Holly 에게 자주 가겠다고 그렇게도 약속했지만, 졸업 후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큰아버지의 갤러리에 가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원하는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었기에, 2시간 이상 떨어진 맨해튼이란 곳은 마치 다른 나라처럼 멀게 느껴졌었지요. 하지만 명절 때 친척들과 같이 모였을 때 큰아버지를 통해 Holly 의 근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그녀는 이미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후, 아직은 큰아버지의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지만, 큰 미술관에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을 뿐, 대학생활은 저를 더 바쁘게 만들었고, 졸업 후 직장을 찾은 다음에야 찾은 마음의 여유 때문이었는지, 1996년 가을에 퇴근하던 길에 뉴져지에 있는 집에 가는 길에 큰아버지의 갤러리에 들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밤이 늦은 저녁 8시라 주차를 갤러리 바로 앞에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차를 갤러리 바로 앞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갤러리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Holly 는 아마 다른 어느 멋진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겠지 - 생각하고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갤러리 안에는 손님이 한 명 있었고, 큰아버지가 손님을 응대하고 계셨지요. 포장을 하고 손님이 떠날 때까지 저는 기다린 후, 갤러리로 들어갔습니다:
"큰아버지, 저 왔어요."
"아, 야, 너 왠일이냐? 은행일에 바쁠텐데 여기까지 올라오구! 여기 앉거라."
"오늘은 일찍 끝나서 집에 가던 길에 큰아버지 뵈러 왔어요."
"반갑구나, 추석에나 얼굴 볼 줄 알았는데."
반가와하시며 큰아버지는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같이 가게의 문을 닫은 후 큰아버지와 저는 차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큰아버지께서 친구분들과 모임을 한인타운에서 하기로 하셨기에, 제가 모셔다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혼자 일하시네요, 큰아버지. 사람 한 명 구하세요. 갤러리 일이 혼자로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러려고 한다. Holly 가 그만 둔 이후로는 그만한 사람 찾지 못하겠더구나."
"Holly 는 어느 미술관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구겐하임을 그렇게 원했긴 한데..."
큰아버지는 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운전 중 잠깐 큰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의 얼굴엔 이미 그늘진 표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직감하기에 아마 Holly 에게 어떤 일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애... 입원했단다. 암이래. 입원한지 3개월이 넘었단다."
아, 그렇게 눈 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경험은 아마 그 날이 처음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그래요? 어쩌나... " 하며 애써 제 마음을 감주려 노력헸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애가 너 그만둔 후 너 얘기 많이 했다. 네가 정서적으로 예민한 애라 미국에 적응을 잘 할지 많이 걱정도 했어... 그 애 말로는."
큰아버지는 제가 1988년 말일에 갤러리를 그만 둔 후 있었던 이야기들을 대략 해 주셨습니다. 그녀가 그렇게도 원했던 미술관 취직이 어려웠던 일, 남자친구가 5년간의 연애 후 그녀를 떠난 일, 그녀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 그리고 크고 작은 그녀의 일들을... 그래서 그녀는 더 좋은 것에 취직하지 못하고 갤러리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나봅니다. 아,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무심했을까? 하며 마음 한 편이 조여오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슬픔의 정도도 매우 저를 조여왔지만, 죄책감에, 그리고 아쉬움에, 그리고 왠지 모를 대상없는 미움과 분노가 섞인 감정에 마음 속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한동안은 저나 큰아버지나 아무 말 없이 Lexington Avenue 를 타고 운전하여 내려갔습니다. 저는 차를 32가와 5th Avenue 의 코너에 댄 후, 큰아버지를 내려 드렸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큰아버지는 조수석 창문을 통해 제게 그녀가 있는 병원을 알려주셨습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New York University Hospital 이었지요. 시계를 보니 시간은 밤 9시 반이었습니다. 면회는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차를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