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맞춤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필요한 상품을 들고 계산대로 갑니다. 카운터 뒤에는 점원이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나이가 좀 든 사람으로, 아마도 개인사업자이자 가게 사장이 분명해 보입니다. 나는 들고 온 물건들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지갑을 꺼내어 계산준비를 하면서, 레지스터와 상품을 번갈아 확인하며 눈을 바쁘게 돌리며 스캐너로 상품코드를 읽는 가게 사장의 얼굴을 봅니다. 아마도 저 나이에 일이 힘들겠지, 그리고 Covid-19 때문이라도 매출이 줄어서 의욕도 떨어졌겠지 - 하는 생각으로 일부러 밝은 톤의 목소리로 날씨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호빵이 많이 팔리겠다는 질문으로. 이런 질문에 익숙한 것인지, 성격이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가게 사장은 물이 흐르는 듯 매끄러운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계산이 끝나고, 구매한 물건들을 집어들고 나갈 때까지 이 가게 사장의 눈은 보지 못합니다. 거기에 더해 아무런 말 - 그 뻔한 "감사합니다" - 도 하지 않은 이 사람의 머리꼭지에 대고 "수고하세요"라고 마무리를 하고 나오는 내가 한심해 보입니다. "아, 또 나만 어색해졌구나"라는 느낌과 함께.


가끔 한국에서 미국의 단신뉴스를 접하는 것들 중 한 종류가 있지요? 길에서 이유 없이 빤히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어느 사람이 - 가해자인 이 사람이 백인이기도 하고 흑인이나 히스패닉이기도 하지만 - 폭행을 당한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듣고 사람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미국은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됩니다만, 사실 미국에서는 아시안계들의 '쳐다보는' 행위가 '쳐보는'행위로 인식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쳐보는'것이 아닌 그저 단순한 staring의 경우 또한 일반적인 미국사회에서는 매우 불쾌하게 여겨지는데, 불행하게도 많은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이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와서야 저도 이 staring의 불쾌함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폭행을 당할 이유나 정당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는) 한국에 비해 정신상태나 인격 수준이 다양하다 못해 극적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미국이라, 억울하게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거기에 더해 영어도 잘 안 되는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많아서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한국에서 고급 수준의 영어를 한다고 해도 거기서는 안 되지요. 말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고, 약간의 physical 한 접촉도 준비해 두어야 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다시 "아, 또 나만 어색해졌구나"로 돌아와서, 엘리베이터에서, 고객사에서, 혹은 샤핑을 하면서 지나치는 사람들과의 인사 또는 눈인사를 하지 않은지가 몇 년 되어갑니다. 내가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거나 눈인사를 하면 거의 90%의 상대들이 "뭐야?" 하는 눈초리를 보내기에, "아, 또 나만 어색해졌구나"와 같은 상황을 이제는 일부러 만들지 않습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황당하게도 전혀 안면식이 없는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며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들어설 때가 있는데, 이 순간 참 난감하더군요 - 내가 원래 저랬는데, 그리고 저렇게 해도 "뭐래?"라는 눈빛을 느끼기 싫어서 눈맞춤이나 인사를 아예 안 하고 살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 - 즉, "뭐야?"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지요.


전애는 상대가 누구 건간에 - 엘리베이터에서 1-2초간 눈을 마주친 사람이건, 회의를 같이 하는 상대방이건, coffeeshop 카운터 뒤에서 주문을 받는 여직원이건, 또는 화교이거나 중국사람일 듯 한 중국음식점 사장이건 간에 - 상대의 눈빛을 읽으며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자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특별하게 생각하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 그 자체였지요. 가까이 지내는 남성이 던지는 믿음직한 눈빛도 참 소중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요? 상대방의 눈빛을 통해 그 사람을 알고 싶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통해 느끼는 것들이 경계감, 귀찮음, 심지어는 적대감도 느껴지니 아예 눈맞춤을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아마도 10여 년쯤 되어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의아한 것이, 그 정도에 있어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와 비뚤어진 misfit 들의 혐오스러움이 정말이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뉴욕에서는 그나마 눈맞춤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살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된다는 점이지요. 가게 뒤에서 꽃을 다듬는 아마도 불법이민자인 여성, 피자 dough처럼 생긴 피자가게 주인장, 이발소 앞 의자에 앉아 마냥 앉아있는 노인분들, 또는 같은 빌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 여성도 이에 속합니다. 미소와 심지어는 짧은 말인사, 그리고 눈맞춤이 자유롭고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아직까지는 순하고, 착하고, 그리고 미국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한국에서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거나 눈맞춤을 시도할 바에야 그저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는 편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는 느낌은 저만 드는 것일지요?


haroldkumar_4_1104962031.jpg
1104377472.jpg



가뜩이나 쉽지 않은 한국의 전반적인 삶이 해가 갈수록 상대적으로 더 퍽퍽해지는 까닭이겠지요. 그리고 매일을 살아감에 있어 서로 간의 거리가 너무나 가깝고 모든 시설들의 규모가 좁습니다. 그렇기에 필요 이상으로 피곤해지고 성가시고, 귀찮아지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눈맞춤까지 기피하는 저 자신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입니다. 환경에 저항해야 하는데, 조금씩 이 battle에서 지고 있는 나를 자꾸 발견하게 됩니다.



- January 17,2023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