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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터 (A Toaster)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뭘 봐?"


토스터를 켜고 식빵 2장을 넣은 후 구우면서 미리 준비해 온 달걀프라이와 딸기잼을 혼자 먹으며 친할머니가 내게 한 말입니다. 당시 저는 5살이었고요.


1970년대 후반, 내 의도는 상관없이 친할아버지 집에 두 달간 맡겨진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사에 있어 불행한 조각 하나였지요. 좋은 기억은 바닷가 모래 위에 써놓은 글처럼 기억 속에서 빨리도 사라지건만, 나쁜 기억들은 벽에 새겨놓은 듯 왜 그렇게 오래 남는지요?아무리 야박했지만 친할머니였음에도 존칭을 쓰지 않는 이유는 많지만 이를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식빵이 토스터에 구워지면서 나는 좋은 냄새를 맡았지요. 그리고 일 분이 되지 않아 튀어나온 두 장의 빵이 구워진 색깔이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두 장의 식빵을 홀로 먹으면서, 친할머니는 내게 한 조각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땐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았지요. 대신 친할아버지 부부가 애지중지하던 바둑이에게 내 마음속의 화가 고스란히 그날 오후 전해졌고, 그 불쌍한 녀석은 온몸에 각종 다양한 페인트색으로 치장(?)을 당했습니다. 꽤 크게 혼이 났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통쾌함' 그 자체였지요. 이것도 나쁜 기억이라, 지금까지도 그 토스트와의 첫 만남의 추억과 더불어 고스란히 같이 따라 나오는 추억입니다.


New York에서는 거의 매주 두 번 정도 다양한 빵을 사서 먹어봅니다. 최고로 맛있다는 빵과 가장 비싼 빵이라면 모두 먹어보았고 간간히 그 빵들이 구워지면서 내는 향도 꽤나 즐겼지만, 1970년대 후반 한국이라는 나라의 장위동이라는 동네에서 맡아본 식빵의 향보다는 못하더군요.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있어 첫 경험이 가지는 비중은 상당한 듯합니다.


샤핑을 가게 되면 토스터를 파는 전자제품 코너에는 꼭 갑니다. 이제는 참 다양한 제품들이 많더군요. 기능도 놀랄 정도로 향상되어, 그냥 식빵을 넣어도 맛을 더 좋게 한다는 이야기도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구형 토스터를 고집합니다. 단순하고 골치 아픈 버튼이나 레버들도 없습니다. 단 한 개의 레버와 빵이 들어갈 긴 구멍 2개면 충분하지요. 그리고 요즘엔 Costco에서 파는 두꺼운 식빵을 사서 먹습니다. 아무것도 안 바르고, 그냥 생 빵을 구워서 먹는 행복이 있더군요. 두껍고 잘 만든 식빵일 경우 구워진 빵을 손으로 살살 벗기면 레이어 (layer)가 하나씩 떼어지는데, 바삭하게 구워진 그 종잇장처럼 얇은 것을 먹으면 그 맛이 더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스트를 우유에 넣어 먹어도 그 맛이 상당히 좋습니다. 이 습관은 저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영화 한 편을 보니 아마도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다만 Kevin Costner의 경우 맨 식빵을 좋아하는 듯하지만요.


https://www.youtube.com/watch?v=6zJBsh-db1k&t=18s


좋은 기억들을 돌판에 새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쁜 기억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써버리고 싶고요. 추억을 삶에 있어 동력의 한 축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 하지만 그래도 나쁜 추억만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 토스터에 오징어를 구워볼까 합니다. 걱정 하나는 이 오징어의 특유한 향이, 다음번에 빵을 구울 때 배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인데,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 봐야겠지요.


- February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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