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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범할 수 없는 그만의 공간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그는 4층 주차장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카트들을 한 곳으로 모아놓습니다. 그다음 그것들을 일렬로 차곡차곡 결합시킵니다. 길게 늘어져있는 카트들이 그의 손에 의해 마치 아코디언의 주름진 바람통처럼 10개씩 또는 12개씩 카트들이 한 줄로 겹쳐져서 포개지는 듯합니다. 카트 안에 무심히 놓고 간 전단지나 종이컵들을 꺼내어 가까운 쓰레기통에 넣는 것도 그의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모은 카트들을 무빙워크를 사용하여 3층 주차장으로 가져갑니다. 3층 주차장 여기저기에도 4층처럼 카트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천천히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그는 주차장 여기저기로 걸어가서 이 카트들을 4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렬하고 결합시킵니다. 3층에는 4층보다 카트의 수가 더 많습니다. 아마 두 배는 될 듯합니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이렇게 하여 12개짜리의 긴 카트의 결합체가 2개 더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3줄의 카트열차가 생긴 것이지요.


그는 이 세 줄의 카트열차를 한 줄씩 무빙워크 쪽으로 밀고 갑니다. 한 개만 해도 꽤나 무거운 이 카트가 자그마치 12개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이 묵직한 결합체를 한 줄씩 무빙워크에 밀어 올립니다. 보기엔 꽤나 느리게 돌아가는 무빙워크지만 이 카트들이 워낙 무겁고 옮기기가 쉽지 않기에 체구가 작은 그가 이 세 줄의 카트결합체들을 모두 올리는 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에 의해 이 세 줄의 카트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무빙워크에 올려져서 2층으로 이동하게 되지요.


그의 뒤를 따라가 봅니다. 표정 없이 하지만 힘겨움을 참는듯한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엔 미안해서 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그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바라봅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그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소리가 들리더군요. 작고 옅은, 실낱같은 2중주의 선율. 지겹도록 크게 틀어놓은 "이마트송" 때문에, 그리고 반복해서 들리는 무빙워크 안내방송으로 인해 들을 수 없었을 뿐, 어디선가 곱고 아름다운 선율의 classical music 이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그는 이 음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카트들을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그 음악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허리 뒤춤에 달려있는 작은 기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스피커가 있는 예전 MP3 플레이어와 비슷한 기기였습니다. 정확히 곡명은 알 수 없었지만 명곡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이 험한 일을 해내며 그는 마치 주변 환경이나 상황을 초월한 듯 보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가 작은 볼륨으로 듣고 있던 음악이 그로 하여금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요?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며 육체적으로 극한 노동에 가까운 일을 시계추처럼 느리게 하지만 정확하고 일률적으로 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그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이 모든 험하고 힘겨운 요소들을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지나가는 하찮은 이가 성가신 듯 곁눈질을 해도, 그의 존재를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세상을 이겨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 힘겨운 이 모든 것이 (선하게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만은) 언젠가는 아름답게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 June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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