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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09. 2021

"나의 학생, 그리고 나의 한 사랑 (4)"

"가보지 못한 Nyack 의 추억들"에 딸린 소소한 기억들

2000년대 후반부터 한인타운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한국계 가게들은 지금 지역 내 매우 관심있는 곳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꼭 한류의 영향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일본문화, 중국문화, 그리고 이를 이은 한국문화의 순서로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나, 공부를 하러 간 유학생들이나, 지사발령을 받고 단기간 머물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동질적인 문화가 매우 다행한 일이겠지만, 2000년 전에 미국에 살던 한국계 사람들은 이러한 '한국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화사하고 매력적인 화장품샵이나 빵집, 또는 옷가게가 아닌, 허름하고 이질적이며 궁색한 모양새를 하고 있던 '동양의 어느 한 작은 나라의 문화' 로 밖에 현지인들에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산 자동차나 전기기기 또한 그 당시에는 중저가의 품질이 좀 떨어지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요. 한인타운의 모양새도 요즘처럼 개선된 그것이 아닌, 아주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도 한인타운을 자주 가지는 않았습니다.


지혜를 기다리기 위해 한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에 들어갔습니다. 예전 기억에서나 떠올릴 수 있었던 곰보빵, 팥빵, 그리고 그 외 이런 저런 모양의 빵들과, 예전 한국에서 어릴 적 보던 여러 가게 장식들, 그리고 한국 가요까지 조용히 흐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국의 향수를 자극하기엔 충분한 소도구들이 가득 했습니다. 간간히 들어온 현지인들도 궁금함에 둘러보고 대부분 그냥 나가는 그런 곳... 아마도 음악 때문이려니 하며 거의 1시간동안 커피와 빵을 같이 하며 지혜를 기다렸습니다. 창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밤 문화가 없는 미국인지라, 밤 10시가 넘어가던 그 때 거리는 이미 매우 한산했습니다. 우범지대는 아니나 경찰들도 자주 보였습니다 - 야간 순찰을 할 시간이었지요.


건너편 식당에서 지혜가 거의 뛰어나오듯이 문을 통해 나왔습니다. 식당에서 보던 모습이 아닌, 마치 한국에서 방금 온 20대 여성처럼 옷을 입고 멋지게 치장을 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 좋은 분위기에서 그녀를 만나는 경우가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모습은 잠깐이나마 마치 제가 몇 년전 비디오로 빌려보았던 미니시리즈 "질투" 의 여배우 김혜리 씨가 아닐까? 할 정도로 약간은 마음이 설레기도 했지만, 이런 마음은 몇 초도 가지 않아 우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2세 교포로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도 미국인인 그 애가, 그렇게 총명하고 예쁜 아이가,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아끼던 주일학교 학생이, 왜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변두리 한인 타운의 식당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야 하는지, 그리고 가로등조차 처량한 이 거리에서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나를 보러 길을 건너오고 있는지... 그녀와 연락이 소원해진 두 해동안 나는 그저 맨해튼 남쪽에 위치한 코너 사무실에서 야경을 즐기며 다른 세상을 살듯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적지않은 자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래도 저는 그녀를 웃으며 맞이했습니다. 지혜 또한 그렇게 하더군요. 이런 저런 주변 이야기들을 하고, 가족들의 안부와 교회 이야기를 한 후 저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영어로) "왜 이렇게 된거니?"


(영어로) "네?" 의아한 듯, 하지만 이미 그 질문의 의도를 알고 있듯 지혜는 반문하였습니다.


(영어로) "여기 한인타운에 있는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영어로) "... 그냥 있어요. 지금이 편해요."


그 후 제게 해 준 그녀의 지난 2년간의 이야기는 추락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인이었다면, 즉, 백인이었다면 20대 초반에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그녀였지만, 한국인이었기에, 그리고 부모가 한국인들이었기에, 집 바깥에서와 집 안에서의 문화적, 사회적, 도덕적 차이는 그 당시 대부분의 2세 아이들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이질성은 정체성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졌고, 많은 2세 교포아이들이 대학입학 전, 대학재학 중, 또는 졸업 후 겪게 되는 삶의 큰 굴곡이었습니다. 지혜는 여기에 부모의 이혼까지 더해져 많은 충격을 받았으며,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에 알게 된 어느 유학생 남자아이와 가까와져서 한인타운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는 이야기...


내심 걱정이 생기더군요 - 제가 지혜에게 가르쳤던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가치관이 더 이상 그녀에게 의미가 없게 되었는지에 대한 걱정. 하지만 우린 이미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거의 틀리지 않고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걱정을 마음속에 하고 있는지 알았는지, 지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빠, 저 예전 Agnes 그대로여요. 마음 놓으세요."


지혜는 이 말을 제게 한국어로 하였습니다. 한국어로 말한다는 것은, 그 말에 상딩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그녀의 습관.... 저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한 후, 우린 그 곳을 떠나 제 차가 있던 근처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제 차를 보더니 지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빠, 차 좋다! 우리 드라이브 해요. 나 드라이브 한 지 정말 오래 된 것 같아..."


"그래, 그러자."


내일 출근을 이른 아침에 해야하는 제 일상이었고, 그 날은 벌써 밤 11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지혜의 부탁이니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Flushing 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Northern Blvd 를 타고 Clearview Expressway 라는 highway 에 올랐습니다.


"오빠, 나 CD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요?"


"누구 노래니? 너가 그렇게 좋아하던 Mariah Carey 를 아직 듣고 다니지는 않겠지?" 


"아니랍니다 - 한국노래여요! 들어보실래요?"


그녀가 한국노래도 이젠 좋아하게 되었구나 -  하는 생각에 잠깐동안 다시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녀가 주는 CD 를 받아서 slot 에 넣었습니다. 밤이라 어두웠고 고속도로의 조명도 그다지 밝지는 않았기에, CD cover 에 적혀져 있는 가수 이름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만, 목소리는 여자의 목소리... 가사가 이렇게 흐르더군요:


아름다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너에게 안긴채로 난 꿈을 꾸지만

너무 따스한 너에 작은 손길에 눈뜨면

하얗게 그리움만 남아

넌 아직도 내맘 정말 모르는지

자꾸 심술이 나는지
나에 맘속으로 왜 작은 비 내리는지


하늘에 그려봐 다 내 모습인걸

가슴에 안아봐 나 여기 있는걸

매일 꿈꾼 너와 함께 햇살로 날아가고 싶어

 언제나 니안에 내가 있을께


하얀비 속에 하염없이 그려도

 한 낮에 꿈처럼 지워지고 말아

넌 아직도 내맘 정말 모르는지

자꾸 심술이 나는지
나에 맘속으로 왜 작은 비 내리는 지

하늘에 그려봐 다 내 모습인걸

가슴에 안아봐 나 여기 있는걸
매일 꿈꾼 너와 함께 햇살로 날아가고 싶어

언제나 니안에 내가 있을께 


김현정이란 이름의 가수가 부른 "몽중인" 이란 노래였습니다. 지혜가 이 노래에 맞추어 따라 부르던 목소리가 지금도 자주 기억에 납니다. 그리고 그 때 깜박 잊고 두고 내린 Agnes 의 CD는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2년만에 재회한 Agnes. 제가 그녀를 도와야 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그녀가 그 식당에서 뛰어나오던 그 때부터 마음속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다음 날 바로 저는 그녀가 그녀답지 않은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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