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뉴욕여행
1980년대 중반, 이민생활의 초기였던 이유에 우리 가족에게는 '미국생활'이 아직도 어색하고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Queens 의 Flushing 의 길들을 다른 유색인종들에 섞여 걸어 다녀도, 그리고 이미 십수 년을 미국에서 살고 있는 "Asian American"처럼 시늉을 하며 department stores, local restaurants 등등을 다녀도 마음속 이유 모를 불안감은 좀처럼 그 고개를 떨구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방인의 비애라고 해도 무방할 듯했던, 그런 때였습니다. 이런 느낌, 불편한 영어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1986년 12월, 크리스마스 며칠을 앞두고 가족 전체가 여름에 구입한 중고차를 타고 모처럼 Queens를 벗어나서 Long island로 방향을 잡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저 주거를 위한 집들로 빼곡히 들어선 Queens의 답답한 환경에서, 정원도 있고 길도 더 넓으며, 돌아다니는 차들도 그저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동네들을 둘러보며, '미국이라면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미래의 꿈을 키워보자는 생각을, 아마도 가족 모두가 하고 있었겠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3년 된 Oldsmobile의 차창 밖으로 펼쳐진 미국 외곽의 이른 저녁풍경을 부러움과 희망을 마음에 품고 새기고 있던 중, 노란색 가로등이 길 양쪽으로 늘어져있고 형형색색의 다양한 조명이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작지만 아주 예쁜 가게들이 들어서있는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길 표지판을 보니 25A ( Northern Blvd)와 함께 'Port Washington"이란 표시가 되어 있더군요. 이 동네는 지도에서 봤던 작은 항구도시 Port Washiington이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당시 이 항구도시는 아래 사진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는 풍경보다 그 당시 Port Washington 의 기억속에 있는 이미지는 더 아름다웠습니다. 완만한 내리막길 아래쪽 오른편에는 한 두척의 배를 정박할 수 있는 dock 이 있었고, 이 dock 을 따라 둥그렇게 Long Island Sound 로 열려있는 bay 가 저녁 햇살을 받으며 잔잔히 출렁이고 있었지요. 초저녁이라 주변 가로등불이 하나하나 켜지고 있던,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가서 사진을 찍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요.
어쨌거나 그 날 저녁, 그 타운을 천천히 통해 지나가면서 언제가 되었건 내가 직접 운전해서 다시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미국 여기저기에 이 Port Washington 같은 town 이 많지만, 첫 경험의 기억이 그렇게도 강렬하듯이, 이곳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의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그때 머릿속에 각인되었지요. 이후 고등학교 2학년에 처음 한 차를 타고, 그리고 이후 수십 년간을 시간이 나면 꼭 가서 넉넉히 시간을 보내고 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타운, Port Washington입니다.
전의 글에서도 Port Washington을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1999년작 영화 Message in a Bottle을 소개하면서 이 도시를 언급했었군요. https://brunch.co.kr/@acacia1972/71
이민생활 3년이 지나 Long Island라는 '미지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아니, 사실 조금은 두렵게) 처음 발을 디디며 알게 된 이 작은 타운, 첫눈에 반했던 것이지요. 항구에 아름다운 보트가 즐비하고, 무료 수상 택시를 타고 해안가를 오갈 수 있는 멋진 환경입니다. 사람들은 적지 않아도 전혀 소란스럽지 않은, 전형적인 백인 타운이지요. 여기에 더해 이 곳에서 보는 저녁노을은 이상하게도 더 아름답습니다.
Port Washington 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편리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지나가기만 해도 좋았지만, 이후로는 이 타운에 직접 들어가서 삶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곤 합니다. 시내에는 훌륭한 쇼핑과 다양한 훌륭한 레스토랑들이 있지요. 프랑스식 La P’Tite Framboise (“작은 라즈베리”), 페루식 식당 Nikkei, 그리고 인도식 Diwan 이 있습니다. Dingy 선착장은 식료품을 파는 Stop ‘n Shop 바로 맞은편에 있으며 세탁소, 와인/주류점, UPS, Wallgreens, ACE Hardware, Target 등도 가까운 도보 거리에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Port Washington 은 10달러짜리 ticket 을 사서 LIRR (Long Island Railroad)을 타면 40분 후에는 Manhattan의 Penn Station에 도착할 수 있고, NYC를 하루 종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살고 있다면 말이지요. 물론 평범한 burger 등도 아주 맛있습니다.
Sands Point Preserve 구역을 방문해 보면 Gatsby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부지 내 수 마일에 달하는 산책로를 따라가거나 저택 투어를 해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지요. 또는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Long Island Bay 해변으로 향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주변이 모두 평안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니까요.
Manhasset Bay를 따라 산책하거나 혼자서 탐험하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타운 선착장에서 출발해 베이 워크 (Bay Walk)까지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것도 미국을 아직까지는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일이지요. 왕복으로 포트 수상 택시를 타고 Inspiration Dock 으로 돌아와 롱 아일랜드 최고의 아이스크림으로 뽑힌 스위트 트리츠 온 더 워프 (Sweet Treats on the Wharf)에서 한 스쿱을 떠서 하루짜리 모험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전망 좋은 야외 식사는 늦여름과 가을 사이에 가장 완벽하지요. Louie’s Grille & Liquors, LaMotta’s Dockside Restaurant, Nino’s Beach 가 위에 소개한 식당들에 더해 추가로 아주 맛있으며 로맨틱하기까지 하고, 항구도시라 Butler’s Flat Clam Shack에서 간단한 lobster roll이나 fried clams로 캐주얼한 식사도 행복합니다. 뛰어난 beachside dining option 이 아주 많이 있어서, 여러 번 방문해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타운이나 도시가 다른 곳들보다 '미국적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물론 미국이 이민자들로 시작되어 구성된 나라지만, 그 시작도 백인계 이민자들이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듯이, 아무래도 이 Port Washington 가 지금도 예전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는 이유들 중 '아마도' 하나는 백인들이 80% 이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이 tradition 을 그 다른 어떤 변화와 타협하지 않고 (그렇다고 어떤 식으로 거부운동을 한 것도 아닌,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식으로) 유지해 왔다는 생각입니다. 정체성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아시안계 미국인들도 거의 10% 의 인구를 차지합니다.
- September 04,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