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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David Fajgenbaum

뉴욕시 사람들 이야기

by Rumi


Humans in New York 이란 site 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번역하여 연재중입니다. 요즘엔 Gaza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들만 올라와서 - 물론 이 또한 중요하지만 뉴욕사람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글들은 아니라 - 포스팅을 할 글이 찾기 어럽군요. 혹시 또 모르지요, 제 이야기도 다음 번에 올릴지도 모르지요.




그 수술은 끔찍했어요. 의식 있는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었죠. 수술실 밖 복도에서 아버지와 누이들에게 말했어요. "자, 눈물을 닦아내자. 엄마를 위해 강해져야 해." 하지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말을 꺼내기 전에 엄마가 머리에 감긴 붕대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치키타 바바나 상표에 나오는 아줌마 머리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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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웃기 시작했고, 콧물눈물을 흘리며 웃었지요. 세상에, 누가 그렇게 할까요? 뇌 수술에서 깨어나서 '가족을 웃게 할 농담이 필요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게 바로 어머니였지요. 항상,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분었습니다.


끔찍한 형태의 뇌암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15개월 동안 우리 가족은 어머니로부터 그 병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요. 어머니는 몸의 한쪽이 마비되었고, 걸을 수 없었습니다. 종양이 어머니의 뇌의 언어 중추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서서히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갔습니다. 대화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지요. 이는 어머니에게도 매우 좌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하려고 노력해도, 노력해도, 노력해도 — 그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1학년이었지요. 어머니는 학교에 대해 물어보았고, 어머니가 입을 열자마자 저는 어머니가 답답해하시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하시려고 할 때 추정해서 미리 말해드리는 식으로 그 답답함을 줄여드리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엄마,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등으로요. 우리 가장 큰 두려움은 어머니가 사망하기 전에 어머니를 잃는 것이었습니다 — 무슨 말인지 하시겠지요.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질병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어머니의 영혼에는 결코 닿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는 몇 마디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 중 두 단어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 단어는 그 당시 어머니에겐 사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말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발음하기 어려운 많은 음절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 - 이 두 단어는 어머니에게 있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었던 모든 문장과 단락을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대화를 기억합니다. 어머는 아마도 내 여동생을 돌보라고 말씀하려 애쓰신 듯 합니다. 하지만 말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셨지요. 어머니는 그런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울기 시작하셨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저는 그냥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는 엄마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치료법을 찾는 데 제 인생을 바칠 거여요." 어머니는 매우 지쳐 보였지만, 가장 큰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사실, 반쪽짜리였지만, 가장 큰 반쪽짜리 미소였죠. 그리고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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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 horrible surgery. They open up your skull and cut out the tumor while you’re awake. In the hallway outside the operating room, I told my dad and sisters: ‘Guys, let’s wipe away our tears. We have to be strong for Mom.’’ But when we walked into the room, before we could even say a word, Mom pointed at the wrap on her head and said: ‘Chiquita Banana Lady.’ And everyone started laughing, and snot crying. I mean, who does that? Who wakes up from brain surgery and thinks: ‘I need a joke that will make my family laugh?’ But that’s who she was. Other people first, always.


It was a horrible form of brain cancer. Those last fifteen months we watched it take everything from her. She was paralyzed on one side of her body. She couldn’t walk. The tumor was pressing against the speech center of her brain, so she slowly lost her ability to speak. Words started disappearing. It was very frustrating for her. She’d know what she wanted to say, and she’d reach, and reach, and reach-- but it wasn’t there. I couldn’t bear to see her get frustrated. At the time I was a freshman in college. She’d ask me about school, and I’d rush to finish her sentences as soon as she opened her mouth. I’d be like: ‘Mom, do you mean this?’ Our biggest fear was that we’d lose her before she passed away-- you know what I mean? But it never happened.


The disease ‘took everything,’ but it never touched her soul. Toward the end she was down to just a few words, but two of those words were: ‘unconditional love.” They were unlikely words to hold onto. They weren’t easy to say, so many syllables. But ‘unconditional love’ became her answer to everything. It was her replacement for all the sentences and paragraphs she could not say.


I remember our last conversation. I think she was trying to tell me to take care of my sister, but she couldn’t quite get the words out. She got so frustrated that she started to cry. I couldn’t bear to see it, so I just started talking. I told her: ‘Mom, I’m going to dedicate my life to finding treatments for people like you.’ She looked so tired, but she gave me the biggest smile ever. Well, the biggest half-smile ever. And she said: ‘Unconditional Love.’



- August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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