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양재천에 가장 많은 나무가 참느릅나무일 것이다. 참느릅나무는 대치교에서 서초구가 시작되는 곳까지 양재천변 양쪽에 빠짐없이 식재되어 있다.
미국 느릅나무에 참혹한 피해를 입혔던 느릅나무 시들음병은 다행히 아시아 느릅나무에는 큰 피해를 미치지 않았다. 양재천변에는 참느릅나무가 무성히 자라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다
모든 식물들이 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비해 참느릅나무는 가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가을에 양재천을 걷다 보면 참느릅나무에 푸른 열매가 별처럼 달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느릅나무는 어쩌다 모든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이때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걸까. 참느릅나무의 차별화 전략이겠지만 어쨌든 9월에 새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황갈색의 꽃이 2~5개씩 모여 핀다. 꽃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 만큼 아주 작게 피고, 꽃 피는 기간도 짧아 2~3일 피고 난 후 곧바로 부채 모양의 열매를 만들어 이 나무의 꽃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나도 참느릅나무의 꽃을 보려고 주의하였으나 올해도 놓치고 말았다. 그 대신 참느릅나무의 종자는 겨울 내내 볼 수 있다.
열매는 느릅나무속의 특성 그대로 얇고 편편한데 크기는 0.8~1.2㎝ 정도의 둥근 타원형으로 날개가 붙어 있다. 이 속에 작고 둥근 종자가 들어있다. 참느릅나무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는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가면 양재천의 중간 산책로가 온통 참느릅나무 열매로 하얗게 뒤덮인다. 떨어지지 않고 겨우내 나무에 붙어 있는 열매도 많아 마치 나무에 흰 눈을 매달아 놓은 듯 유니크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양재천의 새들에게 이 씨앗은 겨우 내내 주요한 식량자원이 된다. 비둘기, 참새, 딱새 등 여러 새들이 몰려와 겨우내 이 열매를 먹는다.
참느릅나무의 씨앗에는 날개가 달려있어 꽤 멀리 날아간다. 새들이 퍼뜨리기도 하여 양재천에 가장 새로운 식물로 번지고 있는 나무가 참느릅나무이다. 양재천 이곳저곳에 어린 느릅나무들이 새싹을 내민다.
예수의 산상설교에 의하면 좋은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 60배, 100배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양재천이 참느릅나무 씨앗에게는 바로 좋은 땅에 해당된 셈이다.
열매 맺기에 에너지를 많이 써 버린 참느릅나무는 봄이 되어도 깰 줄을 모르고 계속 늦잠을 잔다. 다른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새잎을 내고 열매를 맺건만 참느릅나무는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죽은 듯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적막을 유지하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무들이 죽어가는지 염려할 정도이다. 줄기는 작은 조각들이 기괴하게 우둘투둘하게 튀어나와 있다.
느릅나무는 벚꽃이 피었다고 인파가 몰려와 땅을 흔들며 지나가도 상관 않고 잠을 자다 4월 말이나 되어서야 겨우 잎이 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줄기를 늘어놓고 있던 이 나무에 가늘고 고운 잎이 돋으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리고 가을까지 열심히 달린다. 대기만성이라고 해야 할까. 저마다 꽃을 피우고 대성하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이 나무는 보여준다.
참느릅나무에 잎이 무성해지면 온갖 새들이 몰려와 이 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비둘기 한 쌍이 나뭇가지에 앉아 서로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고 있다. 주로 대치교 쪽 숲에서 놀던 물까치 떼도 영동 3교 느릅나무 쪽으로 이동해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며 봄을 희롱한다. 양재천을 걷는 내내 새들의 지저귐이 멈추지 않는다. <침묵의 봄>이 아니고 새들이 노래하는 양재천의 봄이라 너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