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꽤 인 날, 양재천을 걷다가 어떤 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침 영동 3교 아래서 색소폰을 부는 사람들이 나무의 춤에 반주를 넣어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음악소리가 흥겨워 나무가 춤을 추는지도 몰랐다.
멀리서 보아도 나무의 수형도 멋있고 찬란한 녹색도 너무 아름다웠다. 풀숲을 가르며 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나무줄기의 끝자리에 길게 열매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바람에 더욱 나무가 흔들리며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였던 모양이다.
기다란 열매를 매달고 있는 이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
노력 끝에 그 나무가 중국굴피나무(Chinese wingnut)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양재천의 천변에 중국굴피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호두나무과라서 그런지 나뭇잎이 넓적하니 크고 광택이 있으며 여름이 가까웠는데도 신선한 연두색을 지니고 있어 유난히 눈에 뜨이는 나무였다.
주렁주렁 늘어진 열매를 매달고 강가에 서 있는 나무 모습이 참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관심을 가지고 이 나무에 대해 찾아보았으나 자료가 많지 않았고 블로거들도 이 나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중국굴피나무를 소개하는 글들이 많지 않았다.
다만 중국이 원산지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가 보았다. 중국 원산의 식물이 많을 텐데 굳이 중국~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식물이름을 지은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원산지에서는 30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0미터 정도 자란다고 쓰여 있었다. 나무가 아름답고 짙은 그늘을 만들어 경기도 이남에서 공원수나 가로수로 심는다고 하니 그래서 이 나무들이 양재천변까지 오게 된 모양이었다.
우리나라에 도굴피나무가 있다. 박상진교수는 <나무이야기>에서 지금은 귀한 이 나무가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의 한반도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할 만큼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고 소개하고 한다. 재질이 좋아 임금의 시신을 모시는 목관으로 사용되었고 선박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무의 안 껍질은 질겨서 줄 대용으로 쓰고 어망을 만들기도 하였다고 한다. 잎에는 독성이 있어 찧어서 물에 풀면 물고기를 잡 는데 사용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굴피나무는 굴피나무에 비해 옆 축에 날개가 발달하고 열매가 단풍나무처럼 시과로서 아래로 축 늘어지게 매달리며 열매에 포엽이 변한 날개가 달린다. 그래서 이 나무의 일반명이 winged tree이다.
다만 강원도 지방에서 굴피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나무껍질은 굴피나무가 아니라 굴참나무껍질을 사용한다고 한다. 굴피집은 그 수명이 길기 때문에 ‘기와 천년, 굴피 만년’이라는 속담이 전한다.
내가 양재천에서 본 중국굴피나무는 세 그루가 있었다. 두 그루는 천변 바로 곁에서 자라고 있었고 한그루는 천변에서 조금 떨어진 영동 3교 근처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수마가 양재천을 훑고 지나갈 때 강변에 서 있던 두 그루의 중국굴피나무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제는 영동 3교 근처에 있는 한 그루만 외로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