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점심 무렵 워싱턴 광장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으로 산책을 나갔다. 10월의 맑고 온화한 날이었다.
맨해튼에는 센트럴파크로 대변되는 엄청난 공원 외에도 여러 소규모의 아름다운 공원들이 있다. 나는 뉴욕에 있을 때 그랜드 센트럴역 근처의 호텔에 머물렀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근처의 작은 공원들을 즐겨 방문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워싱턴 광장 공원이었다.
워싱턴 광장 공원은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있다. 참고로 그리니치 빌리지는 맨해튼의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가로에는 석조의 아름다운 집들이 즐비해 있고, 허니 로커스트(honey locust)의 가로수가 한창 노랗게 단풍이 들고 있어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창 할로윈데이의 시점이라 집 앞마다 요괴들이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는 이채롭게 보였다.
이곳에는 1910년 이후 반체제 예술가들과 지식인, 학생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특유의 자유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1950년대에는 비트닉(beatnik 기성세대에 반발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샌프란시스코의 히피문화와 유사한 문화를 만들기도 하였고 1960년대에는 포크 싱 유행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도 재즈그룹들이 모여있고, 여전히 많은 예술가에게 사랑받는 곳이 바로 이곳 그리니치 빌리지이고 이 그라니치 빌리지의 중심에 워싱턴 광장이 있다.
<워싱턴 광장의 위치>
내가 이곳을 방문한 그날, 워싱턴 광장 공원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공원 입구로 걸어가자 흰 대리석으로 만든 커다란 개선문의 아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치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물이 품어져 나오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고 분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공원 한쪽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구경꾼들이 몰려있었다.
나는 워싱턴 광장이 죠지 워싱턴을 기념하는 공원일 것이라고 짐작은 하였지만 이렇게 멋진 아치와 죠지 워싱턴의 부조가 세겨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죠지 워싱턴과 미국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념하려고 그의 취임 100주년이었던 1889년에 조성한 공간이라고 한다.
워싱턴 광장의 흥겨운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어릴 때 들었던 <워싱턴 광장>이라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저 넓은 광장 한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이네
벤조 줄을 울리면서 생각에 젖어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 보고 싶네
경쾌한 리듬의 이 노래를 읊으니, 마치 이 광장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사위도 딸도 내가 흥얼거리는 <워싱턴 광장> 노래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만 아는 노래의 가사를 더듬어 완성해 불러보았다.
저 넓은 광장 한구석에 외로이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난 알고 싶어지네
먼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 보고 싶네
메마른 낙엽 흩어지는 저 워싱턴광장
오고가는 사람 없어 외롭기 한이 없네
돌아갈 생각하지 않고 벤조만 울리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
만나보고 싶네
그런데 워싱턴 광장은 너무 화사하고 사람들로 분주하여 이 시스터즈가 노래하던 그 쓸쓸한 남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모두들 가족이나 연인들과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광장과 온화한 가을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지식욕이 발동한 나는 <워싱턴 광장>이라는 음악의 시원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Washington Squar>라는 이 유명한 곡은 1963년 밥 골드스타인(Bobb Goldsteinn)과 데이빗 샤이어(David Shire)가 작곡해서 뉴욕의 재즈 그룹인 빌리지 스톰퍼스(The Village Stompers)가 연주한 연주곡이었다고 한다. 골드스타인은 워싱턴 광장을 경축하는 노래를 만들기로 하고 곡을 연주할 밴드를 물색하던 중 8인조 instrumental 밴드인 빌리지 스톰퍼스를 만나게 된다. 벤조와 탬버린이라는 서민적인 악기와 재즈 브라스 사운드를 결합시킨 이 곡은 단숨에 빌보트 차트 2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누리며 빌리지 스톰퍼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빌리지 스톰퍼스는 뉴욕의 그리니치에 기반을 둔 8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재즈그룹이었다.
이 연주곡에 당시 유명한 4인조 보컬그룹인 Ames Brothers가 가사를 붙여 노래하였다.
Washington Square(The Ames Brothers)
From Cape Cod Light to the Mississip' to San Francisco Bay.
They're talking about this famous place. Down Greenwich Villige way
They hootenanny all the time with folks from every where
come Sunday morning rain or shine And right in Washington Square
So I got my banjo out, just sittin' and colletin’ dust
And painted right across the fase : "Greenwich villige or Bust"
My folks were sad to see me go, but I got no meanin' there
So I said, "Goodbye Kansas, Mo, and hello Washington Square
Near Tennessee. I met a guy who played twelve-string guitar
He also had a mighty voice, not to mention a car
Each time he hit those bluegrass chords, you sure smelled mountain air
I said, "Don't waste it on the wind. Come on to Washington Square"
In New Orleans, we saw a gal a-walkin' with no shoes
An 'from her throat there comes a growl she sure was singin' the blues
She sang for all humanity, this girl with raven hairs
I said, "It's for the world to hear, come on to Washington Square"
We cannonballed into New York on good old US 1
Till up ahead we saw the arch, a-gleamin' bright in the sun
As far as all the eye could see, ten thousands folks were there
And singin' in sweet harmony right in Washington Square
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워싱턴 광장에 대한 소문이 전국 곳곳으로 퍼지자
나는 먼지 앉은 벤조를 꺼내 캔자스를 떠나 워싱턴 광장으로 갑니다.
테네시에서 12줄 기타를 치는 남자를 만나 함께 갑니다.
뉴 올리언즈에서 블루스를 노래하고 있는 여가수를 만나 함께 갑니다.
1번 국도를 따라 뉴욕으로, 광장의 아치로 달려갑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달콤한 화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워싱턴 광장으로 갑시다. 워싱턴 광장으로 갑시다.
워싱턴 광장에 오세요. 워싱턴 광장에 오세요.
가사는 모두 “워싱턴 광장에 모여 흥겹게 노래하자”라는 내용이다.
이 노래가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자 1964년 우리나라에서 번안곡이 나왔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이 크게 히트하여 이 노래를 부른 이 시스터즈는 일약 인기걸그룹으로 떠올랐다. 내가 흥얼거린 가사가 바로 이때 이 시스터즈가 부른 번안곡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사를 보면 Ames Brothers가 부른 가사와는 결이 완전히 틀린다. 워싱턴 광장과 벤조라는 단어가 만들어낸 당시 작사가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그 후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의 여러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다. 우스운 것은 아직도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배경으로 워싱턴 디씨의 캐피톨이 나온다는 것이다.
워싱턴 광장은 뉴욕에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 근처에 있다. 너무 사람이 많고 분주하여 쓸쓸히 벤조를 울리고 있는 그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만 50, 60년대의 그 분위기를 이어 광장에는 아직도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있고, 아직도 이곳의 재즈 바에서는 여러 재즈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 옆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걷다가 <Caffe Reggio>에서 카푸치노를 한잔씩 마셨다. 1927년에 설립된 나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자랑하는 곳이었다. 문틈 안에 쏙 들어간 자리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며 그리니치 빌리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과거 이 자리에 유명문인, 예술가들이 앉아 커피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었다고 하니 나는 행운을 잡은 기분이었다. 카푸치노는 향이 깊었고 맛있었다.
어쩐지 그리니치 빌리지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