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Dec 24. 2024

사위의 선물

뱃줄 달고 미 동부 여행


사위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로 남편의 고민이 절반은 준 듯하여 사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선물의 내용은 조금 있다 밝히겠다. 하여튼 기발하였다.

 

남편은 목에 암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았다. 하인두라는 곳에 생긴 암이었는데 하인두는 식도와 기도 사이의 델리케이트 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수술도 어렵고 생존율도 낮은 희귀 암이라고 한다.

목의 암덩어리를 잘라내고 빈자리에 허벅지살을 베어 성형하는 복잡한 수술을 받았다. 말로 쓰자니 한 줄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기가 막히는 수술이었다.

그동안 고비도 많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올초 의사로부터 완치판정을 받았다. 암환자라면 누구라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완치판정 소식이라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가족, 친척, 친구들이 환호하며 기뻐하였다. 나는 남편이 그 모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살아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살아있다는 것이 뼈저리게 아름답게 여겨졌다.  


그런데 남편은 수술 부작용으로 입으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뱃줄 식사에 의지하고 있다. 뱃줄 식사란 봉지에 든 액상의 영양식을 줄을 통해 배로 직접 공급하는 식이를 말한다. 말만으로도 힘들 것처럼 여겨지는데, 실제로 뱃줄 식사로 살아가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튜브가 막혀 난감해했고 배에 넣어둔 튜브가 빠져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목욕은 말할 것도 없고 샤워도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다. 그중에서도 집을 떠나 바깥에서 식사해야 할 때의 고충이 컸다. 그러니 장기간의 여행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남편은 딸바보이다. 의사의 완치판정을 받자 남편은 뉴욕에 살고 있는 딸에게 가보고 싶어 하였다. 경상도 사나이라 마음속을 잘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는 남편이 딸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덤덤한 편이라면 남편은 훨씬 섬세하고 알뜰한 편이다. 나나 남편이나 남편의 암수술 후에는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뉴욕으로 가는 것도 이제 다시 갈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처럼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뉴욕공항에 도착하자 딸내외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사위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Welcome’이라고 쓰인 환영 풍선을 들고 있어 반가움을 더하게 하였다. 사위는 한동안 우리가 가는 곳마다 이 풍선을 들고 다녔다. 따라서 웰컴 풍선은 사위의 차에 실려 뉴햄프셔도 가고 하버드대학에도 갔으며 보스턴까지 따라갔다. 나는 장난스럽게 풍선을 들고 다니는 사위에게서 미국식 위트를 보았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 풍선의 공기가 다 빠지지 않은 채 살아있어 우리에게 놀라움과 함께 즐거움을 주었다.


딸 내외의 환영 풍선


오랜만의 해후에 우리는 얼싸안고 서로를 꼭 껴안았다. 사위는 여전히 혈색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딸은 못 보던 사이에 분위기가 좀 변해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할까 객지생활의 어려움이랄까 직장생활의 고달픔 같은 것이 슬핏 느껴졌다. 딸의 고단해 보이는 얼굴에 마음이 쓰였다. 나중에 들으니 마침 이사를 해야해서 준비로 정신 없는 시기라고 하였다


사위의 다른 손에는 기다란 봉 같은 것이 들려있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공항 내에 있는 식당으로 갔을 때 그 검은 봉의 정체가 밝혀졌다.

검은 케이스 안에서 삼각대 같은 것이 나왔다. 사위는 봉을 빼내고 다리를 척척 펼치더니 거기다 장인의 뱃줄 식사를 걸었다. 그제야 나는 그 검은 봉의 정체를 파악하였다. 사진을 찍을 때 쓰는 삼각대 같은 것을 사위는 장인 뱃줄식사 걸이로 준비했던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감동하였다. 뱃줄식사를 해야하는 장인에 대한 사위의 고심이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남편의 암수술 후 매 식사 때마다 튜브 식이를 어디에 걸어야 하는지가 늘 난제였다. 특히 식당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할 경우, 걸 곳을 찾아 온 식구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경을 써야 했다. 요즈음은 미니멀 장식을 선호하는 추세라서 식당 벽에 튜브 식이를 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외식을 한번 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우리도 나름 튜브식이의 걸이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대녀인 가타리나는 청소 밀걸레의 막대에 옷걸이를 걸어 임시방편의 걸이를 만들어주었고 남편 친구 최사장은 인터넷을 뒤지며 좋은 대체품을 첮느라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차를 높이가 있는 SUV로 바꾸었으며 슈퍼에서 S자 고리를 사서 식당 벽이나 교외의 파라솔 줄에 걸고자 하였다. 결국은 고정된 고리가 있을 것을 전제한 방법이라  장소를 선택할 때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위의 삼각대는 새로운 차원의 접근법이었다. 벽에 고정된 고리가 아니라 이동식 고리를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제 어디에서건 남편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이런 것을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고 경탄하면서 자책하였다. 사위에 의한 발상의 전환이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견한 것처럼 놀랍고 기뻤다.  


이제 식당에 갈 때도 주변 벽을 살피며 어디 걸 데가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식당에든 갈 수 있었고 어느 자리로 안내해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도 뉴요커처럼 왁자한 식사자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이 봉은 늘 우리와 함께했다.  

어느 식당 안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교외에서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삼각대를 세우면 어디에서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식당 바깥의 벤치에도 앉을 수 있었고 공원 벤치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지경이 넓어진 것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바깥 자리에서도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식당 선택의 폭이 넓어지자 우리의 식사 자리가 훨씬 풍성해지고 여유로워졌다. 나는 뉴욕 피자와 뉴욕 치즈케이크와 뉴욕 스테이크 등 나름 뉴욕에서 먹어야 한다는 음식의 이름을 들먹였고 뉴욕의 유명 셰프에 관심이 많은 딸은 최고의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소믈리에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위는 좋은 와인을 골라 식사자리를 흥겹게 하였다. 입으로 음식을 잘 못먹는 남편이지만 딸 사위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귀하고 즐거운 듯, 음식은 우리가 먹고 남편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사위는 음식도 참 잘 먹었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느라고 음식을 가려먹는 딸에 비해 사위는 무엇이든지 맛있게 먹었고 많이 먹었다. 나는 무엇이든지 잘 먹는 사위가 듬직하고 좋았다.

사위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해 이야기를 한번 꺼내놓으면 샘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잡지식으로 무장된 사위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잡지식이라면 나도 누구에게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지라 우리 둘이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면 끝날 줄을 몰랐다. 딸은 제 남편이 장모와 죽이 맞는 모습을 보며 “둘이서 잘 맞으니 친하게 지내세요”하며 싫지 않은 표정을 하였다. 남편도 한 번씩 우리 대화에 끼어들며 본인도 잡지식에서 밀리지 않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래서 사위와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늘 즐거웠다. 무언가 행복한 분위기가 우리를 감쌌다.

사위는 지금도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고 며칠 후 나는 튜브 줄 계산을 잘못하여 너무 적게 가지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루에 세 개씩 필요한 것을 하루에 하나로 계산을 하였으니 튜브가 금방 바닥을 보였다. 나의 미스를 인정하는 것은 속이 쓰렸지만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나는 한국의 아들에게 SOS를 보내 줄 한 박스를 급하게 부쳐줄 것을 요청했다. 줄은 나흘 만에 미국에 도착했다.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위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대체품을 재빨리 주문하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귀국할 때 남은 한 박스를 도로 가지고 왔다. 딸은 제 서방이 굼뜨다고 불평을 했지만 장인장모 일에  기민하게 움직이는 사위가 고맙고 듬직했다.


우리가 귀국할 때 사위는 봉 하나를 더 마련해 주었다. 하나는 여행가방에 넣고 하나는 손에 들고 들어왔다. 가지고 올 때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봉 하나는 차에 넣어두고 하나는 집에 두면서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일전에 친구들과의 모임 때 이 삼각대를 펼치자 친구들이 감탄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사위의 선물이라고 자랑하였다.  

사위, 기발하고 적절한 선물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