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맥 강의 시원은 어디일까?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워싱턴 디씨가 해외뉴스의 톱을 차지하고 있다. 연일 관세 부과를 외쳐대는 트럼프의 기세가 세계의 무역 근간을 흔들고 있지만 최근 워싱턴 디씨에서 벌어진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도날드 레이건 공항 상공에서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충돌하여 탑승객 전원이 포토맥 강으로 추락해 사망했다는 뉴스일 것이다.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라고 하면 워싱턴 디씨를 끼고도는 강이다. 규모적으로는 미시시피나 콜로라도 강 같은 거대 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포토맥 강은 과거에서나 현재에서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강이다. 이곳은 현재 미국의 행정 수도 워싱턴 디씨를 감싸고 흐를 뿐만 아니라 과거 이곳이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주요 전쟁터였기 때문에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현재도 이 강의 연안에는 약 5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포토맥이란 뜻은 원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말로 ‘백조의 강’ , 또는 ‘시장/장터’라는 뜻이라고 한다. 백조가 많이 살았거나 원주민들이 강을 주요 물물교환의 장소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겨지는 이름이다.
포토맥 강과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내가 버지니아 지역을 여행할 때 이 강이 거의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그래서 포토맥 강에 대한 나의 추억을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딸아이가 워싱턴 디씨에서 대학을 다녀 딸을 보러 디씨를 두어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가는 오래전 일이다. 그 당시 워싱턴 디씨의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 마치 나를 영화세트장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 포토맥 강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아직도 나의 앨범에 남아 있다. 사진을 꺼내보니 그때는 남편도 나도 참 젊었었다. 하기야 그동안 흐른 세월이 얼마이며 우리가 겪어내야했던 삶의 무게가 얼마였던가!
그런데 디씨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로에 심어져 있던 태산목이 먼저 떠오른다. 디씨의 거리에는 가로수로 태산목 나무를 많이 심어두었는데, 내가 방문했을 당시 태산목 나무에 커다란 흰 꽃들이 피어 더욱 경이로운 추억이 마음속에 새겨졌었다. 뒤에 알고 보니 태산목은 북미 동남부가 원산이라고 하여 디씨에 태산목 나무가 많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몰랐다.
태산목은 그랜드 마그놀리아(grand Magnolia)라고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목련과에 속하며 커다란 흰 꽃이 핀다.
그랜드 마그놀리아를 생각하면 희한하게도 옛날에 보았던 영화 <마그놀리아>가 함께 떠오른다. 뇌의 연상작용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아마 <마그놀리아>라는 제목에 끌려 그 영화를 보았던 것 같은데 스토리가 기괴했고 마지막에는 개구리들이 하늘에서 엄청 떨어져 충격을 주었던 영화였었다. 영화 속에 마그놀리아 꽃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랜드 마그놀리아를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마그놀리아>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왜 그런지 나의 기억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가 왜 그랜드 마그놀리아에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다닐 때 교정에 있었던 커다란 태산목 나무 때문일 것 같다. 5~6월이 되면 이 나무에 커다란 흰 꽃이 피었다. 우리 학교의 교가에도 나올 정도로 그 태산목 나무는 우리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경배를 받았다. 후일 태산목 나무를 볼 때마다 그 당시 우리는 왜 태산목 꽃에 그렇게 열광했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태산목 나무가 태산처럼 크게 자란 데다 커다란 하얀 꽃이 소담하게 피었고, 당시 우리나라에 태산목 나무가 별로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그랬던지 몰랐다. 일부러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 책갈피에 보관하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던 기억이 따라 일어난다.
그 고교시절의 추억을 함께 간직한 친구가 미국 디씨 근교에 살고 있다. 헬렌이다. 친구는 나의 미국 방문 계획을 알고는 일찍부터 자기 집으로 오라고 남편과 나에게 여러 번 강권하였다. 그래서 지난가을 미국 여행을 하면서 친구 헬렌을 찾아 다시 한번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게 되었다. 친구는 우리를 여러 곳으로 안내하였는데 친구와 여행했던 곳들에 대해서는 천천히 글을 써 보겠다.
그때 친구가 디씨 근교에 있는 그레이트 폴스 파크(Great Falls Park)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그레이트 폴스 파크는 포토맥 강 가에 있는 국립공원으로서 작은 폭포들과 급류가 만들어 내는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명성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명성의 국가 인증인 셈이라 기대가 컸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이름과는 달리 폭포들의 높이가 나지막하고 아기자기한 정도여서 살짝 실망하는 마음이 일었다. 더구나 그전에 나이아가라의 웅장한 물살을 보고 온 뒤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몰랐다. 서부지역의 경관에 감탄하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미국이라고 하면 엄청난 것들만 기대하게 되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미국사람들이 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너무 장대한 것에서만 찾았는지도 몰랐다.
나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워싱턴 디씨에서 15마일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원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이킹을 즐기고 암벽등반이나 카약 같은 다양한 야외활동을 누린다고 하는데, 내 친구는 이곳을 애견 산책로로 삼는다고 하였다. 국립공원에서 개 산책이라니!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친구집이 있는 버지니아의 폴스 처치(Falls Church)에서 그레이트 폴스 파크까지는 자동차로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공원으로 가는 죠지타운 파이크 로드(Georgetown Pike Road)는 숲길 한가운데를 지나갔는데, 양 옆에 키 큰 나무들이 마음껏 자라고 있었고 초가을의 단풍이 나무 위로 살짝 내려앉아 있어 드라이브길로 이보다 더 멋질 수가 없었다.
친구가 이곳에 호화주택들이 즐비하다고 하며 길 안쪽의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운전하면서 흘낏흘낏 바라보니 과연 궁정 같은 대 저택들이 숲 속 곳곳에 숨어있었다.
지금 억만장자들이 디씨 근교에서 사지 못해 안달을 내는 집들이 그 당시 내가 본 그런 주택들이었던 것 같았다.
부자는 부자를 신뢰하는 건지 부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내각은 초부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트럼프 내각 중 재산이 10억 달러(1조 이상)가 넘는 사람이 13명이나 된다고 하니 말이다. 뉴스에 의하면 미 재무장관인 스콧 베센트는 디씨 근처에 1250만 달러(약 182억 원) 짜리 집을 마련하였다고 하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도 2500만 달러(약 364억 원) 짜리 집을 구입했다고 한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인 앨런 머스크도 현금을 들고 이 지역의 부동산 매입 답사에 나섰다는 소문이다. 게다가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업인들과 각종 로비단체들도 디씨 근교의 집 매입에 나섰다고 하니 워싱턴 DC 근교 부동산이 몸살을 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레이트 폴스 파크는 포토맥 강의 상류 쪽에 위치해 있는데, 바위가 많은 지형 사이를 급류가 흐르면서 여러 개의 폭포를 만들어 내어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내었다. 이곳에는 여러 하이킹 트레일이 개발되어 있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물살이 빠른 급류에서는 익스트림 스포츠 애호가들이 카약이나 래프팅을 즐긴다고 하였다.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도 하이킹족은 말할 것도 없고 급류 속을 누비는 카약인들도 볼 수 있었다.
또 하나 친구가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라고 하여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 웨이(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 Way)로 몇 번 드라이브를 나갔다. 이 드라이브 길은 미국에서 네 개밖에 없는 ‘국가공원도로(National Park Way)’의 하나라고 하였다. 국가공원도로는 이름 그대로 국가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도로라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도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도로는 북쪽으로는 Turky Run Park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마운트 버논(Mount Vernon)까지의 약 25마일(40km)을 잇는 강변도로이다. 워싱턴 디씨를 바라보며 죠지 워싱턴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마운트 버논까지 연결되어 있어 이 도로는 미국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 대통령을 기념하는 도로처럼 여겨졌다.
이 길 옆으로 로날드 레이건 워싱턴 기념 공항이 있었다. 이 공항 옆으로 포토맥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 웨이를 드라이브할 때 그 고즈넉하고 아름답던 풍경을 사랑하였는데, 이 강으로 비행기가 추락하여 탑승객 전원이 죽었다니 참으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우리는 포토맥 강 한가운데에 있는 루스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에도 갔었다. 저녁 무렵에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강가 주차장에 차들이 즐비하여 이곳도 디씨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포토맥 깅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편의 죠지 타운 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자연히 과거 방문했던 죠지 타운 대학이 떠올랐다. 깨끗하고 아름답던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포토맥 강을 따라 내려가면 강변에 아름다운 도시 알렉산드리아가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고대 도서관을 떠올리게 하였고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떠오르게 했다. 너무 짧은 시간 그곳에 머물러 다시 한번 가보자고 친구랑 약속하였지만 결국 두 번 다시 가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포토맥 강을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가면 조지워싱턴 생가인 마운트 버논이 나타난다.
마운트 버논의 저택에서 집 앞을 도도히 흐르던 포토맥 강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어쩌면 포토맥 강은 죠지 워싱턴의 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치 죠지 워싱턴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졌고 미국인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포토맥 강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마침내 바다와 만나게 된다. 바로 체시피크만이 다. 이곳에 미국 최대의 해군기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내가 만난 포토맥 강의 풍경을 간단히 써 보았다. 다음에는 포토맥 강 가에서 만난 여러 장소들을 좀 더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