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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아나폴리스 기행

메릴랜드의 수도

by 보현


아나폴리스(Annapolis)는 도시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왠지 멋진 도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치도시국가들을 폴리스라고 불렀다. 그 때문인지 아나폴리스가 오래된 도시일 거라는 생각과 자치도시로서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그런데 신흥국가인 미국에서 도시 이름에 그리스식 이름을 붙인 것이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핏 웃음이 나오기는 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미국에는 유럽의 온갖 도시이름들이 다 와 있다. 이민자들은 저마다 자기의 고향 이름을 가지고 와서 이국 살이의 허전함을 메우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니 아나폴리스니 하는 이름은 아무래도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메릴랜드는 아일랜드 귀족이었던 죠지 칼버트(George Calvert, 제1대 볼티모어 남작)가 1632년, 영국국왕 찰스 1세의 특허장을 받아서 개척한 식민지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칼버트는 영국 내에서의 가톨릭교도에 대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신대륙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칼버트는 메릴랜드 식민지 특허를 부여받기 직전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세실 칼버트(Cecil Calvert, 제2대 볼티모어 남작)가 메릴랜드 식민지를 이어받았다. 그 후 이곳으로 수천 명의 영국 가톨릭 신자들이 이주하여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공동체를 세웠다. 그러나 초기 이주자들 가운데는 청교도 및 성공회 신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세실 칼버트는 그의 주도 아래 1649년 메릴랜드 종교관용법(Maryland Torelance Act)을 제정하여 기독교 교파 간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법이었다.

세실 칼버트의 아내가 앤 아룬델(Anne Arundell)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칼버트 가문이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피난처로 메릴랜드를 설계하는데 영감을 주고 메릴랜드 식민지의 종교 관용 정신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세실 칼버트는 아내의 이름을 식민지 지명에 부여(1650년 Anne Arundal county 명명)하였는데, 현재의 아나폴리스의 미국 해군사관학교가 위치해 있는 곳이바로 그곳이다.

메릴랜드라는 이름은 당시 찰스 1세 왕의 왕비였던 앙리에트 마리(Henrietta Marie)를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1694년 이 도시가 메릴랜드 식민지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당시 영국의 여왕이던 앤 여왕(Queen Anne of Great Britain)을 기리기 위해 아나폴리스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즉 아나폴리스는 ‘앤의 도시(City of Anne)’라고 하는 라틴어이다.


아나폴리스 도시 구경

아나폴리스의 색은 붉은색이다. 붉은 벽돌의 식민지 초기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 모습이 이 도시를 붉게 색칠하고 있었다.

아나폴리스의 거리 모습


맨 처음 눈에 뜨이는 건물이 세인트 앤 성공회 교회(St. Anne's Episcopal Church)였다. 아나폴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하나로 1692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예배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앞에서 메리랜드가 가톨릭 신자들의 피난처로 설계된 식민지라고 하였다. 그런데 버지니아에 청교도 이민자들이 유입되고 명예혁명 후 영국 국교 지지자들이 몰려오면서 메릴랜드는 점차 영국 국교회 중심의 사회로 변모되어 갔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세인트 폴 성공회 교회가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아나폴리스의 도시계획을 주도한 총독 프랜시스 니콜슨은 도시 중심에 두 개의 원형광장을 배치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이 교회(Church Circle)이고 나머지 하나가 주 의사당(State Circle)이다.

1858년에 재건된 현재의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866년에 완공된 교회의 첨탑에는 아나폴리스 시의 요청에 따라 시계가 설치되면서 시계탑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곳에는 1696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기증한 은제 성찬기 세트가 유명하다고 한다.


세인트 앤 성공회 교회


이어서 커다란 호박이 놓여 있는 오래된 여관이 나타났다. Maryland Inn이라는 곳이었다. 전형적인 식민지 양식의 붉은 벽돌로 된 이 여관은 1772년경에 지어진 유서 깊은 숙박시설이라고 하였다. 독립전쟁 당시 군장교, 정치인, 여행자들이 머물던 역사적인 장소로서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듯했다. 여관 앞에 놓여 있는 호박은 메릴랜드에서 올해 수확된 호박 중에서 가장 큰 호박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호박에 살짝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다.


메릴랜드 인(Maryland Inn)


그런데 이 건물의 외벽에 16이라는 번호가 세겨져 있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였다. 혹시 아나폴리스의 역사지구(Historic District)에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에 부여하는 등록번호가 아닐까 유추해 보았는데 사실은 주소를 나타내는 단순 번호라고 하였다. 대신 건물 옆 벽에 메릴랜드 인(MARYLAND INN)이라는 푸른 마커가 부착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표지는 아나폴리스의 여러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역사적 건물임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하였다.


또한 아나폴리스의 오래된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에 National Historic District라는 특이한 청동마커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마커는 역사적 건물임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주로 조지안 양식(Georgian architecture)의 건물에 부착되며 그 건물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조지안 건축은 1714년부터 1830년까지 영국의 조지 1세부터 조지 4세까지의 통치기간 동안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서 고전적인 비례와 대칭, 절제된 장식미를 특징으로 한다고 한다. 아나폴리스는 미국에서 조지안 양식 건물이 가장 많이 보존된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청동 마크


아래 사진에서 이 청동마커를 확대해 보았다. 사방으로 국가 역사 지역(National Historic District) 임을 나타내고 있고 아래로는 부지 및 건물 조사를 나타내며 중앙의 나무 그림 아래에는 이 표시를 주관한 단체(Historic Annapolis Inc)를 나타내고 있다. Historic Annapolis Inc는 비영리 단체로서 Historic Marker Program을 통해 청동 마커를 붙일 건물이나 부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중앙에 새겨져 있는 나무는 ‘자유의 나무(Liberty Tree)’이다. 이 나무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통치에 저항하며 모였던 상징적인 장소를 나타낸다. 이 나무 아래서 시민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연설을 하며 결속을 다졌던 장소라는 것이다. 아나폴리스의 자유의 나무는 세인트 존스 칼리지 캠퍼스에 위치한 튤립 포플러 나무라고 한다.


Historic Annapolis Inc가 역사적 건물이나 부지에 붙이는 청동 마커


아나폴리스의 어디를 가도 보이는 푸른 돔의 건물이 메릴랜드 주 의사당(Maryland State House)이다. 이 의사당은 1779년 완공된 건물로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 의사당이자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조지안 양식의 공공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높이 솟아오른 푸른 돔은 도시의 어디에서도 잘 보여 아나폴리스의 훌륭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조지안 양식의 건물 위에 높이 솟은 돔 구조가 내 눈에는 뭔가 어색하게 보였는데, 역시 1794년에 추가로 덧붙었다고 한다. 목재로 된 돔으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아나폴리스는 1783년부터 1784년까지 미국의 수도로 사용되었는데, 이때 중요한 일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대륙 회의가 이곳 의사당 건물에서 개최되었고 1783년 12월 23일, 대륙 군 총사령관에서 사임하는 죠지 워싱턴의 역사적 연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1784년 독립전쟁을 종식시킨 파리조약이 이곳에서 조인되었다.


메릴랜드 주 의사당 건물


메릴랜드 주 의사당 외에도 아나폴리스에는 미국에서 조지안 양식의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건축물이 윌리엄 파카 하우스(William Paca House)나 하몬드-하우드 하우스(Hammond-Harwood House), 제임스 브라이스 하우스(James Brice House), 체이스-로이드 하우스(Chase-Lloyd House) 등이 있다. 파카 하우스는 미국 독립 선언서에 가장 먼저 서명한 윌리엄 파카(William Paca) 총독의 집으로서 1763년 건립되었다.


윌리엄 파카 하우스(좌)와 하몬드-하우드 하우스(우)

메릴랜드에는 특히 영국 내 종교 탄압을 피해 이민온 가톨릭 신자가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찰스 캐럴이었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이자 저명한 가톨릭 정치가였다. 그의 집인 찰스 캐럴 하우스가 역사건물로 남아있다.


찰스 캐롤 하우스

그 외에도 그냥 모르고 지나치는 크고 멋진 건물들도 모두 잘 정비 유지되어 있어 아름답게 보였다. 많은 건물에 National Historic District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특히 메릴랜드 주 의사당과 인접한 스테이트 서클(State Circle)에 오래된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대부분 예쁜 가게와 레스토랑들이 많았다. 메릴랜드 주에서 가장 오래된 펍인 Middleton Tavern(1750)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과연 역사 도시다운 풍경이었다.


주 의사당 앞 로이어스 몰(Lawyers' Mall)에 서굿 마샬( (Thurgood Marshall)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서굿 마샬은 1967년 존슨 대통령에 의해 미국 연방 대법원의 첫 흑인 판사로 지명된 사람이다. 그는 대법관으로서 시민권, 인종 평등, 자유권 보호를 위한 판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곳에 마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이유는 1935년 마샬이 메릴랜드 항소법원에서 ‘Murray v. Pearson 사건’을 변론한 역사적인 법정이 있던 자리로, 그의 초기 법률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기념비는 ‘법 아래의 평등한 정의(Equal Justice Under Law) ’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둥들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 마샬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과 함께 그의 대표적인 두 사건을 상징하는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굿 마샬의 조작상


왼쪽의 흑인 젊은이가 도널드 게인스 머레이(Donald Gaines Murray)로서 마샬이 변론하여 메릴랜드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나타낸다. ‘Murray 대 Pearson사건’은 1935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발생한 중요한 민권소송으로서 흑인 학생인 머레이가 메릴랜드 대학 로스쿨에 지원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거부되었다. 당시 메릴랜드대학 총장이 피어선(Pearson)이었다. 이 사건에 서굿 마샬이 변호를 맡아 승소함으로써 메릴랜드에서 최초로 주립 고등교육기관의 인종차별을 성공적으로 무너뜨렸다.

오른쪽의 두 어린이 조각은 ‘Brown 대 Board Education 사건’을 상징한다. 이 사건은 캔자스주 토피카의 올리브 브라운의 딸 린다 브라운이 집 근처의 백인 전용 초등학교에 입학을 거부당하자 낸 소송이었다.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공립학교에서의 인종 분리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며 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조항을 위반한다”라고 판시하면서 브라운의 손을 들어주었다. 브라운 판결은 교육분야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적 기반이 되었고 미국의 공식적인 인종 차별 철폐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의 원고 측 변호인이 서굿 마샬이었다. 그 사건 후 그는 미국 대법원의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유색인종의 인권보호에 앞장섰다.


왼쪽이 ‘Murray 대 Pearson사건’을, 오른쪽이 ‘Brown 대 Board Education 사건’을 상징한다.


주 의사당에서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바다가 나온다. 도시에서 이렇게 쉽게 바다와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아나폴리스는 ‘세계의 범선도시’나 ‘미국의 항해 수도’로 불린다. 그만큼 해안에는 요트들이 즐비하고 해안부두 시티 독(City Dock)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도 해군사관학교를 찾아가는 길에 해안가의 시티 독에서 잠시 바다 구경을 했다. 고요한 물결과 해안에 즐비한 요트들이 부자나라 미국의 여유를 한껏 자랑하는 듯 보였다. 헬렌은 배를 타고 아나폴리스 앞바다를 한 바퀴 도는 크루즈를 제안했지만 남편이 힘들어하여 그만두었다. 날씨도 쌀쌀해 남편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아나폴리스의 시티 독(City Cock)


시티 독에서 해군사관학교로 가는 길에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세 어린이가 있는 조각상을 발견하였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알렉스 헤일리(Alex Halley)가 쓰고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뿌리 Root: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라는 소설과 관련된 조각상이었다. <뿌리>는 나의 대학 시절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하여 그때 정말 열심히 시청하였던 작품이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 쿤타 킨테(Kunta Kinte)가 이곳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는 설명문을 읽자 옛날의 감회가 되살아났다. 아프리카의 감비아에서 태어나 노예로 미국에 팔려온 쿤타 킨테가 1767년 이곳 아나폴리스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조각상의 아이들은 엎드리거나 앉아 자유로운 모습으로 헤일리가 전해주는 조상 이야기를 듣고 있다. 조작상 옆에 새겨진 설명문에 의하면 이들의 기나긴 자유를 위한 투쟁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헌사가 적혀있었다.

아나폴리스에 백인 이민자들이 몰려와 조지안 양식의 아름다운 붉은 벽돌건물을 세우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동안 서굿 마샬이나 쿤타 킨테는 자유를 위한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였다. 그것이 오늘의 미국을 만드는 힘이었다면 이 땅에서 쫓겨난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왜 남아있지 않을 걸까? 그 의문이 계속 내 맘을 어지럽혔다.


쿤타 킨테의 뿌리 이야기를 듣고 있는 후손들의 조각


미국 해군 사관학교(U.S. Naval Academy)

아나폴리스에 미국 해군사관학교(U.S. Naval Academy)가 있다. 아나폴리스가 ‘항해의 수도’로 명성이 자자한 이유도 이곳에 위치한 미해군사관학교의 존재가 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나폴리스에 왔으면 해군사관학교를 둘러보아야 한다는 헬렌의 강력한 권유로 남편과 나도 해군사관학교로 갔다. 헬렌은 지역을 여행할 때마다 꼭 그 지역의 대학을 방문한다고 하였다. 헬렌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아나폴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구경꺼리가 해군사관학교라고 들었던 우리는 기꺼이 사관학교 교정으로 들어섰다. 1845년에 개교하였다는 표시가 있었다.



우리는 해군사관학교의 마스코트인 염소(Bill the Goat) 앞에 섰다. “왜 하필 염소일까?”가 궁금하였다. 염소는 해군 선박에 식량과 유제품을 제공하는 동물이었고 이후 선원들의 애완동물로서 사기 진작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 전통은 189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염소라니 뭔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미 해군사간학교의 마스코트인 염소상


미 해군사관학교는 젊은 시절 가 보았던 우리나라 진해의 해군사관학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건물도 화려하였다. 장교가 머무는 숙소들을 구경하고 엄청난 규모의 chapel도 보았다.


미국 해군사관확교 내 건물들


장교 숙소 앞의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거기서 우리는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혹시 당신 아이가 사관생도인지를 물었다. 사관생도를 둔 부모에 대한 존경이 묻어져 있는 질문들이었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문득 학창 시절 해군사관생도들과 한 미팅 사건이 떠올랐다. 진해에 벚꽃이 만발했을 때 사관생도들이 우리 학과로 미팅을 신청해 왔다. 벚꽃이라면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교정의 벚꽃을 최고로 칠 때였다. 마침 사관학교 안의 벚꽃을 보고 싶어 했던 우리들은 흰 유니폼을 입은 멋진 사관생도들의 안내로 진해 벚꽃을 볼 수 있다는 희망에 불타 기꺼이 그 미팅에 나섰다. 그리고 한 사관생도가 젊은 시절의 내게 관심을 표명해 왔다. 인연이 서로 닿지 않은 짧은 만남이었는데, 그동안 여러 번 진해의 벚꽃을 보러 갔건만 전혀 떠오르지 않던 그 사관생도와의 만남이 지금 새삼 떠오르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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