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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안녕 뉴욕, 안녕 딸!

SAGA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by 보현


뉴욕에서 나의 생일을 맞게 되었다. 딸은 부모의 생일날이나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을 언제나 최고로 만들어주는 기획력이 있다. 멋진 꽃다발과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초대와 윗트 넘치는 글이 인쇄된 봉투에 든 현금과 작고 앙징맞은 케이크, 그리고 감동적인 편지글이 따랐다. 나는 무슨 날마다 지나치게 신경 쓰는 딸이 염려되지만 딸은 “그러려고 돈 버는걸요, 뭐” 하면서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딸이 주는 현금도 좋지만 딸의 편지글이 늘 기다려졌다. 어쩌면 짧은 문장 안에 그렇게 부모에 대한 사랑과 염려를 담아 적을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남편과 나는 딸의 편지글을 읽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내가 남편에게 “여보, 당신 딸이 어쩌면 이렇게 편지글을 잘 쓴대요!” 하고 감탄하면 남편도 흡족하여 “당신 닮은 게지 뭐” 라며 나까지 치켜세운다.


딸이 보내준 꽃다발


부모에게 살뜰히 마음을 쓰는 딸을 보면 ‘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하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딸은 허술한 나를 닮지 않고 저희 아버지를 닮은 듯 야무지고 깔끔하고 빈틈없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여북하면 사위가 자기 처를 무섭다고 하겠는가!


그런 딸이 뉴욕에서 엄마의 생일을 맞게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을 썼겠는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도 머지않았다.

딸과 사위가 선택한 특별한 이벤트는 맨해튼의 마천루 식당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금융지구에 위치한 70 Pine Street의 63층에 위치한 Saga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의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생일이나 특별한 날을 맞은 사람들의 기념 식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하였다.


드레스코드가 특별히 엄격하지는 않은 듯하여 가벼운 옷차림으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비싼 음식을 예고하듯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정중하고 깔끔한 응대가 따랐다.

63층에 도착하자마자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한잔씩 들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라스로 갔다. 마천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맨해튼의 풍경까지 식사비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뷰가 멋졌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인가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맨해튼 시내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높은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뉴욕만치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없는지 뉴욕에서는 여러 곳의 유명한 전망대들이 있다.


환영 칵테일


이곳 뷰의 특징은 눈 아래에 그림처럼 고요히 흐르는 이스트 강과 그 위로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다리의 전망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는 점이다. 앞 글에서 브루클린 다리가 얼마나 어렵게 건설되었는지 설명한 바 있다. 알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두 다리의 모습이 더욱 친근하게 보였다.


Saga 레스토랑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다리


자리에 앉자 곧 여러 코스의 음식이 제공되었다. 딸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의 총괄 셰프인 찰리 미첼은 뉴욕주의 베스트 셰프로 선정된 바 있는 유명 셰프라고 하였다. 찰리 미첼은 일본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와 모로코 스타일의 건조 숙성 오리 요리를 즐겨 메뉴에 응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셰프의 여행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테이스팅 메뉴들은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맛은 황홀하였다. 그러나 매우 비쌀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가격을 물어보았다가는 딸에게 눈치를 받을 것 같아 속으로 궁금증을 삭였다.

사위도 지적한 바 있지만 딸은 미슐랭 스타 식당을 무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위에게 “눈 높은 아내를 모신다고 고생이 많네”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사위와 함께 웃었다. 내가 짐짓 사위 편을 들어준다면 남편은 딸 편이다. 사위더러 “네 처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게”하는 것이 남편의 당부였다. 아버지의 당연한 마음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함께 맛있는 요리를 즐기지 못하고 뱃줄식사로 만족해야 하는 당신의 딱한 처지 때문인지도 몰랐다.


Saga 레스토랑의 테이스팅 메뉴들


마지막으로 딸이 특별히 주문한 듯 작은 케이크가 나왔다. 입의 호사 때문에 만복(滿腹) 상태가 되었다. 평소에 소식하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은 셈이었다. 거기다 케이크까지 한 입 먹었으니 배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런 호사스러운 생일 저녁이 없을듯했다.


이렇게 9코스의 식사를 즐기는 동안 주변을 붉은 일몰이 감쌌다. 뉴욕에 온 이래 이렇게 붉은 노을은 처음 보았다. 노을도 곧 뉴욕을 떠날 우리를 위해 화려한 채색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식당을 에워싼 노을


집으로 돌아오는 거리에서 보니 허니 로커스트 가로수에 작은 전구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11월 초부터 뉴욕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분주한 것 같았다.


거리의 크리스마스 준비


낮에 지나갔던 브라이언 파크에서도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형 추리 나무를 심고 있었고 아이스 링크도 준비하고 있었으며 크리스마스 특판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록펠러센터 앞의 광장에도 크리스마스 준비가 시작된 듯하였다. 이제 겨우 11월 초인데 뉴욕은 이미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쁜듯했다.

참으로 흥겨운 도시 뉴욕이다.


브라이언 파크의 크리스마스 준비


공항의 이별

이튿날 우리는 공항에서 눈물의 작별을 하였다. 딸이 떠나는 부모가 아쉬운 듯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남편도 절로 눈물이 났다. 한 달 가까이 딸 곁에 있었건만 헤어지려고 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한국으로 같이 돌아가 함께 부대끼며 살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언제나 대도시의 삶을 선호하였다. 어릴 때 동경에 살 때에는 동경에 반해 일본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니 대학을 졸업하고는 홍콩에 살고 싶다면서 홍콩에 있는 한 회사에서 몇 년을 근무하였다. 당시 내가 방문하였을 때 딸은 홍콩 번화가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살고 있었다. 작은 스튜디오의 월세가 입이 딱 벌어지도록 비싸 홍콩의 집값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딸은 이제 뉴욕의 맨해튼에서 엄청난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 나는 그 비싼 집값을 치르며 살고 있는 딸의 생활이 안쓰러웠다. 둘이서 열심히 벌어 집세를 감당하느라고 허득이는 삶이 뭔가 싶게 여겨졌다.

딸은 이제 런던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제 남편을 찔러 런던에서 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 동경, 홍콩, 뉴욕을 거쳐 런던살이까지 섭렵하면 딸은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할까?


딸은 가끔 뉴욕에서 만난 유명인사들의 사진을 보내온다. 자기네 집 앞 레스토랑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찍는다는 메릴 스트립 사진도 보내오고 뉴욕 시장으로 출마한 조란 맘다니와 함께 찍은 사진도 보내온다.


딸은 아직 젊으니 대도시의 화려한 삶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모 된 나의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도시 뉴욕살이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보인다.

모든 대도시는 살기 힘들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도시라는 뉴욕에서 살기는 더욱 힘든 것 같다.

뉴욕은 세계 최고의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화려하고 재미있고 세계를 이끌어가는 패션의 도시이자 세계의 온갖 맛있는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세계의 온갖 잘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러나 툭하면 총기사건이 나서 애간장을 태우게 하고 세계인의 미움을 받아 언제 또 911 같은 대규모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911까지는 아니더라도 지하철에서 선로에 사람을 밀어 죽게 만드는 정신병 환자들이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화려한 빌딩사이로 홈리스들이 커다란 비닐 뭉텅이를 끌고 다니고 사람들이 아무 데서나 방뇨하여 지린내가 앙동하는 도시가 뉴욕이다. 지하철은 또 얼마나 더럽고 냄새나고 무서운 곳인지 모른다. 물가는 엄청나게 비싸다. 뉴욕시나 맨해튼에 사는 사람에게는 각종 세금이 더 부과된다. 한마디로 뉴욕살이는 고달프다.

대도시의 병든 모습이 내게는 우려스럽건만 딸은 대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아찔하고 드라마틱한 모양이다.


남편과 나는 딸, 사위와 헤어지기 며칠 전부터 그들에게 신신 당부하였다. 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으니 두 사람이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손잡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딸은 호기심이 많아 뉴욕 여기저기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사위는 이미 그런 호기심이 죽었는지 돌아다니는 데 흥미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혼자 일요일 미사에 나가는 딸의 처지를 생각하자 애가 탔다. 어디를 가도 사위와 손 잡고 다정하게 다녔으면 좋으련만. 그런 당부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딸과 사위에게 보내는 당부

딸아, 사위야!

너희들의 환대 덕분에 뉴욕에서 편하게 잘 지냈단다.

너희들이 워낙 자기 일은 알아서 잘 헤쳐나가니 내가 하는 당부가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몇 마디만 할게.

우선 건강에 유념해야 한다. 너희 둘만 외국에 살고 있으므로 너희가 아프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엄마는 가장 염려가 돼. 미국은 의료보장 시스템이 우리나라보다 못한 것 같으니 큰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생활의 절제가 필요한 줄 잘 알지? 내가 볼 때 미국식 식생활은 문제가 많아. 기름지고 과잉 열량에 너무 짜고 너무 달아. 바쁜 너희들에게 한국식 식생활을 권하는 것이 실현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외식보다는 집에서 요리해 먹는 음식을 더 좋아했으면 좋겠어. 밥에 된장국에 생선 한 토막에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훨씬 건강한 식생활이 될 것 같은데 어려울까?

운동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아도 알지? 바쁜 중에도 운동하는 루틴을 꼭 실천해야 해. 특히 사위는 운동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 되겠더라.

그리고 술을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술을 너무 좋아하다 큰 병을 얻은 네 아버지를 항상 반면교사로 삼아라. 나이가 들고 보니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들이 결국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다는 것을 알겠더라.


돈을 아껴 미래를 대비하여라. 돈의 소중함은 나보다 젊은 너희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겠지? 젊음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고 언제까지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지? 돈의 절제야말로 인생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


항상 안전에 조심하여라. 총기를 쉽게 소지할 수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너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이 엄마에게는 항상 염려가 돼.복잡한 대도시일수록 정신이 병든 사람들이 많아. 항상 사람을 조심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뉴욕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맘껏 누려라. 메트로폴리탄 같은 뮤지엄이 뉴욕에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기적같이 보였어. 뉴욕은 마치 인류의 온갖 보물의 집하장 같더구나. 이 보물들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고 마치 내일이면 뉴욕을 떠날 것 같이 여기며 이 보물들을 깊이 섭렵하렴. 늘 배우고 익히는 자세 알지?


마지막으로 사위에게 부탁하고 싶어. 일요일 날 딸과 함께 미사에 참가하면 안 되겠어? 너희들 집 앞에 성 패트릭 대성당이 있더구먼. 신에 대한 경외와 믿음은 부초 같은 우리 생에 튼튼한 닻과 같은 역할을 해 준다고 믿어. 종교를 받아들일 마음이 아직 없다면 아내를 에스코트한다고 생각하고 함께 미사에 나가면 안 될까? 너희 장인도 일요일이면 나와 함께 미사에 참석하는데, 나는 그 시간이 너무 감사하고 좋아.


계속하면 길어지겠지? 여기서 그칠게.


딸과 사위, 우리를 위해 마음 써준 시간들 진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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