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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r 17. 2023

산청(山淸) 탐매기(探梅記)

고매(古梅)의 고향 산청

 

산은 푸르고 물은 맑다는 산청(山淸)은 유명한 매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유명하다고 하여 광양의 매화마을처럼 엄청난 매화밭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폐 절터에 피어있거나 사원의 한 곁을 지키거나 고가의 한가운데에 소박하게 피어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산청3매는 꽤 이름을 얻어 봄이면 이 매화를 보고자 매화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청을 그렇게 드나들었건만 매화를 볼 여유가 없었더니 올해는 마침 때가 맞아 산청 탐매(探梅)에 나섰다.      

탐매((探梅)는 옛 선비들이 즐기던 풍류의 하나였다. 선비들은 이른 봄에 피어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매화야 말로 선비의 굳은 기개를 닮았다고 하여 매화를 찾아 다니며 시도 읊고 그림도 그리며 매화 예찬을 숨기지않았다. 말하자면 매화는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꽃이다. 

선비들이 아름다운 여인을 예찬하거나 사랑의 시를 읊는 것은 하대하면서 송죽매국(松竹梅菊)의 사우가(四友歌)를 읊거나 물,돌, 송,죽, 달을 벗인양 읊은 것(五友歌)은 성리학에 빠진 조선 선비들의 허례로 보여 기분이 썩 게운치는 않다. 그러나 어쩌랴. 산청은 선비의 고장이고 그러니 만치 오래된 매화나무들이 많이 숨어있고, 매화가 피면 그 아름다운 꽃잎 모양을 보고, 그 고혹적인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을 ...


산청에서는 단속사 절터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 ’, 남사마을의 ‘원정매’를 산청3매(山淸三梅)로 자랑한다. 산청탐매 길에 이 셋이 빠질 수 없다. 

  

단속사지(斷俗寺址)의 정당매(政堂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지리산 자락 단속사(斷俗寺) 절터에 남아있는  ‘정당매(政堂梅)’라고 한다. 단속사는 산청군 단성면(丹城面) 울리 가는 길 옆에 있었으나 지금은 절은 간 곳 없고 삼층 석탑 두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사찰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 때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는데 속세를 끊는 절(斷俗寺)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창 때는 이곳에서 밥물을 씻으면 뜨물이 입석교까지 흘러갔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기세가 왕성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 승유억불정책을 이기지 못하고 이 절도 유생(儒生)들에 의해 불상·경판 등이 파괴된 데에다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후 절터만 남게되었다.  이곳에 외로이 남아 빈 절터를 지키고 있는 단속사지 동삼층석탑(東三層石塔)과 서삼층석탑(西層石塔) 신라시대 불탑의 담백한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어 각각 보물 제72호와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속사지의 통일신라시대 석탑 2기


3월 초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바람결에 매화향이 강하게 실려왔다. 

매화향을 쫒아 간 곳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매화가 보였다. 홍매였다. 이 매화를 심은 주인공은 강희안의 조부인 통정공 강회백(1357~1402)과 통계공 회중 형제라고 한다. 두 형제는 어린 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후일 강회백이 ‘정당문학’ 겸 대사헌이라는 벼슬을 살았으므로 후대인들이 이 매화에 ‘정당매(政堂梅)’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수령 640여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의 하나로 알려진 이 나무도 세월의 무게를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웠던듯, 2014년 완전 고사되었고 산청군은 2013년, 노거수로 죽어가는 이 나무를 접목하여  정당매 곁에 후사목을 식재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접목으로 번식하였으니 본래 정당매와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기는 할 것이나 이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라는 타이틀은 다른 매화나무에 넘겨주게 되었다. 

  

단속사지의 정당매


덕산의 남명매(南冥梅)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넓은 들에 덕산(德山)이 있다.  뒤로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앞으로는 덕천강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배산임수의 곳이다. 하도 물이 빠르게 흘러가므로 이곳의 지명이 시천면(矢川면)이다. 矢는 화살이라는 뜻이다. 

이 시천면 덕산에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재실인 산천재(山天齋)가 있고 산천재 앞에 남명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유명한 남명매가 있다. 


덕산의 산천재와 산천재 앞의 남명매


산천재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도학자인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의 재실이다. 

남명선생은 본래 경남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의 벼슬살이를 따라 20대 중반까지대체로 한양에서 생활했는데, 이 시기에 유교 경서 외에도 천문, 지리, 의학, 병법, 궁마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그러다 25세 때 읽은『성리대전』에 크게 감복하여 일생을 성리학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남명선생이 살았던 당시 조선은 사화가 극심하여 선비들의 피가 낭자하게 흘렀던 때였다. 선생은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스스로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김해의 산해정과 합천의  계부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에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의 학문이 이름 나면서 조정에서는 그에게 헌릉참봉을 시작으로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단성현감·조지서 사지(造紙署司紙) 등 여러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모두 사퇴하고 초야에 묻혀지냈다. 그가 55세 때 단성현감을 사양하며 명종에게 올린 <단성소>는 정부의 실정을 공개비판하였는데,  특히 당시 서슬이 퍼렇던 문정왕후를  "깊숙한 궁궐의 한 과부"라고 적어 명종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조정 신하들이  "시골의 무식한 선비를 함부로 죽이면 언로가 막힌다" 고 반대하여 그를 어쩌지 못하였다. 이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선생의 강직함은 당시 숨죽이고 있던 많은 선비들의 귀감이 되어 선생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고, 많은 인재들이 찾아와 배움을 청했으며, 마침내 경상우도 일대에는 퇴계학파와 더불어 영남의 학풍을 양분한 남명학파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남명기념관 안에 있는 조식선생의 동상


그가 61세가 되던 1561년, 이곳 덕산(德山)에 이거하여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썼다. 이때 선생이  직접 산천재 뜰에 이 매화나무를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올해 이 나무는 수령 462년째를 맞았다. 

거의 50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견디느라고 윗부분의 가지 일부는 말라 죽었고, 또 다른 가지 하나는 시멘트로 보완해 두었지만 내가 찾아갔을 때 늙은 나무는 분홍의 꽃을 왕성하게 피우고 있었다. 노거수여서 인지는 몰라도 꽃잎의 크기는 작았으나 진한 향기 탓인지 벌들이 몰려와 열심히 꿀을 채집하고 있었다. 단성3매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매화나무라고 할 수 있다.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남명선생이 이 매화나무를 심던 뜻을 가슴에 세겨보려고 하였다. 




남사마을의 ‘원정매’

단성면 남사리 예담촌은 700여년 역사를 지닌 양반마을이다. 전통한옥과 토담, 돌담이 어우러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1호’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예전부터 하씨, 이씨, 최씨, 정씨, 박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모여 살았다. 이들 양반가에서는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심어 지금도 품격있는 고매(古梅)가 많이 남아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가 고려말의 문신인 원정공 하즙이 심었다는 분양고가의 ‘원정매’이다. 원정매를 찾아 가는 길에 하즙의 손자 하연이 어릴 때 어머니에게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었다는 620년 된 감나무를 만났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라고 한다. 수많은 옹이가 지고 나무 중심이 텅비었는데도 봄이면 꽃이 피고 감이 열린다니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하씨 고가의 620년 된 감나무 


620년 된 감나무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코끝을 자극하는 매화향기가 강하게 풍겨져 온다. 

원정매로 소문난 바로 그 매화나무이다. 수령 670여년이 되었다니 단속사지의 원정매보다 더 역사가 오래된 나무이다. 이 고매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2007년 동사하였는데 몇 년 후 뿌리쪽에서 곁가지 하나가 살아나서 간신히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다행히 해마다 쑥쑥 자라 현재와 같이 풍성한 꽃을 피우는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겹꽃의 아름다운 홍매화는 여전히 강한 향기를 품어내며 인근의 벌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하즙의 시가 나무 곁에 남아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원정매였다. 역시 나무도 스토리가 있어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원정매의 아름다운 홍매화 모습


고가를 지키고 있는 원정매


원정매는 고사하였지만 남사 예담촌에는 박씨고가 마당의 ‘남사매’, 최씨고가의 ‘최씨매’, 남호정사의 ‘이씨매’, 정씨의 매화 등 다섯 문중을 대표하는 매화나무가 여전히 남아있다


최씨고가의 매화나무인 ‘최씨매’는 최씨고가 대문 옆에 있던 400년 된 매화나무가 고사한 뒤 심은 후계목으로서 아름다운 겹홍매화는 원정매와 닮은 모습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매화가 피어 마당에 매화향이 넘쳤으므로 마당 앞 벤치에 앉아 한없이 그 향기에 취하였다. 


경남문화재자료 제117호인 최씨고가



최씨고가의 홍매: 수령 150년된 이 나무도 아름다운 홍매화를 자랑한다. 


남호정사의 이씨매도 고목에서 여전히 꽃을 피운다. 

남호정사의 이씨매


이씨매 아래의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셨다. 소담한 고가모습과 고목에 핀 백매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산청의 유명한 3매를 보고 돌아서다가 한 폐가에 피어있는 청매와 홍매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인적없는 낡은 집에 홀로 피어 매화 향기를 흩뿌리고 있는 그 모습이 어쩐지 처연하게 보였다. 


폐가에 핀 청매


폐가에 핀 홍매


이 봄에 아름답게 꽃을 피웠건만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매화나무들을 위해 건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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