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
6개월 전,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 선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길어도 두 달 남짓 남았다는 의사의 말이 야속했고 또 믿어지지 않았다. 연세에 맞지 않게 너무도 몸과 마음이 젊고 건강하신 우리 할아버지에게 이런 일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의사가 예고한 대로 나날이 쇄약해지셨다. 매주 찾아뵐 때마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셨는데, 이제는 지갑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없어지셨고 한마디 말씀마저, 아니 눈 뜨기마저 버거워하셨다. 그래도 생의 의지를 꺾지 않으신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까지 겨우 버티실 것이란 의사의 말을 꺾고 따뜻한 봄 꽃까지 보고 가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5월 2일 토요일, 어버이날 전 주라 할아버지께 카네이션을 드리러 갔다. 지난주보다 어쩐지 낯빛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가 걱정이 됐지만, 내 손을 어느 때보다 꽈악- 움켜쥐는 할아버지의 여전함에 안심이 됐다. 부드럽게 할아버지의 손을 매만지며 '또 올게요' 했던 그날이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나는 5월의 황금연휴를 아이들과 꽉 차게 보냈고 5월 6일 새벽 할아버지는 하늘로 가셨다. 이마저도 할아버지의 배려였던 거 같다. 생전 늘 넉넉한 사랑을 주셨던 할아버지는 온전히 아이들과 5월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시고 연휴 마지막날 그렇게 가셨다.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을 처음 겪어본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슬픔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며 눈물만 하염없이 흐른다. 찾아뵐 때마다 다정하게 웃으며 "씽이 왔냐~"하시던 우리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를 이제 볼 수 없다. 늘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던 할아버지를 다시 안아볼 수 없다. 마음으로 만져보고 또 안아보며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슬프고 원통하고 보고 싶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애통함 속에 허덕이며 흐리멍덩해져 있을 때,
똘망똘망 선명한 나의 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찰동이 뭐 해?"
"웅 왕할아버지 그리고 있어."
늘 허허 웃으시며 얼러주시던 왕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걸 알게 된 후, 찰동이는 '왕할아버지 빨리 낫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매일 잊지 않고 했었다. 그게 참 고맙고 기특했는데 5살의 어린아이도 왕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나 보다.
"와~ 왕할아버지구나, 그럼 할아버지 위에 이건 누구야?"
"웅 왕할아버지 머리 위에 요정들이 있어. 요정들이 할아버지 위에서 간질간질해주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할아버지 이마에 이건 뭐야?"
"이건 운동할 때 하는 머리띠! 할아버지가 건강해지셔서 달리기를 하고 있어~"
그 한 마디에 어둡고 혼란한 모든 마음들이 위로와 감동의 폭포수로 깨끗이 씻어내려 졌다. 찰동이 말대로 천국에서 할아버지가 천사들과 뛰놀고 계신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국은 정말 있구나 확신이 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자, 아이가 걱정하듯 물었다.
"엄마, 왜 울어? 웅? 힝.."
"웅 왕할아버지가 좋아 보이셔서 기뻐서 우는 거야~
이거 보면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겠다"
그제야 안심한다는 듯
"엄마 이거 빨리 사진 찍자"
"사진? 왜?"
"웅 왕할아버지한테 사진 찍어 보내야지~"
아이도 아는 거다. 다시 보지 못할 왕할아버지라는 걸. 직접 전할 수 없으니 천국으로 사진 찍어 보내자는 찰동이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러자, 우리 보내드리자. 천국에서 찰동이 그림 보시면 너~무 좋아하시겠다!"
아이가 준 위로 덕분에 할아버지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 드렸다. 한 번씩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때때로 생각나 슬픔에 잠기겠지만 그때마다 오늘을 기억해야지 생각했다. 아이의 그림을 마음에 담으며 할아버지에게 속삭였다. 할아버지, 그동안 한없이 주신 사랑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저 잘 살아가볼게요~ 언제나처럼 천국에서도 따스히 지켜봐 주실 거죠? 보고 싶어요.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우리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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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천국으로 사진을 전송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빙그레 웃는 아이가 한없이 귀하고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