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 Oct 10. 2024

힘들지만, 올라오니까 시원하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들이 조금 더 자라면 함께 산에 올라갈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고대했다. 아이도 나처럼 산을 좋아하길 바랐다. 그래서 산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동네 뒷산에 데려가려다 매번 실패했다. 주말 아침 동네 뒷산에 혼자 올랐을 때도, 숲 체험을 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도, 나는 내심 우리 아이 생각이 나곤 했다.


난 언제쯤 아이와 함께 산에 올 수 있을까?



나의 고민에 화답하듯 그날은 곧 찾아왔다. 회사에서 번아웃이 왔다. 지쳤다. 쉼이 필요했다. 쉼표 없이 달린다는 게 힘겹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2주간 휴가를 떠났다.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그곳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올 셈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무료했다. 빈 일정 속에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원래 계획에 없었던 다이아몬드 헤드로 가는 일정을 넣게 되었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정상까지 성인 기준으로 30분 정도면 올라가는 곳이었다. 크게 부담도 없었고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행 계획에서 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계획하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아이가 올라가기에 괜찮을까?’


아이가 힘들어할 것을 우려한 아내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내심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나는 일정이 빈 타이밍에 아내와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마침 시간이 비었네?! 다이아몬드 헤드를 올라가 보는 건 어때?


아내와 아이도 무료했던 터라 마침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바로 이때다! 지금 아니면 못 올라간다.’


신나서 바로 다이아몬드 헤드 예약을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매표소까지 타고 갈 우버도 예약했다. 애초에 산에 갈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운동화 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30분 정도니까 괜찮겠지?"


물통과 과자가 담긴 가방 하나만 매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와이 날씨는 더웠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계단도 많았다. 나야 괜찮지만 평소 단 한 번도 산에 간 적이 없는 아이가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익숙지 않은 산행을 하던 아이는 역시나 힘들어했다. 아내는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툴툴대기 시작했다.


아이 참, 오빠는 아이가 힘들 텐데 굳이 산에 올라오려고 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로 그때였다.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아이가 내뱉은 말.


 힘들지만 올라오니까 시원하다!



아이는 "괜찮다" 며 씩씩하게 올라갔다. 그러더니 날 보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요 녀석 봐라.'



다이아몬드 헤드의 정상에서 바라본 와이키키 해변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에메랄드 빛깔이 가득한 와이키키 해변은 반짝거렸고, 파란 하늘과 멋진 전경은 하와이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순간이 더욱 행복했던 건, 아내와 아이와 함께 정상에 서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날 본 아이의 모습은 내가 어렴풋이 그려왔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아직 유치원생인 아들 녀석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역시 아이였다. 내려올 즈음에는 다리 힘이 풀렸는지 내내 칭얼댔다. 결국 아이를 등에 업고 내려와야 했지만 그 또한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 나 또한 힘들었지만, 기쁨과 감사한 마음에 없던 힘도 절로 생겼다.


아이는 그때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은 내가 아빠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졸랐을 때고, 이 사진은 아빠가 업어주기 바로 전이고, 이 사진은.... 다음에 또 가고 싶어, 아빠.



이 말 한마디로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대답을 다 들은 것 같다. 아이도 곧 제 아빠와 의젓한 표정으로 산에 오를 때가 오겠지.


시간은 멈추지도 않고 제 걸음을 재촉하며 걸어간다. 나도 내 아이도 함께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넌 족발 갖고 어디 갔다 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