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닻 내리기

그저 잘 견뎌 내라고 (Just hang-in-there)

by 삶예글방

2025. 10. 29


벼르고 망설이던 소식을 알렸다. 둘이 함께하던 아쳅토의 첫번째 계절은 문을 닫는다고. 이제 홀로서기로 두 번째 계절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책방과 비건 미용실을 한 공간에서 운영하기로 하고선 햇수로 3년이 됐다. 4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는 잠시 - 그러니까 끝을 알 수 없는 -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사랑하는 동료가 소중한 생명을 둘이나 돌보게 되었는데, 그 막중하고 사랑스런 책임을 진 그녀의 새로운 삶의 무게를 응원하기로 했다. 책읽는 비건 미용실, 비건라이프살롱에서 미용실이 빠진 책 읽는 살롱으로 남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업자, 함께여서 가능했다고 믿은 단 하나의 동료 수린이 내 곁을 떠난다.


이 사실을 공식화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지는 않을까. 최대한 첫번째 계절이 끝나는 걸 늘려볼 순 없을까. 몰래 슬쩍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냉정히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의 공간을 사랑해주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준비와 마지막 방문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미리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에 찾아주시던 분들에겐 틈틈히 소식을 조심스레 흘려드리긴 했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소식을 올리는 건 너무나도 두려웠다. 어쩌면 가장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건 마지막까지 나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하는 파트너이자 동업자와 일로써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 일년 주기로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파트너를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레 타의적으로 잃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괴롭고 힘들었다.그때나 지금이나 이별은 또 삶의 가운데를 후벼파고 뜯어서 휘감아간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작년의 이별은 영영 모든 면에서 이별이지만, 올 해의 이별은 일로써만 잠시 이별이다. 가족같은 동료 대신, 동료같은 가족으로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워지고 쓸쓸해지는, 그래서 왠지 자신이 자꾸만 없어지는 내게, 한 명 씩 은근하게 찾아오는 날들을 보냈다. 홀로 지키려던 쌀쌀한 밤에 책 친구 한 명, 새로운 도전 앞에 망설이고 위축되어 있을 때 기세를 불어넣어주고 일자리도 주는 멋진 작가 언니 한 명, 가난하고 바쁜 중에도 연결을 향한 인사이트 얻으러 갔던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그리웠던 동료이자 선배 한 명,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운영하게 된 트레바리 모임에서 나의 책방을 궁금해해주어 찾아와 문을 두드려준 산책친구 한 명, 인원 미달로 운영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글쓰기 모임에 둘이해도 오히려 좋다며 함께 쓰자고 손잡아 준 글 친구 한 명, 메말라가는 감성에 꼭 가보고 싶었던 독립영화관 예매해두고 데려가주는 오랜 친구 한 명, 늘 혼자 달리는 길에 함께 달리자며 싫어하던 달리기 시작해 준 나무그늘같은 사랑 한 명. 그렇게 한 명 씩 나의 삶에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내가 홀씨가 되어 날아가지 못하게, 삶에 제대로 닻 내릴 수 있게 가볍고도 따스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는 또 이 겨울을 죽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의 글과 숨, 걸음을 심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잘 견뎌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 「 질문 빈곤 사회」 를 썼던 강남순 철학자는 「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조건은 두 가지이다.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너와 함께 살아가는 것. 모든 존재는 나와 함께하는 '고독(solitude)'의 공간,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함께(togetherness)'의 시공간 사이를 오간다. 이것이 유한성의 삶을 살아가는 나와 너의 삶의 조건이다.




그리고 또 이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두 조건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 된다. 내가 나로부터 소외되는 외로움이나 고립이 아니라, 내가 나와 함께하는 고독의 시공간을 확보하고 가꿀 때, 비로소 나는 너와 함께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을 가꿀 수 있다. 이 두 조건, 즉 '나 자신과 함께함', 그리고 '너와 함께함'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고 지켜내야 할 '행복'의 각기 다른 필요조건이다. 그 두 축 사이를 오가며, 아름다운 '존재의 춤'을 추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한다.



나 자신, 그리고 너와 함께를 오가며 아름다운 존재의 춤을 추는 연습을 하자.

다가오는 이 함께의 끝을 마주하는 계절에도, 계속해서 춤을 추어야지. 날선 바람에 어울리는 몸짓을, 투명하고 차가운 햇살을 맞는 걸음으로, 홀로 맞이할 새 계절을 또 이렇게 가끔씩 찾아오는 함께의 시간을 추며 즐기다 보면 나는 또 삶에 부드럽게 비비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견디며 느리게 자라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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