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이다.
인생의 길도 곡선이다.
2025년 11월 16일 문장밥
운전을 해서 가다 보면 곧게 뻗은 고속도로나 개발 도시의 대형도로를 주행할 때는 그저 빨리 가고만 싶다가도, 구불구불 산길이나 마을 국도를 만나게 되면 여지없이 약간의 긴장과 함께, 속도를 늦추고 눈앞과 옆의 경치를 자연스레 보게 되곤 합니다.
달리거나 산을 탈 때에도 마찬가지 같아요. 계획해서 만든 트랙이나 도로를 달릴 땐 멀리 시야가 보여 속도를 내기 쉽지만, 산을 오르게 되면 어떻게 길이 이어질지 몰라 조심하며 궁금한 맘으로 눈앞의 한 발에 집중하며 오르게 되니까요. 전에는 차를 몰고 나가서 드라이브하며 즐기는 속도감도 좋았지만, 요새는 천천히 내 몸의 속도로 걷거나 뛰는 일을 즐겨하게 됩니다.
이처럼 멀고 작지만 끝이 보이는 직선과 다르게, 굽이지는 모양에 따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곡선이죠.
새벽 네시가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새벽 한 시 반에 아주 불쾌한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 상황까지 갈 줄 모르고 가볍게 메시지를 확인해 버린 것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어떤 이의 보고 싶지 않았던 면까지 잔뜩 보고야 말았습니다. 연락은 3시가 다 되도록 이어졌고, 다음날에도 이어질 상황이 아찔해져 와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아찔하게 경사가 진 내리막길의 초입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서있는 기분입니다.
가파른 길 끝에 원하는 게 눈에 보이지만 제 마음은 초조하고 불편합니다.
원하는 걸 늦게 만나게 되더라도, 아니 전혀 다른 걸 만나게 되더라도 기꺼이 방황하는 구불길로 가겠다 결심했습니다. 아니다 싶을 때 발을 슬쩍 디뎌 멈추어 설 수 있는 부드러운 길로요.
오늘의 문장밥은 저의 꺾인 핸들에 용기와 위안을 주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책 속 문장으로 가져왔습니다.
직선과 곡선
사람의 손이 빚어낸 문명은 직선이다.
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이다.
인생의 길도 곡선이다.
끝이 빤히 내다보인다면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모르기 때문에 살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곡선의 묘미이다.
직선은 조급, 냉혹, 비정함이 특징이지만
곡선은 여유, 인정, 운치가 속성이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 역시 곡선의 묘미이다.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기도 하고 어정거리고 길 잃고 헤매면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충실히 깨닫고 사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