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은신글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시원님,
저의 첫 편지는 떡볶이집에서 쓰게 되었어요. 오늘 집중해서 오롯이 답장을 쓸 수 있게 주어진 시간이 이 시간밖에 없네요. 세상에, 하하!
오늘 아침 저의 문장밥 글을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한밤 중에 잠을 통 못 자고 속 뒤집히는 일이 있었어요. 밤을 새우다 시피하고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려니 스트레스 수치가 폭발해서 짠 음식이 무지하게 당기더라고요. 휴게시간이 되어 라면이라도 먹자- 하고 방앗간 같은 분식집 두 군데를 뛰어가보았는데요,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았더군요. 포기하고 샐러드나 먹자 하고 카페로 발길을 돌려 터덜거리며 걷다가, 가로수에 반쯤 가려진 빨간 간판에 선명해서 반가운 글씨로 '떡볶이' 글씨가 보이더라고요. 신나서 가로수를 제치고 뛰어가보니 동대문 엽기 떡볶이 집었어요. 매운맛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구나? 싶어 무작정 들어와서 텅 빈 홀에 앉아 떡볶이와 주먹밥을 시켰답니다. 오늘의 편지는 떡볶이를 기다리며 적어봅니다.
아, 보내주신 첫 편지는 정말 잘 받았어요. 시원님의 비공개 시선집의 프롤로그편도요! 실제 손글씨로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어서인지 화면 속 텍스트지만 시원님이 직접 쓴 손글씨처럼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비공개의 글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왜 이리 와닿던지요. 저도 자꾸만 꺼내놓지 못하고 쌓이기만 했던 시기가 있어요. 특히 작년과 올해 초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함께 쓰는 모임을 하면서부터는 끄집어낼 이유와 상황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다시 아주 천천히 조금씩 꺼낼 수 있게 되어가는 중인 것 같고요.
저는요, 글로 도망치는 것 같아요. 특히 요즘 그러합니다. 삶에서 직접 부딪히기 어려운 사람이나 상황을 만날 때, 전에는 책 앞으로만 주로 갔었는데요. 요새는 노트와 펜 앞으로 먼저 가있는 저를 봅니다. { 글자 속으로 숨고 싶다 } 정말요. 저는 툭하면 제가 숨고 싶은 은신처 같은 문장을 짓고는 글자 속으로 숨어 들어가곤 해요.
재밌는 것은 한참 깊이 은둔하다 보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고 싶어지기도 한다는 거예요. 나를 좀 꺼내줄 수 없겠냐고. 힘들어서 끌어낼 수 없다면 같이 들어와 숨지 않겠냐고요. 우리가 주고받는 편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가득입니다. 서로의 글에 같이 숨어 들어가 부둥켜 추운 겨울을 나기도 할 테고요. 바깥에 폭풍우와 한파가 그쳐 햇살이 비추며 따사로워지면 끌어내주는 글을 써 보내기도 하면서요!
아, 주먹밥이 나왔군요. 이제 곧 떡볶이가 나오려나 봅니다. 시원님은 떡볶이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요 몇 년간 저를 돌아보며 알게 된 것인데요, 그건 바로 제가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 중에 떡볶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구요. 어서 이어가 볼게요.
이번 주 연재를 시작한 저의 첫 소설, <위선자의 마을>에 시원님이 보내주신 감상에 화답하는 중요한 순서가 남아있어요.
서울을 떠나 선자마을로 간 '나'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느끼실 줄 몰랐어요. 간혹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시원님의 일상을 엿볼 때면 그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일상과 관계를 돈독히 잘 지키고 계시다고만 생각했거든요. 어떤 것들이 시원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을까 물음표가 늘어나는 밤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겨울 동안 정들었던 망원동 아쳅토 공간을 정리하고, 책방을 독립해 이사 나오고, 새로운 곳에서 두 번째 계절을 맞이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여느 때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와 사건과 상황이 저를 또 놀라게 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계속 글 속으로 도망치기도, 글 속에서 은신하기도 하면서 지내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도 일터에서 도망쳐 글 쓰러 떡볶이집으로 피신온건가 싶네요.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실은 정말 든든하고 설레면서 행복해져 옵니다. 오늘도 덕분에 틈새의 큰 행복을 맛보아요.
시원님의 겨울은 어떤 모양으로 그리고 계실지 궁금해요.
떡볶이가 실은 5분 전에 나와서 떡 몇 개 집어먹으며 마무리했답니다. 헤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떡볶이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과 애정을 담아
시원님께, 나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