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

이제 막 뭔가 조금씩 보이려고 하니까.

by 삶예글방

12월 28일 일요일 문장밥



오늘은 서머싯 몸의 「 면도날 」 속 문장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으로 산책읽기 라는 모임을 진행하는 날이거든요. 한 주 동안 오랜만에 면도날 속 문장을 계속 곱씹으며 지냈어요. 이 책은 1900년대 초반의 미국과 영국에 살았던 청년과 중년의 사람들이 삶의 욕망을 찾고 추구하는 여정을 신랄하고도 미화 없이 그려낸 작품입니다.


오늘의 문장은 제가 소설 속에서 가장 맘에 이어지며 몰입하고 읽었던 인물, '래리'의 대사에서 가져왔어요. 결혼을 약속한 이사벨에게 자신의 생의 본질적 의문이 생겨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까진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에요. 안정적인 직장도, 보장된 성공적인 미래도 모두 마다하고 프랑스로 떠나 책들을 쌓아두고 도서관에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래리에게 언제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과의 약속된 삶을 살 것인지 묻는 장면입니다.



(…)

시카고에는 언제 돌아올 거야?

시카고? 글쎄, 잘 모르겠어. 아직 생각 안 해 봤어.

2년이 지나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그랬잖아.

어쨌든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 이제 막 뭔가 조금씩 보이려고 하니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정신세계가 나를 부르고 있어. 난 그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해.

거기서 뭘 찾고 싶은데?

내 의문에 대한 대답들.

(…)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도. 또 내게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아니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지 알고 싶어.

(…)

하지만 래리, 그런 질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물어 온 것들이잖아. 만일 해답이 있다면 벌써 밝혀졌을 거야.

래리는 싱긋 웃었다.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는 듯이 그렇게 웃지 마.

이사벨이 날카롭게 말했다.

아니야. 난 반대로 당신이 예리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걸.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그런 질문을 던져 왔다는 것은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 게다가 답을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야. 다양한 대답들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대답을 찾아냈어.



자신의 삶에 드는 의문에 이처럼 충실할 수 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루고 눌러두어도 언젠간 사람마다 가진 생의 질문을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질문을 마주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떤 질문을 갖게 되셨나요?


한 해도 이제 끝나 가네요.

저마다 떠오르는 질문 하나를 붙들고 산책해 보는 시간 가져보시길 바라요.


그럼 내일 또 찾아올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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