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문장에 꽂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문장을 축으로 답장을 적어가보려 합니다.
시원 님이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쓰신 걸 읽는 데 버지니아 울프의 「 파도 」 속 한 페이지가 읽고 싶어졌어요. 바로 책을 펼쳐 봅니다.
"물웅덩이가 있네," 로우다가 말했다. "건너가지 못하겠어. 머리 바로 옆에서 커다란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바람이 내 얼굴에 대고 함성을 질러대. 손으로 만져지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내게서 사라졌어. 손을 뻗어 무언가 단단한 것을 만지지 않으면 끝없는 복도 아래로 날아가 버리고 말 거야. 그러면 무엇이 만져질까? 어떤 벽돌을, 어떤 돌을 부여잡고 거대한 심연을 가로질러 무사히 자신의 육체 속으로 자신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이제 그림자가 내려앉았고 보랏빛 광선이 사선을 이루며 아래쪽을 비추고 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은, 이제는 흔적도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가파른 잔등이 모양을 한 산들의 발치에 있는, 숲속에 서 있던 모습은 무너져내리고 있다. 계단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의 낡은 구두, 같이 있던 순간들을 그들이 사랑했다고 말했을 때 내가 그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벼락을 맞아 갈기갈기 찢어진 세계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옥스퍼드 가를 걸어 내려가련다. 발기발기 찢어진, 꽃이 매달린 가지가 떨어져나간 자국이 새빨갛게 나 있는 참나무들을 바라보겠노라, 옥스퍼드 가로 가서 파티용 스타킹을 사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가운데 일상적인 일을 할 것이다.
(⋯⋯)
적지의 한 가운데 나는 혼자이다. 인간의 얼굴은 끔찍하다. 이건 내가 좋아해, 세상에 알려지고 난폭해지고, 그리하여 바위 같은 돌에 부딪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공장의 굴뚝과 기중기와 화물차, 그리고 추하고, 무관심한 얼굴, 얼굴, 얼굴의 행렬. 예쁜 것에는 싫증이 났어. 타인의 이목을 피하는 데도 진절머리가 났어. 거친 파도를 타고 구해줄 사람 하나도 없이 가라앉을 거야.
어쩌면 울프는 이 글을 쓸 당시에 어떤 상실과 혼란으로 괴로운 중에 있던 것일까요. 이 책은 읽어도 읽어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서사도 줄거리도 맥락도 알기 어려워요. 이제 막 읽기 시작해서 더듬거리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신기한 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는 막막함 중에 문장 문장을 낭독하듯 천천히 따라읽어가면 감정으로 닿는 잔상들이 있다는 거예요. 전에 제가 합평모임 때 말씀 드렸던 적 있죠? 뒤라스의 「 사랑 」 . 그 책처럼 몽상적이진 않지만, 그 책만큼 무의식의 나열 같기도 하면서 현실에 닿아있는 처절한 감상들이 생생하기도 해서 깜짝놀라고, 그러다가도 계속 끊임없이 이어지는 독백인듯 대화인듯 싶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싶다가도 포말처럼 사라지는 검은 물같은 문장들이 길을 잃게 만드네요. 읽다보면 삶을 사는 일 같아보이기도 해요.
텅 빈 마음이라는 네 글자를 읽고 이 문장들이 읽고 싶어졌다는 이유로 한 페이지 가까이 되는 글자들을 적어 보낼 때, 막힘없이 읽어주며 공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기대로 건넬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가. 다시 한 번 생각 합니다.
시원 님, 저는 이번 주 느린 마음으로 생활을 조금씩 만져보자 생각하며 지냈어요. 그리고 방의 물건들을 조금씩 비우고 정리하며 보냈고요. 그래서인지 글도 더 잘 써지고, 잠도 더 잘 자는 한 주를 보낸 것 같아요. 아, 도서관에서 책도 잔뜩 빌려와 조금씩 읽으며 틈틈히 행복했고요!
이 문장까지 적고, 고요한 적막속에 피아노로 연주한 재즈 음악을 틀고 이어 적기시작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해지네요. 아주 바쁜 일정 틈새에도, 아무런 목소리 없는 음악과 자연의 소리등에 잠시 깊이 귀기울이는 시간 보내보시면 어때요? 텅 빈 공간을 응시하며 그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왔다 나오는지 지켜보고 누리는 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0QmTzpr7qGY&list=RD0QmTzpr7qGY&start_radio=1
( 첫 번째 트랙인 Just Read 를 들으며 쓰고 있어요. 00:00~15:39. 곡 제목을 알려 드리려 자세히 보니, 곡을 채널 주인이 직접 작곡하고 연주하셨다고 하네요! )
저는 오늘 산에 다녀오려고 해요.
맨날 시간이 안되어서 1월엔 하루 빼고는 계속 집 뒤의 야트막한 산에만 오르곤 했는데, 오늘도 높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산으로 산책하듯 다녀오려니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기대 되네요.
그럼, 오늘 밤 합평 모임 때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