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너가 나를 살렸다.
“너가 봤을 때, 나는 담는 사람인 거 같아 아니면 표현하는 사람 같아?”
“담는 사람. 담고 담아내는 사람.”
그렇다.
말로 표현을 잘 하는 너와 달리,
나는 담는 사람이다.
마음을 담아두고, 감정을 담아두며
적절한 타이밍에 마음을 꺼내어 쓴다.
쓰는 마음은 알아 달라는 마음일까,
아니면 꼭꼭 숨기고픈 마음일까
너는 알았으면 했다.
그리고 너에게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쓰는 마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은 말야 – 라고.
그렇게 담아둔 이야기를 다시 꺼냈으며,
너에게 닿았을 때,
쓰는 마음은 어떤 모양으로 너에게 다가갔을까 -
쓰는 마음, 기어코 너가 나를 살렸다.
쓰는 마음이 들어설 때는 자연스레 입을 다문다. 소용돌이치는 마음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나의 작은 모습을 감추려고만 한다. 그 사이에 쓰는 마음이 비집고 들어선다.
쓰는 마음은 모순적이다.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막상 쓰다 보면 알아주지 않았으면 하기도 하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참 이상하다. 마음들이 일기장 위에 적힌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 나조차도 마주하지 못한 마음들. 끄적인 마음들을 고요히 바라본다. 일기장 위에는 전하지 못한 끄적임, 마음들이 빤 – 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도 모를 나의 마음들을 왜 계속해서 일기장 위에 적고 있을까 -
나는 왜 계속 쓰고 있을까 –
쓰는 마음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
혼자 쓰는 마음이지만, 결국 쓰면서 깨닫게 된다. 쓰는 마음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기록하게 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인지.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두기 위해서는 더욱 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쓰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는 날들이 반복 됐다. 읽고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나이기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반복 될수록 점점 더 무너졌다. 무너짐은 불쑥 찾아왔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넘어졌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다시 고쳐야 할까 – 하는 마음이 들어섰다. 하나둘씩 주어 담은 나의 두려움들과 마음의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다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읏 – 차 하고 일어설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회복이 빠른 나이기에, 무너질 때 하루빨리 회복하는 게 주특기였다. 하지만 왠걸, 이번에는 무너지고, 또 넘어지고, 다시 무너짐의 연속이었다. 어라 – 이게 아닌데, 하고 가만히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안쓰러웠다.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거나 그저 침대에만 누워서 하루가 가기를 원하는 나를 보며 ‘다시 일어서야지’라는 다짐을 반복했지만, 무너졌다. 그렇게 무너지면서 나를 잃어갔다. 분주함도 없어지고, 평온함도 없어지고 그저 무 (없을 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들어섰다.
모든 것을 뱉어 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불안한 마음도, 막막한 마음도, 피곤한 몸도 마음도 그저 모든 것을 뱉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뱉어지기는 커녕, 계속해서 삼키고만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으며
그럼에도, 나아가야 했다.
낭떠러지의 가장 끝에서 쓰는 마음이 들어선다. 이렇게 하면 안돼 – 하고 자연스레 노트북을 키거나 펜을 잡고 쓰기 시작한다. 마지막 동아줄과 같이 쓰는 마음을 붙잡았다. 연필을 들기에도 벅찬 마음이라, 키보드로 마음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적힌 나의 쓰는 마음. ‘그랬구나. 그랬어’ 아무도 토닥여주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스스로 토닥이고 있었다. 결국에는 내가 나를 살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쓸까
쓰는 마음을 가져야 할까
나는 왜 쓸까
언제부터 나는 쓰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을까
쓰는 마음이 삶의 일부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순례길에서부터 시작 됐다. 펜 하나와 노트 하나 속에 담은 나의 마음들. 하루도 빠짐없이 40 일간 기록을 하며 나아갔다.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제의 내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걸어야 했던 길 위에 의지 할 수 있었던 건 나 자신 뿐이었다. 결국에는 내가 걸어야 하는 길 위에, 그 누구도 걸어줄 수 없는 길 위에서 고독한 마음들은 쓰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쓰는 마음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책을 펼쳤고, 펜을 들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간에서 쓰고 읽으며 회복하고 넘어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넘어지고 있고, 쓰면서 회복되고 있다. 마음들을 기록하고, 나를 기록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또 쓴다.
또 읽고, 뱉으며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