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든요, 유예하면 낡는대요.
강릉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여정의 단상을 남겨주신 덕분에 저도 같이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답니다. 고요하고도 강렬하기도 한 강릉 바다가 그립고, 또 제가 그곳에서 좋아하는 책방과 무명과 같은 영화관도 어서 다시 찾고싶어졌어요.
저는 오늘 긴 산책을 했습니다. 해가 떠있는 동안 열심히 걸어다녔어요. 모처럼 오전과 낮에 약속이나 업무 같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거든요. 무엇을 하며 보낼까를 고민하다가, 이 계절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을 보내고싶다 생각하곤 눈을 뜨자마자 곧 대충 바람막이 하나 걸쳐입고 집 밖으로 나섰어요. 물론 백팩에 책과 노트 챙겨서요. 헤헤. 집이 있는 성산동에서 시작해 연남동과 동교동, 서교동을 돌아 망원동을거쳐 다시 성산동으로 돌아왔어요.
문득,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질문이 떠올랐어요. 그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 한 주를 보낸 것 같아요.
전에는 책임감이란 것을 무거운 것을 스스로 지는 것 정도로 생각했어요.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지키려고 애쓰는 힘 같은 것이요. 그런데 이번에 책임감이란 것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저에게 오늘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기꺼이 더 소중한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편에 단호한 거절과 미안한 외면을 선언할 수 있는 것
전에는 사람마다 타고난 책임감의 크기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책임감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얻게 되고, 그런 생각에 다다랐어요. 누구에게나 자기 삶의 책임의 무게를 지고 사는 것이라고요. 책임감이 큰사람과 작은사람 그런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저 저마다 책임지려는 대상이 다른것인거죠.
그렇게 생각해보며 얼마나 함부로 쉽게 누군가의 삶의 무게에대한 의지를 재단하고 판단하곤 했는지 돌아보며 부끄럽기도 했답니다.
긴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읽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해 쪽으로만 짧게 읽던 책들을 마음껏 펼쳐 읽는 호사를 누렸어요. 그러다 위어도우 피잣집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 승은 님이 아쳅토에 인터뷰 할 겸 놀러 오셨을 때 제가 프리즘오브 잡지를 몇 권 비치해둔 것을 보시고, 자신이 인터뷰 한 호가 있다고 선물을 해주셨어요. '소공녀' 편이더라고요. 오늘은 그 인터뷰도 읽었답니다. 시원 님은 영화 '소공녀' 보셨나요?
주인공 미소가 집을 포기하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자신의 취향은 위스키와 담배예요. 영화를 만들고 노래를 만들며 부르는 일을 사랑하며 하고 있는 승은 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지키기 위해 취향이나 다른 것을 놓을 수 있다는 답변을 하는 부분에서 아하 하며 무릎을 쳤던 것 같아요.
시원 님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그게 무엇이든 유예하면 낡는다는 답변도 기억에 남네요. 취향일수도, 신념일수도, 친구일수도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곧 글쓰기 모임에서 뵙겠네요!
낡기 전에 지키고 누리는 우리의 삶을 응원하며
나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