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력이 있을 때만 열매를 맺으라

< 물량공세 열매 맺기 >

by 삶예글방

3월 7일 토요일 문장밥


좀처럼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하시나요?

애쓰는 것 같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생각이 드는 날들엔, 로빈 월 캐머러의「 향모를 땋으며 」 책을 떠올립니다. 저자인 로빈 월 캐머러는 식물학자로서, 또 토착 원주민들의 후예로서 삶과 자연에 대한 지혜를 이어받아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신비로운 식물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책이 저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이 엄청나서요. 다른 책을 둘러보며 이 책의 존재를 잊어갈 때 즈음 문득문득 말을 걸듯이 만났던 문장들이 제 마음에 말을 걸고, 저는 또 그리운 마음으로 이 책을 향해 다시 가 책을 펼치곤 합니다.


지난달에도 매주 수요일 밤, 아쳅토 독서모임인 심야북살롱 시간에도 향모를 땋으며 책을 계속 펼쳐 읽었습니다.


물량공세 열매 맺기


계속해서 이 책을 읽고 힘이 들거나 스스로의 속도에 조바심이 나곤 할 때 오늘 소개할 이야기가 계속 떠오릅니다. 바로 '물량공세 열매 맺기'인데요. 이 낯설고도 새로운 개념이 이 책을 만나고 제가 받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피칸나무, 그러니까 견과를 맺는 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나무들은 불규칙하게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몇 해 동안 열매를 전혀 안 맺는 기간도 있고, 그러다 한 번씩 왕창 풍년을 가져오기도 한다고요.



물량공세 열매 맺기로 새 숲을 만들려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열매를 아주 많이 내야 한다. 씨앗을 노리는 약탈자들을 압도할 만큼 많이. 나무가 해마다 조금씩 꾸준히 열매를 맺으면 죄다 약탈자의 배 속에 들어가 다음 세대를 하나도 낳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견과는 열량이 높아서 해마다 듬뿍 쏟아낼 수 없으므로, 가정에서 큰일을 대비해 저축을 하듯 모아두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흉년과 풍년 모두 예측할 수 없는 대신 - 그 구역의 모든 나무가 한 번에 쉬는 기간을 가지고, 한 번에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각각의 나무가 자리한 일조량이나 토양과 상관없이 '모두 같이 한 번에'요.



견과 나무는 생장 속도와 열량 축적 속도가 서식처에 따라 다르다. 그러면 운 좋은 나무들은 기름진 농지에 자리 잡은 정착민처럼 금세 부자가 되어 자주 열매를 맺는 반면에 응달에 자리 잡은 이웃 나무들은 고생을 겪고 이따금씩만 풍요를 맛보기에 번식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각각의 나무는 나름의 일정표에 따라 열매를 맺으며 녹말 저장량으로 이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 그루가 열매를 맺으면 나머지도 모두 열매를 맺는다. 독불장군은 하나도 없다. 작은 숲 grove의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작은 숲 전체가, 큰 숲 forest의 작은 숲 하나가 아니라 모든 작은 숲, 카운티 전체와 주 전체가 한꺼번에 번식한다. 나무는 개체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한다. 정확히 어떻게 그러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단결의 힘을 목격한다.



참으로 신비롭죠. 겉으로 봤을 때 공통점이라곤 없는 이 나무들이 어떻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시기에 열매를 맺고 쉬어가곤 하는 걸까요? 땅 속의 뿌리에 붙어 자라는 '균근'들이 모든 나무들의 영양분을 고르게 주고받는 역할을 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모든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그러니까 여력이 생길 때까지 모으며, 연결하며, 분배하며, 힘을 모으며 기다리는 겁니다.


피칸나무들의 연합, 함께 살아내고 또 열매 맺는 그런 순환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부러웠습니다.


하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굶어도 함께 굶고 배를 채워도 함께 채운다.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다. ⋯⋯ 피칸 숲은 베풀고 또 베푼다.



베풀고 또 베푸는 피칸 숲. 서로를 기르며 함께 생장하는, 그래서 또 다른 생명과 자기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선물의 순간들. '물량공세 열매 맺기'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여력이 있을 때에만 열매를 맺으라는 단순한 이들의 원칙이 저에게도 큰 위안과 힘이 되었답니다.


초조해하지 않고, 어떻게 누구와 연결될 것인지 - 여력이 될 때까지 의지하기도, 돌보기도 하면서 기다려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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