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룩한 이 나라, 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늦은 저녁, 반석역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담동 정류장에 들어선다. 버스에 타는 승객 중 한 노인이 눈에 들어온다. 힘겹게 버스에 올라서는 그의 까무잡잡한 피부, 얼굴에 핀 검버섯, 깊이 팬 주름이 세월의 훈장처럼 보인다. 그는 한껏 움츠린 몸으로 어기적어기적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모자가 눈에 띈다. 6·25 참전 국가유공자.
교통카드 태그 알림이 울린다. 1,400원 요금이 찍힌다. 이게 맞나? 속으로 생각한다. 한창 꽃 피워야 할 젊음으로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켰건만 버스 요금을 내야 한다니. 인터넷 뉴스를 통해 한국전쟁의 용사가 이제는 생활고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을 봤다. 기사에는 참전용사가 생계를 위해 온종일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고 했다. 흘려보낸 그 말이 이제야 절로 실감이 난다. 내가 운행하는 노선은 승객이 많아서 국가유공자나 상이군경 유공자 카드로 무임승차하는 사람도 자주 보인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전 유공자는 버스 요금을 내야 한다. 참전 유공자가 받는 대우는 고작 참전 명예 수당, 한 달에 45만 원뿐이다. 다시 한번, 이게 맞는 나라인가 하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걱정하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학군사관 45기로 임관하여 장교로써 군 복무를 마쳤다. 3, 4학년 학기마다 군사학 수업을 듣고 방학마다 군사훈련을 받았다. 나는 정신교육 시간을 통해 한국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운 참전 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을 배웠다. 그들은 고작 소총과 수류탄 몇 개를 가지고 탱크와 맞서 싸웠고, 피난민을 위해 최후까지 버티고 또 버텼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마을버스를 운전할 때 만났던 참전용사다.
마을버스 84번 노선은 전의역에서 출발해 신정리를 거쳐서 노곡리 종점에서 출발시간을 맞추고 전의산업단지를 지나 상대부를 찍고 대추리를 거쳐 다시 전의역으로 돌아오는 순환노선이다. 노곡리 종점에 가기 직전, 하노곡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는 할아버지가 그 참전용사다. 항상 같은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으며 올라타는데 목청은 얼마나 큰지 귀가 먹먹해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쟁에서 하도 총소리, 대포 소리를 들어서 청력이 많이 약해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 카드를 보여주시며 타는데 사실 그 카드는 무임승차가 되지 않는 카드다. 국가유공자 카드 중에도 무임승차가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알면 한 소리 들을 테지만 나는 항상 할아버지를 그냥 태워드렸다. 나라를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나는 늘 정신교육에서 들었던 역사가 눈앞에 살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글자로만 읽는 역사가 아니라 생생한 경험담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만 타고 하노곡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할아버지, 6·25 때 어디서 싸우셨어요?”
“이이, 상주에서 싸우다가 낙동강까지 밀려갔는데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나도 이북까지 올라간겨.”
“와, 이북 어디까지 올라가셨어요?”
“압록강이 코앞에 보이는데 그때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겨.. 내 다리가 이렇게 된 것도 후퇴하다 총알이 여(정강이를 가리키며)를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이리됐구먼.”
“야전병원에서 고생하셨겠어요”
“말도 말어. 생지옥이 따로 없는겨. 피가 철철 나는디 절로 눈앞이 캄캄해지더구먼.”
“그렇게 고생하고 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그땐 다들 그럴 수밖에 없었던겨. 밸난 재주가 없었으니께.”
“훈장도 받으셨어요?”
“받았지. 무공훈장. 근디 나는 밸로 좋지도 않은겨. 그거 다 전우들 목숨값이여, 목숨값.”
할아버지는 그때 죽은 전우가 생각나셨는지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저 교육받기만 했던 역사의 이면에 참혹함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글자와 사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가 그곳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연신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이미 지난 일인데,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일인데 이렇게 물어봐 주고 인사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몇 번 더 할아버지를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마을버스 기사로 일하던 마지막쯤 더 이상 마주칠 수 없을 것 같아 할아버지를 내려드리고, 버스를 세웠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충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