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높은 탑도 처음엔 작은 벽돌 하나를 올려놓는 일부 터인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세종시를 생각하면 아파트와 신축 건물이 많은 신도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세종시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체와 공주시, 천안시, 충청북도 청주시의 일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계획도시이다. 이 때문에 신도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흔한 시골의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런 시골의 마을버스는 바쁘게 다니는 도심의 시내버스와 달리 나름의 여유와 매력이 있다.
마을버스 72번은 하루에 8회, 거의 똑같은 코스로 다니는 73번까지 더하면 종점인 기룡리를 기준으로 9회를 운행하는 노선이다. 72번은 조치원 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조치원역과 조치원 전통시장을 들러 월하리, 국촌리를 지나 종점인 기룡리에서 신대2리와 연서면사무소 방향으로 돌아온다. 조치원 장날이면 어디서 그렇게 어르신들이 나오시는지 온종일 빈 차로 운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만큼 연서면 노선 중에 승객이 꽤 많은 편이다.
시골의 버스정류장은 초라하다. 기다란 말뚝만 서 있는 곳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법한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정류장 모양새인 곳도 있다. 도시의 정류장처럼 온열 의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추운 겨울날이면 어르신 처지에서는 버스를 기다리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최근에는 정류장 정비를 통해서 시골의 버스정류장에도 온열 의자가 설치되고 있지만 부족한 게 사실이다. 어르신들은 버스를 놓치면 최소 1시간 30분은 기다려야 해서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종점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보다 미리 나와서 기다리시는 편이다. 그 시간만큼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한겨울의 어느 날, 들어가고 나오는 길이 외길뿐인 기룡리 종점에 거의 다다를 때였다.
내 버스를 타고 조치원에 나가기 위해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께서 차디찬 바람 때문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순간 바깥보다는 버스 안이 따뜻하니 모시고 종점에 갔다가 나오면 덜 춥지 않으시겠느냐는 생각에 창문을 열고 외쳤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멀뚱멀뚱 지켜만 보시다가 이내 버스로 주섬주섬 걸음을 떼신다. 버스에 오르면서 기사님 감사해유 하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어차피 버스를 세우기도 했고 반대편에 계신 어르신들을 태우고 다시 조치원으로 가야 하는데 그걸 기다려드린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작은 배려를 할 수 있는 것은 종점에 도착해도 출발시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운행 시간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버스 특성상 정류장마다 정차하는 것이 아니고 승객이 있으면 서고 없으면 통과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어차피 똑같은 길로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밖은 춥고 버스 안은 따뜻하니 버스를 조금 더 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카르마는 “행위” 또는 “행동”을 뜻한다. 모든 행동이 결과를 낳는다는 뜻으로 좋은 행동은 좋은 결과를, 나쁜 행동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신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한테서 익히 들었고 본보기를 봐왔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카르마를 믿고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내 부모, 내 형제나 나의 지인에게 돌아간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어쩌면 어르신들을 배려한 나의 행동이 나중에 시내버스 승무사원 선발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 싶다. 작은 배려를 베푸는 좋은 행동이 모여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으니 말이다. 좋은 결과를 바라는 욕심으로 좋은 행동을 하는 것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와 선행을 하며 살다 보면 불쑥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카르마를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