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을 응원받는 마음
[성별]을 적기로 결심한 것, 적어 내려가는 순간, 적고 난 이후 모두 꽤 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젠더 갈등, 페미니즘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제야 공부의 첫걸음을 뗀 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마음이 많은 소리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음소거 처리를 해왔다. 이제는 소리 내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굽히지 않기로 했다. 잘못되었음을 알면서 과거를 반복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
그렇게 [성별]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술술 써졌다. 하지만 또 표현 과다의 벽에 부딪혔다.
내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이다. 운동 지도자임을 살리기 위해 항상 운동과 운동 지도 모두를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덜어내야 함을 안다. 그래서 ‘운동하는 정수연’에 조금 더 중심축을 두기로 했다. 굳은 결심과 함께 쓰기 시작했지만 작아졌다. 이제 첫걸음마를 뗀 지라 아직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글로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졌다. 이분법을 탈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이분법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찾아왔다. 하지만 써야 했고, 내야 했다.
이번엔 마감의 압박보단 책임감이 컸다. 결심에 대한 책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많이 떠올랐다. 내게 손 내밀어준 현경, 이런 공부하는 날 응원해 주는 누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회원님들 그리고 글 친구들. 글을 완성시킨다면, 서투르더라도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음을 확인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끝내 마감했다.
끝끝내 써낸 내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아쉬움이 밀려왔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더 잘 쓸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화요일 글이 올라가고 댓글이 달렸다. 하루에 다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같이 댓글을 열어봤다. 매일 같이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쓴 이도, 위로를 받는 이도 나였다. 첫걸음을 응원한다는 말이 여럿 적혀 있었다. 각 개인, 한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는 내 외침에 공감해 주고, 그 길을 함께 해주겠다는 환대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뜻했다. 외롭지 않았다.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것은 댓글뿐만 아니었다. 한 수업을 마치고 두 분의 회원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샘 브런치에 글 쓰신 것 잘 봤습니다.’
‘불균형에 대한 글, 그거 정말 좋았어요.’
이번 글뿐만 아니라 내가 써오고 있는 글들을 꾸준히 읽어주고 계신다는 말씀. 울컥했다. 글을 쓰면서 어려웠던 마음을 말씀드리자 원래 글 쓰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이라고 나에게 외쳐주셨다. 글을 쓰면서 가졌던 두려움이 조금 더 용기를 내도 괜찮다는 안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성별]을 통해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에게도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를 믿고,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믿으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야겠다고 재차 다짐한다. 글친구 중 한 분이 피드백을 주었듯 운동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가치의 범위도 한층 넓어진 듯하다. 운동이라는 언어로 낼 수 있는 목소리를 한껏 내며 살아가는 삶을 꿈꿔본다.
다음 글의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뒷 이야기 전에 개요 등이 완성되었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고민의 깊이를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성별]에 너무 공을 들인 탓일까? 떠올라도 내 글의 주제로 불합격을 주고 싶은 것들 뿐이었다. ‘이건 너무 무거운데?’ ‘이건 뭔가 독자 친화적으로 가지 못할 것 같아.’ 다양한 이유로 머릿속에 X표를 그렸다. 글쓰기 초보자인 나에게 결국 시작은 ‘나’여야 한다. 지금 내가 가장 골몰하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는 더 빨리 달리는 것. 가을에 내가 설정한 마라톤 목표를 달성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그렇게 다음 글의 주제는 [목표]로 정했다. 아직 [목표] 글의 개요는 흐릿하다. 당장은 목표의 종류, 목표의 중요성 등을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흐리멍덩한 생각이 어떤 글로 탄생할지는 일주일만 기다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