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별

페미니즘, 젠더 그리고 운동

by 삶예글방

최근 대선을 치른 대한민국이다. 계엄, 내란을 넘어야 했던 대선. 생각보다 결과는 무서웠다. 계엄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사람들은 여러 리스크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 공포스러운 지점은 또 있었다. 20-30대 남성 약 35%의 표가 '여성의 성기에 젓가락을 꼽았다.'라는 멘트를 대선 토론 자리에서 네거티브 전략의 일환으로 꺼내든 후보로 갔다는 것이다.


참 어지러웠다.


능력주의 그리고 갈라 치기로 대한민국이 물들고 있음을 확인하는 지점이었다. 직후 찾아온 생각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애인 현경과 나누었다. 감사하게도 현경은 손을 내밀어 주었다. 공감과 환대 그리고 적절한 조언까지 주었다. 삶의 방향키를 다시 잡아보는 첫걸음으로 현경은 내게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공부를 제안했다. 도전적이었지만 남성들의 시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남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한 작가의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어떻게 남성성의 대안이 되는가)]과 옌스 판트리흐트의 [남성 해방(Why Feminism is Good For Men)]을 읽었다. 이제 문을 두들기는 정도이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길 잘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결심하게 된 것이 있다. 이한, 옌스 판트리흐트 작가처럼 소리를 내보자는 것이다.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필체로 돌봄과 환대의 장으로의 초대장을 작성해 보자고 결심했다. 아직 잘 모르고 서투를지 언정 운동의 언어로 표현해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내가 공부한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젠더, 사회가 구분해 놓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하고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이념이자 학문이다. 운동에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운동에서 어떻게 우리는 갈등과 이분법의 강을 넘어 환대와 희망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남성 그리고 여성의 운동


운동에서 젠더는 비교적 확실하게 선 그어져 왔다. 남성, 여성의 운동 공간이 나눠져 있었다. 남성은 헬스장으로 향했다. 바벨, 덤벨과 같은 쇠붙이와 운동 기구들로 빽빽한 공간,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으억' 힘쓰는 소리와 '쾅' 무게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 남성들의 공간이 되었다. 여성들은 헬스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여성들은 인테리어를 신경 쓴 듯 쾌적하고 깔끔한 공간, 냄새보단 향기가 가득 찬 곳, 힘을 쓰긴 하지만 격한 소리가 나지 않는 곳을 선택했다. 그런 공간은 여성 전용 헬스장, 필라테스 스튜디오, 요가원 등이 차지했다.


남성과 여성의 운동이 구분되었다. 남성들은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성들은 필라테스, 요가, 그리고 다이어트 댄스 등을 했다. 남성과 여성이 운동을 추구해야 하는 방향도 나뉘었다. 남성들은 근육질의 몸을 목표로 운동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마른 몸과 부드러운 선을 가진 몸을 추구했다. 복근만 봐도 남자는 식스팩, 여자는 11자 복근이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성별에 따라 잘하는 것도 정해져 있었다. 남성들은 근육량이 많고, 강하게 힘을 잘 쓰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잘해야 했다. 여성들은 유연하고 지구력이 좋아야 했다. 운동 문화엔 성별에 따른 구분이 선명했다. 남성 그리고 여성의 운동이 정해져 있었다.




각 개인을 들여다봐야 하는 운동


하지만 최근 과학적 증거들은 운동은 성별로 반을 가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성별 자체가 운동 구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남녀 간 근육량, 근력, 관절 구조 차이 등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이 성별에 따라 해야 하는 운동이 달라진다거나, 근본적으로 운동을 달리 해야 한다던가 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성은 근육이 커질 잠재력이 크고, 힘을 발휘하는데 유리하고, 여성은 근손상이 덜 일어나고 지구력이 뛰어나 장시간 운동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명확한 젠더 구분을 통해 '남성 운동' '여성 운동'으로 갈라치기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보다 높은 무게를 드는 여성이 있다. 여성보다 유연한 남성이 있다. 근육이 커지고 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운동하는 여성이 있다. 유연해지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몸을 원하는 남성도 있다. 여성도 강한 힘을 가질 수 있고, 남성도 부드러운 몸을 가질 수 있다. 성별 간 운동 차이에 대한 연구에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한다. "90%가 같고 10%가 다르다." 이 말의 요지는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것이다. 성별 간 차이가 아닌 개별화가 요점이라는 것이다. 운동에서 필요한 것은 남녀의 구분이 아니라 각 개인을 들여다보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운동을 하고, 운동을 지도하면서도 젠더 구분보다 개인 간 특성이 중요함을 느낀다. 회원들 중 여성임에도 뻣뻣해 스트레칭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남성인데도 지나치게 유연해 근력 운동을 통해 안정성을 잡아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 여성의 경우임에도 근육량 증진이 수월하게 일어나고 중량을 잘 드는 사람들이 있다. 힘을 강하게 쓰는 것을 즐기며 이를 목표로 운동해 나가는 이들이 있다. 남성인데도 요가를 즐기고 더 유연해지길 바라며, 마른 몸을 원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더라도 여성 파워리프터들은 일반 남성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게를 든다. 남성 요가 구루들은 기괴하게 보일 정도의 유연성을 보인다. 운동, 그리고 운동 목표엔 남성과 여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그리고 한 인간이 있는 것이다.



운동은 성평등으로 흐른다.


시간이 흘러가며 운동에서의 젠더 구분은 흐려지고 있다. 운동을 선택하는 기준이 성별이 아닌 취향과 목표로 나뉜다. 요가원, 필라테스 센터를 찾는 남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중심 근력과 유연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남성들이 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 기구를 들며 높은 자극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무게를 많이 드는 것, 조금씩 느는 근육량에 성취감을 느끼는 운동을 즐긴다. 같은 운동을 혼성으로 즐기는 경우도 많이 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요가, 필라테스를 하기도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기도 한다. 함께 같은 조를 이뤄 달리기도 한다. 축구, 농구 등 생활 스포츠에도 혼성팀들이 많아지고 함께 뛰는 대회들도 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운동하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은 배타와 거부가 아니다. 따뜻한 응원으로 가득 차있다. 서로의 운동과 운동 목표를 의심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돕는다. 환대 그리고 연결로 향한다. 남성=A운동, 여성=B운동이라는 공식은 이젠 없고 없어야 한다.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나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한 운동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외친다. 각자의 길을 존중하고 성별이 다르더라도 지지의 박수를 건네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운동이라는 도구를 잘 들여다보면 성평등, 그것을 넘어 인간 세상의 환대와 연결에 대한 열쇠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분법을 지나 각 개인의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사회. 운동을 통해 작게나마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위치에 서고 싶다. 그리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싶다.






| 덧붙이는 말 |


글의 맥락을 복잡하지 않게 써 내려가려다 보니 남성, 여성이라는 2가지 성별, 젠더 이분법에서 갇힌 서술이 된 것 같다. 현재 사회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이분법적 구분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들의 성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서투른 글솜씨로 인해 다양한 성별 정체성에 관해 모두 이야기하지 못하고, 결국 이분법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과 부족을 각주에 나마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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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