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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원PD Oct 20. 2020

사라진 야구장, 동대문운동장

세상은 운동장, 낡은 운동장 소멸이 남긴 슬픔

야구장이라는 이름에 익숙했던, 항상 자주 찾았던 잠실에 비해, 도심 한가운데 어색한 공간이 있었다.

시장 옆 운동장, 동대문운동장. 첫인상부터 매우 낡은 곳이란 느낌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끌려 따라야 했던 동대문시장을 지나치며 본 동대문운동장, 

그중에도 특히 “야구장”은 늘 아저씨들의 담배 연기가 가장 먼저 펼쳐졌다. 

이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아마도 찌른내에 가까웠다.-가 두 번째 그곳의 이미지,

그리고 좌판에서 파는, 정말 더 이상 마를 수 없을 만큼 마른오징어 굽는 향이 섞여 있던 곳이었다. 

어디 그 냄새만 그러했으랴, 그곳의 관람석과 화장실은 1990년대 인류의 것으론 상상하기 힘든 수준. 

특히, 화장실은 언급조차 하기 힘든 수준, 모든 풍경이 아주 먼 과거에 멈춰있던 야구장이었다. 


매표소는 자리하고 있었지만, 과연 누가 이곳을 돈을 주고 표를 사서 들어갈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몇 번이나 슬쩍 그곳에 들여보거나, 살포시 들어가 본 야구는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였다.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던 모교에 중학교 시절부터 진학하며 그 궁금증의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중, 고등학교가 같이 있다 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고교야구는 익숙하게 만났던 시절, 

학교에서 멀지 않았던 동대문야구장은 익숙하게 학창 시절에 젖어들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공간을 접하며 동대문야구장에 대한 궁금증(?)도 현실로 마주할 기회는 찾아왔다. 

주로 실업이나 대학 등 아마추어를 위한 공간 “동대문야구장”, 하지만 이곳의 메인은 분명 “고교야구”였다. 


늘 조용한 곳인 줄 알았던 동대문야구장, 분명 반전(?) 매력을 미친 듯 뿜어내는 시점이 있었다.

흔히 전국 고교야구 4대 대회로 불리던 전국대회 토너먼트의 끝자락쯤이 그 시점,

특히 준결승이나 결승쯤엔 평소의 한가로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던 것이다. 

외야에는 모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응원단이 한가득 자리한다. 

경기 전부터 교가부터 여러 응원가로 변성기를 지난 거친 소리,  마치 어설픈 군대와 같은 응원이 이어진다. 

내야로 가보자.  출신학교 동문들이 적지 않게 모여 응원전인지 술판인지 모를 열기를 뿜어내더라는 거. 

욕설과 응원이 섞여있고 곳곳에 학부형들의 눈물과 환희가 교차하던 동대문야구장.

평소의 시들하고 늙음 가득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최면에 걸린 듯 졸음에 빠져있던 풍경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곳을 만날 순 없다. 이 모든 풍경은 영화처럼, 그저 하나의 전설처럼 흘러 다닌다.

뜨거웠던 학창 시절 수년 뒤, 잊혔던 이곳을 난 스포츠 업계에 와서야 다시 만났다. 이 공간 소멸 시점에서.

스포츠계에서 뜨거웠던 논의로 운동장의 소멸을 이야기했고, 뭔가 막고 싶다는 주장도 강렬했지만...

개발이라는 논리는 무섭고 강력했다. 운동장을 대신한 그 자리엔 서울 디자인 상징과 같은 건물이 들어섰다. 

주변에 여러 차례 들렀던 술집이나 우동집들도 찾을 수 없다. 구도심에 덩그러니 UFO가 떨어진 듯한 풍경,

그나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관이 이곳의 흔적을 아직 남겨두고 있다는 걸 차라리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운동장이 사라진 자리, 많은 것들이 소멸됐고 아마 다시 만나긴 힘들 듯하다.

우리 주위의 많은 개발은 비슷한 논리로 과거를 소멸시킨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잊힌 옛 기억이 드는 순간,

과거의 운동장이 가져간 많은 것들을 생각해본다. 나의 일부분도 아마 완전히 운동장 소멸과 함께 사라진 듯. 

무엇보다 찾을 수 없던 건 외야에서 느꼈던 그 뜨거운 햇살과 남자 고등학생들의 땀내 가득했던 함성, 

그 모든 것들은 먼지처럼 사라졌고, 코끝은 시큰해졌다. 운동장이 사라지는 건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깝다.


운동장은 낡고 새롭게 지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 위험한 시설들은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허물고 새로 지어야만 했을까, 묻고 싶다. 낡은 다른 야구장들의 현재를 보면 더 그렇다. 

이젠,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된 야구장의 풍경, 그곳의 묘한 정취는 그래서 더 아련하다.

새로움이라는 가치가 무조건 옳고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운동장의 소멸은 그 이야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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