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원PD Oct 21. 2020

낡은 운동장과 함께 사는 방법

세상은 운동장, 미국 낡음의 상징, 펜웨이파크 & 리글리필드

월드시리즈의 첫날, 그 분위기를 담아 오늘의 운동장은 메이저리그로 가본다. 

MLB에서 3번째로 낡은 다저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는 다저스도 출전한 2020 월드시리즈,

-물론 전에 없던 일들이 펼쳐지는 세상 탓에 LA는 홈구장에서 월드시리즈를 못 치른다만.- 

다저스타디움에 대한 글과 어제 동대문 글에 이어 오늘은 미국에서도 낡은 운동장 이야기다. 




펜웨이파크. 프로야구가 펼쳐지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낡은 야구장, 야구팬들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1912년에 문을 연 보스턴의 펜웨이크파크가 있다면 시카고에는 1914년 개장한 리글리필드. 

리글리필드는 MLB에서(그리고 아마도 당연히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여전한 공간이다.


펜웨이와 리글리의 이름을 떠올린 것, 메이저리그에서 여전히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

자연스럽게 이 이름들 앞에서 우린 이미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아쉬움은 깊게 차오른다.


왜, 우리는 안 되는 것이며, 왜 그들은 가능한 것일까? 펜웨이파크와 리글리필드는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우리의 낡은 운동장은 왜 흉물이자 도시의 숙제이며 새로 지어야 할 공간이자, 없어질 대상이 된 걸까.

미국에서도 그런 고민들이 없진 않았을 터. 어찌해서 100년이 넘은 야구장은 여전히 야구를 품을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은 운동장에 직접 가서, 그 풍경을 만나는 순간, 많은 부분에 답을 볼 수 있었다.


도시의 도로 구획을 지키느라 생긴 비대칭 구조, 너무 짧은 좌측면에 처음엔 도로로 공도 많이 넘어갔다.

그런 여러 가지 불편한(?) 이유에서 생긴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11m가 넘는 외야 펜스 "그린몬스터".

이 좌측 담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색하고 묘한 구조물일지도 모르겠지만, 펜웨이파크의 명물로 자리한다.

비대칭적 구조의 야구장은 흔하지 않았던 시대부터 이어온 이 형태는 100년을 넘어 전통과 전설이 됐다.


아마 초기부터 이 구조가, 그리고 이 공간이 편하고 아늑하진 않았을 터. 그렇기에 공간의 변신도 이어졌다.

1990년대 중반쯤, 이 곳에서도 물론 신축의 바람은 불었고 구단과 지자체는 새 구장을 계획했다.

심지어 1999년 MLB의 올스타전은 펜웨이파크 고별전으로 치러질 정도였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왜? 보스턴 팬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골수팬들을 중심으로 시민단체까지 결성됐다니...

결국 신축 안을 대신해 대규모의 리모델링이 진행됐고 신축구장 건립만큼 예산이 투입된 리뉴얼이 이뤄졌다.


옛 형태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품은 야구장은 그런 여러 노력과 소망, 그리고 합의 결과라는 것.

야구장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과 함께 공간의 의미를 담아 여러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까지 펼쳐지는..

펜웨이파크는 오래된 운동장이 그 역사만큼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준 공간이다.


세상의 많은 운동장을 다녀본 여러 순간 가운데 최고의 운동장을 꼽는다면 펜웨이파크를 찾았던 기억,

그린몬스터를 직접 만난 순간이다. -제목 배경으로 쓰인 사진이 그린몬스터 안에서 운동장을 찍은 사진이다.- 




보스턴에 이어 역시나 백 년이 넘은 운동장을 품은 도시, 시카고 역시 비슷한 역사를 품고 있다.

오랜 시절을 함께 한 야구장, 심지어 보스턴에 비해 리모델링도 덜 된 곳이라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있다.

관중석 중간중간에는 H빔이 박혀 있고, 통로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물론 다녀온 이후 리모델링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전통의 흔적은 이 공간의 또 다른 힘. 외야의 담쟁이덩굴과 수동식 스코어보드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외야 담장에는 뒤쪽 건물들이 옥상에 관중석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뭔가 괴상한 풍경이 많은 곳.

그럼에도 팬들은 이 공간을 사랑하며 주차부터 여러 열악한 시설에도 꾸준하게 이 곳을 찾아오고 있다는 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기에 재개발 자체도 어렵지만, 오히려 이 공간을 문화재로 지정해 가치를 더한다.


최신형의 외야 전광판도 비교적 최근에 생겼으며, 얼마 전까지도 조명탑에 문제가 있었던 운동장이기도 하다.

분명 개발의 시선에서는 도저히 더 이상 야구를 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공간인 시카고의 리글리필드.

주간 경기가 많은 공간이지만, 낮 경기에도 운동장엔 거의 매진에 가까운 팬들이 늘 찾는 걸 보면 신기할 지경,

야구장 자체가 MLB 구장 치고는 작은 편이라 늘 표를 구하기 힘든 데다, 티켓 가격은 비싼 구장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21세기의 100년 넘는 야구장, 바로 시카고의 리글리필드.가 그곳이다.


운동장 자체의 시간은 분명 100년이 지나며 늙고 낡음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낡음과 늙음조차 하나의 풍경으로 승화시키고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로 만든 공간들.

우리에게는 그런 옛스러움과 멋스러움이 함께하기 힘든걸까? 100년의 공간 앞에서 드는 부러움은 깊었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가을, 월드 베스트는 이런 시간의 깊이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이전 11화 사라진 야구장, 동대문운동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