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운동장, 가보고 싶었던 공간의 첫발
가을야구가 다가오는 계절, 옛 가을야구의 기억 소환.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잠실"과 "그라운드"에 대하여.
야구기자가 된 이후, 처음 느낀 신기함은 그라운드와 더그아웃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장을 그렇게 자주 다녔지만, 그럼에도 늘 바라만 봐야 했던 곳,
그라운드나 더그아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다는 건 이 일에 드문 -의무가 함께하는-"특권"이다.
야구소년의 기억이 남겨진 어른에겐 작은 “행복”, 물론, 일을 위해 가는 것이라곤 해도 말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모든 순간 가운데 최고는 아마 입사 첫해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터.
1년 동안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취재를 이어오다가 처음 원정 취재가 잡혔던 시점이다.
당시 가게 된 건 바로 서울의 “잠실야구장”. 그렇다! 내 인생 첫 경험과도 같은 야구장,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인생의 야구장으로 삼던 그 잠실을 한국시리즈 취재를 위해 향했던 거다.
경기 하루 전에 도착해서 다음날 중계와 취재 준비를 위해 기자석과 중계석을 오가며 시선은 오직 한 곳!
늘 보기만 했던 공간, 그라운드와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내일 만날 저곳의 촉감, 두근두근하며 기대했다.
드디어 잠실 취재 첫날, 아마 2005년 10월 18일, 화요일로 기억된다.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 시작은 6시지만 2시쯤 잠실야구장에 도착, 동종업계 안면이 있는 선배들과 빠르게 인사를 나눈다.
이 모든 시간을 다음 순간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 그 예식(?)을 마치자마자 바로 그라운드로 향했다.
당시에는 입사 1년 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곳의 정취나 감흥을 즐길 만큼 여유롭진 못했던 같다.
1루와 3루, 더그아웃에서 감독들의 말을 듣고 받아 적어야 하는 “업무”의 영역에 빠져 있는 동안,
온통 정신은 이 곳, 잠실야구장이라는 공간에 팔려있었고, 그라운드라는 두근거리에 집중도 힘들었다.
남아있는 시리즈에 집중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오늘은 잠실의 촉감으로 만족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음날, 2005년 야구가 끝나던 한국시리즈 최종전(원하지 않았지만, 이 날 경기가 최종전이었다.)
마지막이란 단어, 뭔가 마음은 조급했지만, 한편으로는 두근거림이 더 커졌다.
취재하던 팀의 우승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빌 때 함께한다면 이건 정말 대단한 경험이지 않겠는가?
4차전은 그렇게 내가 왔다.
10월, 야구 보기 참 좋은 계절. 하지만, 야구가 끝날 시간쯤에는 다소 싸늘하게 느껴질 시기,
그러나 4차전이 끝난 뒤 나의 떨림은 결코 추위가 원인이 아니었다.
잠실야구장의 그라운드를, 말 그대로 마음껏(?) 누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거.
우승팀이 그라운드를 돌며 우승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은 첫 번째 기회였다.
주변을 같이 돌며 이런저런 인터뷰를 하고 사람들과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는 순간까지 휘몰아쳤다.
바쁘게 일을 하다가도 언뜻언뜻 느껴지는 잠실야구장에 갑자기 울컥함이 밀려들었다.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이 “잠실야구장”의 “그라운드”란 말인가?
우승이라는 순간의 특별함은 퀸의 "We are the champion"이 울려 퍼지고 꽃가루가 날리는 상황이 절정!
그 순간을 그라운드에서 경험한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심지어, 그 공간을 어린 시절부터 그리워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우승의 뒤풀이는 꽤 길게 이어지며, 인터뷰도 무수하게 진행했더니, 어느덧 조명탑은 어두워지기 시작,
이곳저곳에서 취재를 이어가던 기자들도 하나 둘, 그라운드를 떠나 기자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뭔가 우승이라는 큰 사건이 격하게 흐른 뒤 급격히 조용해지기 시작한 잠실야구장,
나의 발걸음은 무언가에 홀린 듯, 홈 플레이트를 향했다.
홈에서 1루, 다시 2루, 그리고 3루를 지나 다시 홈까지 마치 선수처럼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라운드의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다 돈 순간, 말 그대로 울컥함을 넘어선 눈물이 흘렀다.
‘아, 이 일을 하기 정말 잘했어. 이 순간만으로도 이 일을 한 걸 후회하지 않을 거야..’
(물론, 이런 다짐은 아주 가까운 미래, 잊혔고 오늘의 업무를 저주하는 나와 마주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며, 늘 내가 있던 관중석을 올려다보며 본 잠실야구장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풍경은 다소 묘하고 낯설었다. 위에서 보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아름답게 보였던 잠실야구장.
어린 시절 1루 단상을 올라갔던 것이 유일한 최대 접근이었던 기억이,
그라운드로 향하다 길을 잃었던 기억이, 이 곳에서 외야석을 뛰던 기억이,
모든 순간이 한순간에 밀려왔고, 거짓말처럼 날 지나쳐 사라졌다.
아, 문제라면 이후 몇 번이고 다시 찾은 잠실야구장에선 그 같은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는 점,
왜 모든 일들은 첫 경험의 순간을 다시 재연하지 못하는 걸까?
사랑도, 취미도, 심지어 야구장도. 멀지 않은 미래, 다시 잠실야구장에 취재를 하러 가고 싶다.
그래서 그 떨림을 다시금 부활시키고 싶다.
그 감정선을 다시 만날 때, 야구장에 대한 나의 사랑도 다시 처음처럼 뜨거워지는 걸 느끼지 않을까?
지금보다는 더 야구장을 사랑하는 나를, 잠실야구장을 격하게 아끼던 그 시절을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