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운동장, 이름이 바뀐 공간의 의미
"여기는 OOOO운동장입니다."
스포츠 중계에서 익숙하게 쓰이는 문구, 이닝이나 전반이 끝났을 때, 쿼터나 세트가 끝났을 때 들을 수 있다.
캐스터들은 늘 이런 문구로 마무리한다. 중계에서 CM콜이라고 하는 멘트, 현장감을 더하는 요소가 있는 말,
-물론 일본식 중계를 도입하며 굳어진 형식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스포츠 팬들에겐 익숙한 문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곁에서 무언가 사라지고 있는 단어가, 소멸되는 공간이 이 사이 하나 있다.
OOOO운동장, OOO경기장. 이젠 은근히 찾기 힘든 운동장과 경기장. 대신 많은 곳이 새 이름을 얻고 있다.
야구의 경우, 잠실운동장 야구장, 사직운동장 야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은 새 이름으로 함께한다.
새로 지어진 광주와 대구, 창원에는 필드와 파크가. 또 새로운 형태의 구장으로 함께하는 고척에는 돔이,
심지어 과거 운동장을 그대로 쓰는 대전이나 수원에서도 이젠 파크 같은 이름이 더 익숙하게 자리한다.
야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까지 대부분 월드컵경기장. 을 쓰는 팀이 대부분인 축구에도 변화는 있다.
새로 지어진 공간으로 뜨겁게 주목받았던 대구가 대표적, 과거 시민운동장은 지금 "파크"로 새 이름을 얻었다.
꼭, 예전의 것들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 펼쳐지는 변화에는 많은 긍정적 의미도 담겨있다.
이름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이란 공간, 경기장이란 장소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변화가 이뤄진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 익숙했던 스포츠 구단들은 경기장을 통해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된 시대,
관련 법규가 변화하며 그 상징처럼 가지게 된 여러 가지 시도들, 그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이름을 만든 것이다.
경기장의 이름을 바꾸며 그 "이름"에 대한 금전적인 이익과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변화다.
지자체 이름과 함께 한 이름, -아직도 상당수의 경기장은 OO시민운동장, OO공설운동장으로 불린다.-
그 구도의 변화는 과거 운동장이나 경기장이 지자체나 행정기관의 공간이었다면 이젠 그 틀을 넘어섰단 증거,
바뀐 시대는 이름의 변화부터 직접 느껴졌고, 이는 우리 곁에 운동장과 경기장이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에 얽힌 공간들이 사라지는 느낌들은 한 번씩 들기 마련. 뭔가 아련해진다.
공간조차 사라져 버린 동대문운동장과 이젠 스포츠가 드물게 된 서울종합운동장의 잠실주경기장과 같은 이름.
이 모든 과거의 이름은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멀게 느껴지고, 우리 곁에서 잊쳐진 공간의 기억을 소환한다.
아직까지는 "필드"나 "파크"와 같은 이름이 MLB나 EPL에 더 어울리는 것 같은 촌스러움과 함께 말이다.
한글날을 보내며, 그 하루 동안 스포츠 중계를 하는 채널들이 화면 우상단에 그 하루만 한글로 방송사명을 쓰듯,
그 하루 정도는 운동장의 옛 이름이나 과거의 공간을 소환할 방법은 없었을까? 가을 하늘 아래 들었던 잡념이다.
어쨌든. 운동회랑 너무 잘 어울리는 계절, 가을. 운동장의 추억은 이렇게 또 소환되고, 소비되며, 상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