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운동장, 또 다른 추억의 공간 대구시민운동장
고향의 야구장이 "잠실운동장"이었다면, 실질적인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야구장은 대구에 있다.
이제 사라진 이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그 공간의 마지막 10년을 함께한 기억은 생생하다.
대구에서 근무를 시작한 2004년, TV로만 봤던 환상의 공간, "대구시민운동장"을 처음 만났다.
동대문으로 시작해 잠실과 사직, 인천 문학 정도가 이전까지 직접 관람을 했던 야구장이 전부였던 시절,
나의 운동장 세계관에 있어서... 특히 야구장이란 공간에 있어서 이곳은 매우 특별했다.
놀라움을 가득 안겨줬다고 해야 할까? -아, 물론 특별과 놀라움은 매우, 지독히, 완곡한 표현이다.-
입사 첫해부터 이 공간을 취재하며 "낡음"과 "위험", "철거"와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함께했다.
흔하게 들었을 이야기다. 인조잔디와 펜스는 상태가 위험했고, 관람석은 최악보다 더 나빴다.
더그아웃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 야구장 안에 들어서게 된 H빔과 정전사태는 유명한(?) 뉴스로 남겨졌다.
선수들에게는 위험한, 팬들에겐 불편했던 곳. 하지만 그 낡음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그 여러 안타까움 사이에 이 공간에는 어마어마한 역사들이 쓰였고, 운동장의 절정이 이어졌다.
추억으로 돌이켜보니 아름다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의미와 가치가 있던 시간이 흘렀던 곳.
공간으로서 운동장의 소멸에도, 그 오랜 이름과 함께 역사와 영광은 분명했던 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
자칫 사라질 뻔했던 운동장은 그러나 대부분의 어두운 공간을 거둬낸 뒤 사라지지 않고 남겨졌다.
과거는 악, 새로움은 선.이라는 식의 구도에서 벗어나 과거의 추억을 잘 담아내는 부활을 택한 곳!
이승엽야구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곳은 분명 의미 있는 운동장이 어떻게 함께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드는 여러 추억들은, 그래서 남겨진 공간의 의미로 더욱 애틋하다.
스포츠 기자로서의 첫 취재도, 스포츠PD로서 가장 뜨겁게 함께 했던 야구중계도 모두 이 공간에서 시작했다.
익숙하게 이어진 우승 사이에 지겨울 만큼(?) 이어졌던 우승 특집, 역시 시민운동장 시대의 산물.
원년의 이름을 지킨 전통의 구단, 이 대구시민운동장을 홈으로 썼던 팀에게도 이 곳의 추억은 각별할 터.
가을야구가 익숙했고, 우승을 흔하게 봤던 운동장의 어제, 지금의 그 팀은 많이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이런 마음의 서랍 속 추억이 나뿐이겠는가, 많은 야구팬들에게 이런저런 기억으로 함께 할 공간,
이제는 더 이상 프로야구와 함께할 수 없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얽힌 야구의 기억은 다양하다.
현장에서 직접 겪은 기억들은 물론, TV 속에서 만났던 그 정겨운(그리고 낡은) 공간의 풍경들의 다양함...
사라졌으니깐,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거. 비록 남겨진 건 다행이지만 다시 만나긴 또 쉽지 않다.
아마추어라는 이름의 야구를 품은 건 다행이라 할 부분, 아직까지 "야구"가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하지만, 그 접근성의 측면을 볼 때, 이곳의 부활은 제한적이며 보편적인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나쁜 점들, 안타까운 요소들을 개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꼭 다 없앤 뒤 새로 짓는 것이 답은 아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한때 가장 낡은 야구장이던 공간은 이젠 가장 오래된 야구장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다행이지만 아쉽다. 없어지진 않았지만 사라진 것들은 분명 일정한 크기 이상으로 우리 주위를 떠다닌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남겨지는 가치,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공감대, 이런 것들이 있었던 곳.
이름조차 이젠 사라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사라진 것들은 아쉽지만, 남겨짐은 고마움인 공간.
아주 오랜 과거를 지닌 것, 큰 의미를 담은 공간만 문화적인 가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닐 터.
이 역사적 의미가 좀 더 조명받을 수 있길, 우리 곁에 이런 일들이 더 흔하길, 야구팬으론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