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운동장, 대전의 야구장. 부산의 축구장
대부분 운동장을 찾는 이유는 특정 팀을 "응원"하기 위한 목적, 승리를 보고 싶은 마음에 기인한다.
일의 영역을 제외하고, 즐거움을 위해 운동장을 찾을 때는 분명 응원의 마음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팀인지와 무관하게 그 운동장에 가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
뭐 특별한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새로 문을 연 곳,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는 운동장들은 진짜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소소한 역사를 담은 공간들이다.
말 그대로 그 운동장 자체의 묘한 풍경이 주는 매력과 소소한 그 역사의 흔적이 아름답다 여기는 곳,
바로 대전의 한밭운동장 야구장과 부산의 구덕운동장이 그 주인공이다.
우선으로 가 볼 곳은 대전의 한밭운동장 야구장. 수년 전 열성팬들 덕에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글스란 이름을 가진 팀은 그렇게 뜨거운 인기의 팀이라 하긴 힘든 지점이 많다.
보살과 같은 급으로 표현되는 점잖고, 뜨거운(?) 팬들이 있지만... 그만큼 성적면에선 아쉬운 이글스,
과거 빙과회사의 이름이던 시절, 타어거즈나 자이언츠 같은 인기팀과 성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우승팀보다는 2위 팀의 이미지가 강했던 주황색 줄무늬 유니포의 이글스, 물론 그때도 인기가 크진 않았다.
하지만, 열성적인 팬들은 일찌감치 존재했고 충청권 유일의 프로팀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구단이다.
빙과에서 화학회사로 이름이 바뀐 뒤, 우승의 기억도 있지만 대부분의 팀 이미지는 하위권에 익숙한 팀.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글스의 야구, 정확하게는 대전 한밭운동장의 야구에 깊은 매력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도심 속 풍경의 운동장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과 함께하는 야구장이자, 아늑한 느낌의 구장.
해질 무렵,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야구장.-이건 대부분의 오래된 작은 야구장에서 비슷하다만.-
격하지 않은 분위기 탓에 야구에 집중할 수 있고, 야구 자체의 본질적 매력을 잘 담은 운동장이란 거!
연결고리라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이곳에서의 추억은 공간에 바탕을 두고 오랜 시간 함께 했다.
가족모임, 연애시절,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이글스의 야구장을 찾은 건 오로지 이 곳의 매력에 기인한 방문,
그만큼 이 공간은 나에게 야구 자체의 재미와 감동을 주는 공간으로 묘한 각인이 깊이 박힌 곳이다.
큰 야구장, 새 야구장, 외국의 야구장, 오랜 시절 고향 같은 야구장과 출입 구단의 야구장까지...
익숙함으로는 더 깊은 인연이 많겠지만, 이 곳이 준 편안함과 평화로움은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대전에 갈 때마다 가고 싶은 곳은 언제나 이 곳, 대전 한밭운동장 야구장이다.
-참고로 대전월드컵경기장은 참 관람환경이 뛰어난 곳이지만, 이곳 대전구장의 매력을 넘진 못한다.-
야구의 공간으로 묘하게 매력적인 대전을 지나면, 축구의 공간에서는 부산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야구의 이미지가 강한 도시 부산에서 사직구장이 아닌 축구장을 꼽는다는 건 다소 의외의 선택,
부산에서도 월드컵의 성지이자, 사직운동장 내에 위치한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
뭐, 낡은 운동장을 유독 좋아라 하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부산의 축구장은 구덕운동장이다.
과거 K리그의 전성기엔 뜨거웠던 공간.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 이야기가 돼버린 구덕운동장 주경기장.
2부 리그 시절, 다시 이곳으로 홈을 옮기며 다시 축구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구덕은 낡음을 그대로 간직했다.
심지어 위치부터 흔히 사람들이 부산을 떠올릴 때 말하는 해운대, 광안리 같은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구도심에 자리한 구덕운동장, 과거 부산 체육의 성지라고는 하지만, 운동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다.
갑작스럽게 종합운동장 시설이 튀어나오는 느낌? 흔히 접근성이라고 하는 이런 밀접성(?)이 난 좋다.
운동장이라는 이름에 거대한 공간이 주위 시설들 사이에 폭, 안겨 있다고 해야 할까? 아늑함이 느껴진다.
물론 대전과 마찬가지로 도심에 위치해 경기장 밖 풍경은 그저 한없이 도시 도시하다. - 이점이 특히 좋다.-
낡은 운동장 특유의 냄새와 뭔가 모를 어두움, 그 시크함은 새로운 운동장은 흉내 낼 수 없다.
스포츠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 이건 오랜 시간이 쌓여야 가능한 매력이다.
새롭게 좀 더 바꿀 것들을 바꿔 아늑함과 이용 편의성을 높인다면 더 좋겠지만..-대전은 이미 이뤄졌다.-
그 부분이 없더라도, 과거의 축구 열기가 아직 남겨진 곳으로 구덕은 매력적이다.
과거 K리그 취재 출장에서 별다른 매력이 없던 도시에서 구덕 홈구장 시절부터 난 부산 축구 출장이 좋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낡은 운동장의 정취를 좋아하며 스포츠의 역사성을 사랑하는 특이한 지점이지만...
축구라는 특징과 거리가 멀어진 부산의 구덕, 야구에서 흥이 적은 대전, 이런 도시의 낡은 운동장을 좋아한다.
한 번이라도, 이 공간들을 만난다면... 그리고 종목이 아닌 공간을 본다면. 조금은 이 매력을 공감할 터.
낡은 운동장이 귀해지는 시대, 사라지기 전에 가볼만한 현재 프로의 공간으로 이 곳들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