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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Jan 01. 2023

신년 맞이 부부 와담회

부부 간에 소감 묻지 말기


"당신은 올 한 해 어땠어?"


남편과 침대에 누워 올해 여행한 사진을 함께 주욱 살펴보다가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올 한 해 기뻤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남편에게 내 소감을 공유할 생각으로 남편이 어땠는지 먼저 물어보았다.


"어, 나는... 음... 뭐랄까...(표정이 급 무거워짐)"


"나 너무 심각한 질문 한 거야? 갑자기 표정 뭐야?!"


"아니, 그냥 생각하는 표정이야. 당신은 맨날 내가 무슨 생각만 하면 무거운 표정 짓는다고 하더라?"


"당신이 당신 얼굴을 지금 못 봐서 그래! 당신 얼굴 때문에 지금 갑자기 방의 공기가 바뀐 거 모르겠어?"





그놈의 소감을 괜히 물어봤다.


남편은 어떤 것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면 머릿속에서 목차구성을 마치고 입을 여는 성향이 있는데 남편이 목차를 구성하는 사이 이야기 속 존재하는 온갖 육즙과 과즙은 증발해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을 무거운 표정으로 일관한다.


나도 업무 회의에서는 남편처럼 말하는 습관이 있지만 사적인 대화에서 저런 모드로 말하지는 않는다.


신혼 때는 놀랬다.

'이 사람은 대체 언제 긴장을 푸는 것인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남편이 목차 구성을 마치고 내뱉은 문장은 의외로 간결했고, 살짝 나를 슬프게 했다.


"그냥... 별 다른 거 없이 또 다른 한 해였던 것 같아."


내 핀잔에 목차를 구성하다가 별다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린 결론을 내 버린 것이다!

남편이 실컷 목차 구성하도록 놔뒀어야 하는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얼굴 표정만 보고 쉽게 남의 감정을 재단해 버린 내가 야속했다.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올해 퇴사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서 좋았겠네? 좋은 직장 박차고 나온 거 정말 존경해. 고생스럽지만 당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모습이 너무 멋져."


안 그래도 핀잔줘서 미안한 마당에 저런 말을 들으니 당장 내일 아침에 노가다라도 뛰어서 남편 호강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똑같은 말을 해 주었다.


"당신 프로그래밍 재밌다고 했잖아. 지금 역사 교사하는 거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때려쳐! 알았지? 대학원 다시 들어가고 박사도 하고 다 해! 그때는 내가 돈 벌게!"





생각해보면 '그저 또 다른 한 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싸돌아다니고도 사지 멀쩡하고 무사한 것.


  해도 그저  다른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지영캘리그래피 #acci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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