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CI Jan 03. 2023

'그럴 수 있지'가 가능한 시댁

집으로 가는 길, 역마(驛馬)적 삶에 대한 단상


어제 샌디에고에서 집에 오는 길,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대학생 때 만났던 점쟁이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나에게 '지구 세 바퀴를 돌 팔자'라고 했는데, 여행 거리상으로만 따지면 세 바퀴 넘은 지는 오래됐으므로 그저 '많이 싸돌아다닐 팔자' 정도로 얘기하셨구나 한다.


마침 내 사주엔 역마(驛馬)와 지살(地殺)이 풍부하다.





시댁의 역마력은 나를 가뿐히 넘어선다.


남편의 누나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고 남편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태어났다.

시어머니는 한국에서 교수 생활도 오래 하셨다.


시댁의 한국 음식 사랑은 이때 시작되었다.


여러 나라 살아봐도 한국음식이

가장 '맛있다'기 보다는 '못 잊을 맛'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시댁 가는 날은 자연스레 한국음식 먹는 날이 되고 시어머니는 그 전날 장 봐놓은 것들을 보여주시며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하신다.


나는 휘리릭 음식을 잘하는 편이라 이런 요구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다들 좋아하는 리액션을 보면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 물론 가끔 하는 거니까 힘이 안 드는 거겠지만.


어떤 친구들은 시댁에서 요리하는 게 힘들지 않다는 내 말에 가끔 이렇게 묻곤 한다.


'평소 먹는 양 보다 훨씬 많이 해야 할 텐데... 나 같으면 맛없으면 어떡하나 걱정되고 부담될 것 같애.'


나는 내가 상대를 위해 뭘 정성껏 만들었는데 맛이 없으면 그에 대한 실망감은 좀 나눠도 된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맛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부담을 뭐 하러 갖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할 때의 마음가짐은 그저 '이렇게 하면 더 맛있겠지?'


이게 다다.


대신 설거지는 아직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역량에 맞는 며느리 캐릭터만을 고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설거지와 뒷정리는 주로 시누들이 한다.




대대손손 역마 집안에 역마 며느리가 들어간 덕에 서로 조화롭게 잘 지내는 편인데 이 집 문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럴 수 있지.'다. 이런 시댁 분위기 덕에,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남편 덕에 숱한 부부싸움에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볼수록 '그럴  있지' 태도는 어떤 형태로든 삶의 경험치를 축적한 자에게 돌아가는 선물인 것 같.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부터 마음에 거스름이 없어 살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있는 '(Line)' 대한 접근은 보편과 상식을 당연히 아울러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잘 삐지는 사람에게 내 깊은 면모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경험상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넘어선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에 관심이 적었고, 지레짐작에 과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운한 사람들은 '그럴  있지' 세계에 살기보단 '어떻게 그래?' 세계에 주로 머무는  같았고,  세계는 도통  취향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서인지 주변에는 '그럴 수 있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 일상에 끝없는 영감과 활력을 제공하기에, 그들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공교롭게도 '그럴 수 있지'가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많은 유행(遊行)을 거친 것 같았다.




그럴 수 있지 (아빠체_dry_ink) 3000 X 1000 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3



#그럴수있지 #시댁 #accicalligraph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