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말고 여유
오늘은 만다린 오렌지다.
이 집주인은 츤데레 스타일로 아무런 메시지 없이 내용물만 내놓았지만 보통 "Free"라는 푯말도 붙여놓는다.
며칠 전에는 걷다가 단호박들을 만났고 구아바가 한창 익을 무렵에는 구아바를 저렇게 가져가라고 내놓는다.
나는 구아바 익는 향기를 작년 겨울쯤에 처음 맡아봤는데, 처음엔 뉘 집 세탁실에서 나는 섬유 유연제 향인 줄 알았다.
그 집을 지나갈 때마다 그 냄새가 나길래 하루는 킁킁 거리며 냄새를 따라가 봤는데
세상에,
나무에서 나는 향이었다.
그 나무에 달려있는 살구 만한 열매에서 섬유유연제 한 통을 뭉쳐놓은 듯한 강렬한 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여태 이 향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원통하게 여겨질 만한 향이었다.
다행히 과일의 생김새는 굳이 모르고 살아도 될 만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책도 많이 주워왔다.
동네 산책하다 주워온 책 대표작으로 아래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 싶다.
'Steal Like an Artist'는 한국에 번역본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술술 잘 읽히면서 실제로 창작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는 '뻔하지 않은' 팁들이 많았다.
두 번째 책은 보르헤스가 쓴 글쓰기 관련 책인데, 나는 보르헤스 이름이 저렇게 생긴 줄 이 책을 줍고서야 알게 되었다.
아직 읽는 중이라 책에 관해 할 말은 없다.
보르헤스적 삶의 방식은 원래 좋아하는데, 신기하게도 동네에 보르헤스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
자기 다 봤다고
다른 사람들 보라고 밖에 내놓는 마음이
너무 귀엽다.
걷다 보면 씽긋이 웃을 일 많은 이 동네
오늘도 나는 그들의 여유를
한가득 몸에 묻히고 집에 돌아온다.
#실버레이크 #미국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