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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Jan 15. 2023

이거 들어봤어?

나를 만든 플레이리스트


"퀸시존스 프로덕션이야!

스웨덴 애들인데 빨리 들어봐!"


핀란드 사는 친구가 다급한 음성이 느껴지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Dirty Loops'라는 밴드의 'Work Shit Out'이라는 노래를 빨리 들어보라는 것이다.


헤드폰을 장착하고 조용한 방으로 가서 경건한 마음으로 플레이를 클릭한다. 이 친구가 추천하는 음악에 실망한 기억이 별로 없기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며 눈을 감는다.


어릴적 뛰 놀던 동성로 타워레코드가 눈 앞에 펼쳐진다.




좋다.

과연 기대에 부응하는 소리다.

눈물도 찔끔 났다.


멤버 셋다 미쳤는데 그중에서도 독보적 존재감의 베이스주자 덕분에 오랜만에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fresh'한 무언가를 접하면 손발이 차가워진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주변에 음악이나 그림 하는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용사  하나가 'fresh'이다.


"This is fresh."

전시 오프닝 때 저렇게 한마디 해 주면 그렇게 다들 좋아한다. 우리가 이미 다 알아서 식상한 저 단어가 아트씬에서 그런 용도로 쓰일 줄은 몰랐다.


친구 덕에 오랜만에 손발이 차가워지니 흐뭇하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한 데다 관종끼가 다분했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길 좋아했다.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 때로 돌아간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이러고 한 소절을 시작하면 어른들은 애기가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행위에 대해서 노래하는 게 기가 차서 다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봐 주셨다.  


나는 내가 노래를 잘해서 다들 흐뭇한 줄 알고 영혼 담아 열심히 불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 길은 이 길이구나. 어서 더 갈고닦아 더 많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해야겠구나.'


그 후로 나는 용돈이 모일 때마다 동성로 타워레코드에 갔고, 남은 돈으로 책을 샀다. 음악과 책에 심취한 어린이는 질풍노도 따위 겪지 않았다. 질풍노도는 '나는 누구인가'를 떨치지 못한 어린이들이 겪는 현상이었다. 나는 내 갈길 가기 바빴다. 나는 가수였기 때문이다.




주현미에서 더티룹스까지

음악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기에 앞으로 조금씩 내 플레이리스트를 독자분들에게 보여드리면서 음악이 내게 주었던 순수한 삶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참고로 지금 글을 쓰면서는 'The XX'의 'Intro'를 듣는 중이다. 글 쓸 때는 Nujabes나 DJ Okawari 혹은 M83 같은, 가사 없이 범우주적인 트랙을 즐겨 듣는다.




목동 작업실에 걸려있던 작품. 다프트펑크 곡 Giorgio by Moroder 중반부에 조지오 모로더가 음악의 본질에 대해 짧게 언급한다. 좋아해서 자주 썼는데 이건 2016 버전






#giorgiomoroder #dirtylo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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