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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15. 2023

배추찌짐과 피자

그리고 부교감신경


"뜨거워, 조심해!"


오븐에서 막 꺼내 김이 펄펄 올라오는 피자를 남편이 둥근 칼로 '돌돌돌' 눌러가며 자른다. 나는 여덟 조각이 채 다 잘리기 전에 먼저 잘린 한 조각을 참지 못하고 '어뜨! 어뜨!' 하며 입으로 가져간다.


입 속은 벌써 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최초의 피자 한 입을 머금자 예열된 입은 열렬히 음식을 맞아들였다.


순간,


막 구워낸 피자가 펼쳐 보이는 맛의 향연을 지그시 눌러버리는 감정이 올라온다.

바로 침샘 작용의 신비였다.


어쩜 이리도 내가 피자를 최대치의 감각으로 즐길  있도록   상황을 완벽하게 준비해놨는지... 부교감신경의 배려에 감격이 솟았다 (민감자의 드문 장점: 매사에 '당연시'  안함).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동시에 내 삶의 부교감신경 작용을 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가장 큰 신경의 줄기는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이다. 남편은 내가 속옷을 너무 큰 걸 사서 안 입고 방치해 놓으면 내 다른 속옷과 견주어보고는 손 바느질로 줄여 놓는다. 흘리는 소리도 귀담아듣고 그 말이 현실에 반영되는데 하루 이상 걸리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다.


"보이소! 예?! 거실에 시계 건전지 다 됐는데 언제 갈랑교?"


"어. 해주께. 봄 되면."


"봄 되면 한다꼬? 하하핳ㅎㅎ 헤헤이 참말로!"


시계 건전지 교체와 봄이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부지에게 그 둘의 상관관계는 분명했다. 다행히 엄마는 그런 남편이 흥미로웠고 잔소리하지 않았다. 아부지는 좋은 가장이었으나 우리 가족의 유지 보수는 엄마(항상 바쁘게 돌아다님)가 대부분 맡았고 아빠(대부분 누워계심)는 다른 걸 했다.


아빠는 엄마를 웃기는 데 관심이 있었고 그 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그런 아빠가 좋았던 엄마는 기꺼이 아빠의 부교감신경이 되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웃는 행위 만한 실체적 기쁨이 없다.


다들 그거 하자고 출근을 하고 주식을 하며 자기 계발도 하고 마트에 장도 보러 간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몸고생의 과정은 죄다 건너뛴 채 그저 최종 단계인 사랑하는 부인 웃기기에만 집중했다. 생각할수록 고단자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빠를 닮은 나는 내 깜냥을 알기에 아빠 전법을 구사하며 산다. 나는 어제도 남편을 네 번 정도 웃겼고 오늘도 웃길 예정이다. 서로 같이 웃을 때 삶은 충만하고 더 바랄 게 없는 부(富)의 상태가 된다.




"He's a millionaire of words and styles."

보르헤스가 제임스 조이스를 동경하며 한 말이다 (보르헤스 같은 사람도 자기 생각에 '넘사벽'이 있고 그를 부러워한다는 게 신기). 촘스키는 '부자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할 줄 아는 자'라고 했다.


이렇게 각기 부유함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나는 자주 웃는 자도 거기 살포시 추가해 보고 싶다.




남편이 좋아하는 살라미 양송이 피자


나는 양송이만 들어간 피자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게 땡기는 날의 저녁식사. 나는 배추 찌짐 남편은 피자



웃고살자 (싱겁체_chalk),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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