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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12. 2023

미국에도 냉이는 있지만

그 냉이가 아닌 이유

뿌리까지 살살살 달래 가면서 잘 뽑아야 돼! 이거 봐봐! 냄새 좋제?


방금 캔 냉이를 내 코에 흙이 묻을 듯 가까이 들이대던 엄마 덕에 나는 아홉 살 무렵 냉이 향을 알게 되었다.


나는 냉이뿐 아니라 다양한 봄나물에 관한 주입식 교육을 당했는데 엄마가 머구(머위), 씬내이(씀바귀), 두릅 등 봄이면 올라오는 모든 나물들을 내 코와 입에 들이미는 바람에 봄이면 봄나물을 먹는 게 당연한 몸으로 자라 버렸다.


냉이 향을 처음 맡았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냉이 향이 그저 흙냄새에 그쳤다는 안티클라이맥스 (나는 내 삶 곳곳의 안티클라이맥스를 자세히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탓도 있겠으나 그 흙내뿐이던 것을 내게 들이댈 때의 엄마 표정 때문이다.


나의 냉이 향 평가를 기다리던 엄마 표정은 자신이 방금 백 그램 당 수백 유로를 호가하는 이태리산 화이트 트러플을 캤으니


당장 냄새를 맡아보라는 의기양양함이었고 순수한 삶의 기쁨 자체였다.


 정도의 향이 분명 아니었음에도 나는 엄마 표정에 동기화되어 ' 진짜 좋네!'라고 대답해버렸다.  나이에 흙내의 아름다움을 알리 없었지만 엄마 표정엔 하루라도 빨리 알아야   같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침 산책을 나갔다 냉이를 만났다. 요 며칠 추위가 살짝 가셨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뚫고 나온 모양이다.

사람들 없을 때 몰래 하나 뽑아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엄마의 신난 표정이 없으니 냉이에서 응당 나야 할 향은 나지 않았다.


창 밖의 출근 행렬과 조깅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이 아침 일과의 일부인데 오늘 아침은 유독 햇살이 눈부셨다. 아침 산책은 웬만해서 하지 않지만 (오후 산책을 좋아한다) 왠지 햇살이 아까워 밖으로 홀린 듯 나갔다 만나버린 냉이였다.


아침부터 달리기 하고 난리인 이 동네 사람들의 평범한 풍경. 나는 아침에 역동적인 행위를 잘하지 않지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한다.


나의 부모는 사교육 없이 자유방임형으로 나를 키웠으나 봄나물을 먹는 것, 가을에 자연산 송이를 툴툴 털어 잘게 찢을 때 거실에 퍼지는 솔향, 사계의 리듬을 느끼며 온갖 제철 음식을 먹는 행위의 근사함을 알고 사는 것 따위의 가정교육에는 진심이었다. 봄나물 교육은 생명의 리듬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들의 냄새를 굳이 맡아보게 한 것은 현전적(Mindful) 삶의 권유였다.




봄나물을 먹지 못한 여섯 번째의 봄이 왔다.


한국마켓에 가면 비슷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물과 흙이 다른 땅에서 자란 냉이나 쑥은 외양만 같을 뿐 정곡을 찌르지 않는 향과 맛으로 더 큰 공허를 안겨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국에도 맛있는 건 많다는 것. 그럼에도 미국의 '맛있음'은 사계의 리듬을 타는 맛은 아니기에 어딘가 허전하다.


그 구멍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은 사시사철 내리쬐는 양질의 햇볕인데, 매일 아침 집 앞에 배달되는 싱싱한 캘리포니아 햇살은 봄나물과 가을 송이에 버금가는 제철음식 노릇을 해 주었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 억지로라도 대문을 열고 나서면 목덜미와 등에 내려앉는 뜨끈한 햇살이 부모의 사랑이나 신의 은총이 그리하듯 내 존재를 데웠다.


그렇게 뎁혀진 존재가 되면 봄나물을 먹지 않고도 봄나물을 먹은 몸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먹고 자란 것은 봄나물이 아니라 엄마가 보여준 봄나물 같은 것들에 끊임없이 경탄하는 태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탄 잘하는 우리 엄마. 브런치북 <아스팔트 우주> 에서 발췌 (아빠체_smudge),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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